요즘 선생님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여전히 라디오 방송 일정은 자전거로 다니시는지
아시다시피 오후 6시 5분부터 8시까지 SBS 러브FM 〈6시 저녁바람 김창완입니다〉를 진행하는 것이 주 일상입니다.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시간을 꽤 빼앗겨요.
화보는 오랜만에 찍으신 걸로 알아요. 선생님만의 멋을 믿고 기댔으니 걱정은 없었습니다
요즘 아이돌 친구들이 많이들 찍잖아요. 그들처럼 즐겼습니다(웃음). 사람 만나 하는 일은 그저 인사를 나누거나 눈빛으로 진심을 전하는 게 전부인데요. 그야말로 작가의 피사체로 서 있는데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말 혹은 표정으로 서로 여러 주문을 해야 하니 얼마나 번거롭고 힘듭니까. 그러나 오늘처럼 마음이 오가면 그만이죠. 그래서 기자님께 오자마자 “오늘 주제는 뭡니까?” 물었더니 대뜸 “오늘은 희망입니다” 그러시는데, 얼마 전에 마친 전시 주제가 ‘희망’이어서 더 쉽게 다가가지 않았나 싶어요.
무려 23년 동안 출근했던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떠났던 지난해 책을 내셨죠. 청취자들에게 보낸 편지와 직접 쓴 오프닝 문구를 엮은 에세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는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독자마다 희망을 털어놓게 합니다. 최근 희망에 관해 새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나요
어머니가 보청기 사용하신 지 6년쯤 됐어요. 어느 날 갑자기 안 들린다시길래 보청기 청소하러 갔더니 웬걸, 고장 난 거예요. 새로 맞추면 청력이 조금 더 돌아온다는 소식이 기뻐서 그날 ‘희망’을 스케치하고 잠들었어요.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빛이 들어오는 모습으로요. 근데 며칠 지나고 보니 희망이라는 것이 주입된 방식이자 훈련된 관념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든 거예요. ‘빛’이라든지 ‘싹’이라든지 ‘꽃’이라든지. 우리가 아는 진짜 희망이 그런 모습인가? 희망이 눈에 보이나? 그렇게 꽃처럼 피었다 사라지나? 어둠속에서도 계속 보이는 거 아닌가. 그리려던 걸 폐기하고 검정으로 칠했어요. 흰색도 칠했고요. 대낮에도 희망을 품을 수 있잖아요. 지금 기자님과 마주 앉은 이 장면에서도 말이죠. 희망은 그만큼 일상적인 것 같아요.

니트는 Bode by Mue.
요즘은 희망보다 비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품었던 희망과 지금의 희망이 달라 보일 수 있겠지요. 옛날의 희망은 보다 포부가 크고, 요즘 희망은 쪼그라들었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근데 꼭 그렇지 않을 거예요. 훨씬 더 자유롭고 폭넓은 세상이니까 그것 자체로 희망의 크기도 위대하고 커요. 예전에는 좀 더 자유롭고 거대한 담론도 오간 것 같은데, 요즘은 다들 쪼그라들고 쪼잔해진 것 같아요. 어째 사람들이 좀 위축된 것 같죠? 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 찾아보려 하지 않은 것일지도요.
오늘 만남의 계기가 된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는 무려 1995년에 펴냈던 〈집에 가는 길〉이 토대가 됐죠. 여덟 편의 새 글과 20점의 그림이 더해졌어요. 가수, 화가, 작가, 배우, DJ…. 참 많은 이름을 지녔지만, 글 쓰는 김창완만의 특이점이 있을까요
라디오가 주류 미디어에서 벗어나 점점 소외되는 게 현실이에요. 그렇게 아슬하게 사라져가는 매체에서 저는 노스탤지어를 느낍니다. 아련하게 저를 막 붙잡아요. 이토록 쇼츠가 활개 치는 세상에서 들고 읽어야 한다는 불편함과 투박함이 주는 촉감, 책이 주는 피부 감각은 다른 매체가 결코 대신할 수 없어요. 오죽하면 종이 냄새를 책 향기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해요. 책 향기는 세상이 변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 책을 세상에 꺼내놓던 30년 전의 김창완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그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분명 변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거의 없어서 놀랐어요. 그리고 그 책이 30년 전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읽혔다면 단박에 거절했을 거예요. 굳이 복간은 필요 없다고, 옛것은 옛것으로 남겨두자고요. 웬걸, 나도 깜짝 놀랐어요. 생각지도 못했어요. 구석구석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새롭게 보였거든요.

재킷과 팬츠는 모두 Issey Miyake by Mue. 슈즈는 Converse.
책 속의 그 청년이 낯설게 느껴지셨나요? 지난 글을 읽으며 곰팡내보다 풋사과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겼다고도 자평했습니다
꼭 지금의 성수동처럼 보입디다. 이번에 새로 쓴 ‘내 노래’라는 시로 그 소회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아요. “50년 동안 부른 남루한 노래 소매가 나달나달하고 단추가 떨어지고 해어지고 닳고 색도 바래고 품도 좁아지고 기장이 길어지고 소매가 짧아진 유행이 지난 엄마가 부르던 유행을 타고 삼촌이 부르던 하소연하듯 아버지가 부르던 나의 추억이 아닌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그걸로 입에 풀칠도 하고 애도 키우고 남의 얘기 같은 남의 얘기 같은 내 노래”라고요. 지나간 낡은 추억이 담긴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야기거든요. 동네 길 가다가 새로 생긴 카페에서 청춘의 날을 새로이 맞는 듯한 기분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독자들 말로는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에서는 우리를 품어주던 어른 김창완이 보였다면, 〈이제야 보이네〉에서는 울고불고 하는 어린아이가 보인다더군요(웃음)
독자들은 그 책에서 내 청춘을 엿보는 것 같아요. 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방황, 좌절,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눈에 설핏 띄었을 겁니다. ‘봐라! 저 아저씨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짠하잖아요(웃음).
좋은 어른이라며 늘 조언을 청해 받는 당신은 여전히 아이 같습니까, 혹은 그때보다 더 어른이 된 것 같습니까
거울 앞에서나 오늘처럼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가 하루를 돌아보잖아요. 어른이 됐고, 어른 노릇을 해야죠. 그리고 또 끝없이 목말라하며 희망을 애타게 찾는 청춘들의 마음을 어떻게 적셔줄지도 생각하는데요. 그게 어른 되는 길 아닌가요. 다만 여전히 줄지 않는 욕심은 반성합니다.

재킷과 팬츠는 모두 Issey Miyake by Mue. 슈즈는 Converse.
개인적으로 와닿는 에피소드는 ‘상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30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와 산울림의 막내를 보낸 일처럼, 표현하신 그대로 ‘아픔 담아둘 서랍 하나’가 너무나 필요한 세상이니까요
제가 그 분야에 정통하진 않아서 잘은 모르겠으나 소셜 미디어의 폐해 같기도 해요. 모든 일이 너무 ‘즉시’ 해결되니까 사람들이 기다림의 가치를 등한시하는 것 같아요.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흐르는 시냇물의 중간 지점 소용돌이에는 늘 물이 고여 있어요. 급류 가운데서도 물은 고여 있다고요. 당장 눈앞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자고요. 우리는 인내를 배워야 될 것 같아요. 올해 봄꽃들이 우여곡절 속에 많이 피고 졌는데, 다 기다리면 선물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제야 보이네〉가 어떻게 다시 읽혔으면 하나요
글을 쭉 따라오는 것보다 중간중간 멈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됐으면 해요. 김창완이 이렇게 지냈더라, 이런 생각을 했다더라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보고 저마다 글을 통해 거울 앞에 서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제 스스로에게 노래를 들려주신다죠. 데뷔한 후 48년 동안 ‘노래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자신의 노래가 들린다’는 건 어떤 변화일까요
큰 변화예요. 코로나19 시기에 공연 없이 2~3년이 훌쩍 지나가는데, 노래 부르는 사람이 노래 부를 자리가 없으니까 내 노래도 비로소 ‘휴업’인가 싶었어요. 이참에 스스로에게 한번 불러봐주면 어떨까 생각했지요. 방에 장비를 켜고 내게 노래를 들려줬어요. 그랬더니 여태까지 누군가에게 날아가서 나비가 되던 노래가 내게로 날아오더라고요. 짠했어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여정을 돌이켜보면 다시 꺼내 보고 싶은 명장면이 있나요? 요즘 특히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라디오를 통해 만난 사람들입니다. 라디오를 진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요. 르포르타주 같은 현장성 혹은 현재성에 대한 감각이 느껴진달까요. 요즘에는 가끔 이웃 간에 담 없이 지내던 시절이 그립기도 해요. 사람 사이의 벽도 훨씬 두꺼워진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알게 모르게 이웃들이 서로 돕는 이야기가 눈에 많이 띕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져도 인간은 서로 기대며 살도록 진화해 와서 그런 것 같아요.

재킷과 팬츠는 모두 Issey Miyake by Mue. 슈즈는 Converse.
김창완밴드의 2025 전국 투어 공연 〈회상〉이 시작됐습니다. 여전히 설레고 즐겁나요
아이, 그럼요. 좋아요. 이번에 기타 이펙터 중 ‘토크박스’라는 걸 새로 장만했는데요. 써보니 진짜 재밌어요. 아직 개인 공연에서는 안 써봤는데 다음 달부터 쓸 거예요.
1977년 등장한 산울림을 우리는 ‘레전드’라고 쉽게 부르지만, 스스로 그 명칭을 꺼리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김창완밴드는 무엇을, 어디를 바라보고 있나요
“우리가 하는 게 음악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를 음악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연주는 우리가 하고 있지만, 그건 음악의 신이 우리를 불러서 하는 거예요. 쓰임을 받는 거지요. 종교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음악의 가호 아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모두 자신에게 충실하려고 노력하죠. 히트곡 몇 곡 있다고 감히 그것만 연주하며 교만하지 않는 것, 제일 경계하는 겁니다. 히트곡에 안주해서 그야말로 낡은 외투를 걸치고 있는 사람도 많거든요. 산울림은 레전드가 분명하고 우리 문화사에 큰 유산인 건 맞지만, 지금 남은 건 김창완밴드이니 산울림과는 선을 긋고 있어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나 어떡해’ ‘개구쟁이’ ‘산할아버지’ ‘청춘’ ‘너의 의미’까지… 참 많은 명곡이 후배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일은 반가운가요
그럼요. 뿌듯하죠. 얼마 전 림킴과도 ‘초야’를 같이 작업했지만, 어떤 후배든 산울림을 재해석하기보다 지금 가수로서 혹은 음악 여정의 일부로서 길을 만들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지 그 영광을 재현하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요.
요즘 친구들이 예전 노래를 그리워하고 재향유하는 이유는 뭘까요
지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니 미래로 갈 수도, 과거로 갈 수도 있는데 지금 가볼 수 있는 곳이 음악밖에 없을지도 몰라요. 고전, 가요, 책이 아니면 도망갈 선택지가 없잖아요.

니트는 Bode by Mue. 프린팅 팬츠는 Bode by Boontheshop. 슈즈는 Timberland.
아이유부터 스트레이 키즈 창빈까지 다양한 후배 뮤지션들과 협업했습니다. 그들이 선생님께 가장 많이 묻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창의력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하죠. 창의력의 원천은 불교 용어인 ‘제행무상’에서 찾을 수 있어요. 모든 것은 변하죠. 자신의 생각도 변할 것이고, 바라보는 세상도 변할 것이고. ‘변한다는 믿음’이 ‘지금 무엇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믿음’보다 강력한 거예요. 그래서 나는 글을 쓰거나 작업할 때 백지 같은 상태, 무엇에도 매달려 있지 않은 마음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요. 그러려면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고, 굉장히 부지런히 살아야 돼요.
선생님이 ‘요즘 세대’에게 묻고 싶은 것도 있나요
음악하는 친구들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행복하세요? 행복하십니까?”라고 묻고 싶어요. 어릴 때 너무 궁금한 나머지 “왜 사세요?”라고 물으며 전국을 돌아다녔듯이. 행복하다면 됐고, 행복하지 않다면 왜 행복하지 않은지요. 그렇다면 “내가 술 사줄까?” 그러는 거지(웃음).
다들 행복하다고 하던가요? 고민이 많던가요
선뜻 행복하다고 하는 친구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문제 아닌가요.
새삼 생각해 보면 김창완은 세상 어디에서든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50년 가까이 수많은 노래와 공연, 라디오로 대중과 가까이 소통해 왔지요
의미를 부여할 건 없어요. 그냥 내 생활을 지지하는 기반이니까. 어디서부터 일상이고, 일과 일상은 어때야 한다고 구분 짓지도 않아요. 지금 인터뷰도 그냥 편안하게 내 일상이 표현되고 전해지길 바라지 특별한 내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엘르〉와 화보를 찍는 건 특별한 일인지 몰라도(웃음) 나를 너무 특별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요.

옐로 셔츠는 Polo Ralph Lauren. 타이는 Stüssy. 팬츠는 Wooyoungmi.
이제야 보이는 것 중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저는 요즘 젊은이들이 참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얘기는 잘 나오지 않죠. 어른들은 요즘의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그런 기우는 접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믿으려면 부분만 믿을 게 아니라 전부 다 믿어줘야죠. 그래야 책임도 지우고 허물도 감쌀 수 있지요. 선택적으로 믿으면 그건 못 믿는 겁니다.
알아주시네요
요새 사는 게 고달프고, 알바 자리도 잘 안 구해진다는 외침을 믿어요. 동시에 사랑의 힘도 믿고요. 여전히 많은 젊은이의 지성이 좋은 세상으로 끌고 갈 거라고요. 거대 담론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은 믿는데 그 절규는 엄살이라고 매도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게 음악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를 음악하게 합니다”라고 했듯 우리가 품는 게 희망이 아니고, 희망이 우리를 껴안고 있어요.
결국, 선생님은 희망보다 사람을 믿는 거군요
하다 보니 그냥 사는 얘기만 하고 끝났는데, 저는 아직도 이렇게 뜬구름 잡는 소리 하면서 삽니다. 그저 사람을 만나는 게 인문학의 전부입니다. 다른 게 아니에요. 그저 사람 자체가 문화예요. 사람 만나면 되지 뭘 더 구해요? 우리가 뭘 더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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