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류 편집 매장 ‘엠프티 베이스먼트’. 기존 무신사 본사 사무실의 흔적을 남기면서 완만한 곡선 형태의 가구 모듈로 공간을 분할하고 동선을 구성했다.
‘아르’는 공예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남궁교와 건축을 전공한 오현진이 함께 설립한 스튜디오다
산업디자인과 건축이라는 다른 분야에 있다가 가구라는 공통분모로 알게 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까워졌다. 플랏엠을 거쳐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와 건축사무소라는 또 다른 곳에서 각자 경험을 쌓다가 2018년 함께 ‘아르(Arr)’를 설립했다. 아르는 우리가 사용하던 오디오 기판에 적힌 ‘Array’라는 글자를 보고 알파벳 배열이 마음에 들어 즉흥적으로 택한 이름이다. 단순하고 비우는 디자인에서 매력을 느끼고, 어떤 이미지로 규정되지 않기를 원해 앞 세 글자 ‘Arr’를 스튜디오 이름으로 정했다.
공간을 구성할 때 무엇을 주안점으로 두나? 분위기를 좌우하는 요소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축약, 단순함, 비움. ‘시적인 공간’이라는 표현도 좋아한다. 평면과 동선을 결정할 때 늘 이 점을 염두에 둔다. 공간은 사람이나 콘텐츠로 채울 수 있지만, 공간은 언제나 그것의 배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잘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 가구나 조명을 디자인하는 태도도 같다. 단순함 속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지루하거나 밋밋한 것은 피하되, 단순함 속에서 위트와 균형감을 잘 찾고 싶다. 공간의 분위기는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며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밀도(비움과 채움의 정도에 따른 공간감)와 빛(조도)이 중요하다. 특히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공간에 명암을 만들고 사물을 비추는 빛은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한남 빌라’ 현관 중문. 시선과 움직임의 편안함을 위해 단순한 곡선 형태로 디자인한 ‘P 하우스’의 복층 계단.

오브제나 가구가 지닌 물성으로 공간을 부드럽게 장악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어떤 식으로 재료를 다루나
산업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날것의 재료를 건축 맥락에 맞게 해석하고 다듬어 새로운 표면을 구현해 본 적 있다. 하나의 재료로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한 것이다. 쪼개고, 쌓고, 갈아내고, 잇는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예산과 환경이 허락된다면 프로젝트마다 재료의 활용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싶다. 최근 비이커 성수와 RBDG 건물 내외부 미장에 이런 방식을 적용했다.

30년 된 복도식 빌라를 중성적 언어와 재료로 리모델링한 한남 빌라의 주방.
과감하지만 절제된 방식으로 조각한 듯 완성한 주거 프로젝트도 인상적이다. 주거공간을 다룰 땐 어떤 태도로 임하나
어떤 공간이든 오래 볼수록 좋고 자연스러운 공간, 사람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점에 주안점을 둔다. 주거의 경우 특히 오래 머문다는 사실에 깊게 고민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개인 물건으로 채워질 것이기에 그 변화를 잘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디자인한다. 너무 튀거나 쓰임을 벗어난 형태 대신 기능을 따른 디자인 요소를 적용하려고 한다.



이광호 작가와 함께 ‘NOL’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광호 작가와는 우연한 기회에 친분을 쌓게 돼 ‘오설록 1979’ 프로젝트를 계기로 본격적인 협업을 이어갔다. 디자인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공간과 재료를 대하는 실험적 태도에서 공감대를 느꼈다. 이후 앤트러사이트 연희, 무신사 테라스 홍대, 비이커 성수 등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NOL은 실험적인 공간 프로젝트 그룹으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주제를 선정하고 구현법을 논의한다. 비이커 성수를 예로 들면 비이커의 10주년 플래그십 스토어였기에 특별한 주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긴 대화 끝에 이광호 작가가 ‘반짝이는 젊음(Glittering Youth)’이라는 주제를 던졌고, 이를 위해 우리는 ‘반짝이는 조각’이라는 구체적인 키워드를 선정하고 이를 공간으로 구현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아르에서 기본 평면과 건축, 내외부 벽체와 천장 재료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했고, 이광호 작가는 공간 브랜딩과 집기 재료, 각종 오브제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했다. 어느 정도 분담된 역할이 존재하지만, 다양한 아이디어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것 없이 섞이며 공간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NOL의 협업 방식이다.
가구를 오브제처럼 다루는 방식은 유행을 넘어 보편적 경향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공간에 맞는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할 때 무엇을 지양하나
최근 몇 년간 가구가 개성 강한 오브제로 다뤄지는 경우가 꽤 있었다. 가구가 오브제로 역할해야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겠지만 공간에서 사람과 사물, 주변 환경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좋은 공간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공간부터 가구, 조명 등의 기물까지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만든 것들이 오래 사용되기를 원한다. 공간이 철거되고 새로 생겨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폐자재를 생각하면 이 책임감은 더욱 커진다. 가구는 오브제 이전에 공간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이기에 강한 언어로 빚어져 그 자체로 주목받는 걸 지양해 왔다. 위트나 기능에 치우치지 않고 공간 속에서 자연스러운 존재감을 갖는 가구를 목표로 삼고 있다.

‘반짝이는 조각’이라는 컨셉트를 구현하는 재료로 곳곳을 구성한 ‘비이커 성수’.

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빛에 반응하는 재료와 이에 대비되는 검은색으로 구성한 ‘앤트러사이트 연희’.
설립부터 지금까지 소규모로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이것이 고유함을 잃지 않는 비결일까
작은 공간부터 큰 규모까지 대부분의 작업을 우리 둘과 최소한의 인원으로 진행해 왔다. 이로 인해 맡을 수 있는 프로젝트의 수도 제한적이고, 작업 효율적인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팀이 작기 때문에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천천히 오래 들여다볼 수 있다. 인테리어는 빠르고 촉박하게 움직여야 할 때가 많은데, 우리는 주어진 일정 내에서 공간설계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오래 본다고 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점에 다시 서서 돌아보는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요소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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