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가만두지 않는구나.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캠페인 ‘Craft is our Language’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캠페인 영상에는 알 만한 얼굴들이 등장해 저마다 손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전합니다. 배우 줄리안 무어는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내미는 행위 자체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탈리아의 테니스 선수 로렌초 무세티는 “손짓의 언어는 어디서든 통합니다”라는 생각을 펼쳐놓습니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래퍼 겸 프로듀서 타일러 오콘마는 이런 말을 남겼고요. “손으로 하는 작업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죠. 그림을 그리든 피아노를 치든 길게 뻗은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그 형태 자체가 예술이 될 수도 있어요.”

아티스트 아이엔(I.N)

배우 줄리안 무어(Julianne Moore)

레코딩 아티스트 겸 프로듀서 타일러 오콘마(Tyler Okonma)
그 와중에 캠페인 영상에는 손짓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허공을 휘젓거나 리듬을 타고, 손을 뻗었다가 두 손을 포개고 깍지를 끼는 아티스트들의 제스처에 저절로 눈이 가는데요. 캠페인에 참여한 영국 출신 소설가 제이디 스미스의 말마따나 혼신의 ‘손’ 연기를 보는 내내 에디터의 손도 꿈틀꿈틀 가만있지를 못 하더군요. “소설 속 등장인물이 손으로 무언가를 하면 독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동작을 그려보게 돼요. 저에게는 천국 같은 순간이죠.” 요컨대 말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손을 가만두지 않는 캠페인입니다.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보테가 베네타가 왜? 손과 손짓에 담긴 가치에 대해 이렇게까지 다루는 이유가 뭘까? 더군다나 새로운 캠페인은 보테가 베네타를 상징하는 인트레치아토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이뤄졌습니다. 보테가 베네타가 1975년 처음 선보인 인트레치아토는 얇은 가죽 스트랩을 장인들이 손으로 정교하게 엮는 시그니처 수공예 기법이죠. 제품에 로고를 넣지 않는 전통과 고집이야말로 브랜드의 정체성이고 매력인데, 인트레치아토만 봐도 보테가 베네타임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사실 인트레치아토는 단순한 제작 기법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어요. 가죽을 엮는 방식은 1966년 장인들의 결합으로 시작된 보테가 베네타의 창립 철학과 맞닿아 있고, 수공예와 창의성이라는 하우스의 원칙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인장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트레치아토는 보테가 베네타와 동의어처럼 여겨져 왔죠. 앞으로도 그럴 테고요. 그리고 장인들의 경이로운 공예성과 모방 불가능한 손재주가 없었다면 이런 일도, 그간의 영예로운 시간들도 없었겠지요. 인트레치아토 탄생 50주년을 기념한 캠페인에 ‘Craft is our Language’라는 제목이 쓰인 건 당연한 일입니다. 거기엔 조금의 의심도 여지도 없습니다. 창조의 도구이며 하우스의 기원과 다름없는 손을 조명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죠.



흥미로운 점은 ‘Craft is our Language’ 캠페인이 손을 뻗듯 전개한 인문학적 탐구입니다. 인트레치아토를 대변하는 손의 제스처와 연결성에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세대, 문화, 상황을 초월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보편적인 언어로서 ‘손짓’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는 작업을 함께 선보였습니다. 여기에는 보테가 베네타 장인들과 더불어 예술, 영화, 패션, 문학, 음악, 스포츠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이들이 손을 더했고요.
아티스트들의 면면이 쟁쟁합니다. 영화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보테가 베네타 디자인 디렉터를 역임했던 디자이너 에드워드 뷰캐넌, 배우 줄리안 무어, 트로이 코처, 지휘자 로렌초 비오티, 테니스 선수 로렌초 무세티, 뮤지션 타일러 오콘마 그리고 스트레이 키즈의 아이엔까지. 저마다의 영역에서 장인이라 불려도 무방한 이름들이죠. 그러고 보면 예술가(Artist)와 장인(Artisan)의 어원은 똑같이 라틴어 ‘아르스(ars)’입니다. 예술뿐 아니라 기술, 공예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캠페인 영상을 가득 채운 이들의 손짓과 손에 대한 철학은 모두 이 문장으로 수렴됩니다. ‘Craft is our Language’.







보테가 베네타의 이번 캠페인은 꽤 영리합니다. 제품을 내세우지 않고도 창립 이래 지켜온 브랜드의 본질과 진심을 시각적, 언어적인 메시지로 완벽하게 구현해 전달하니까요. 이건 제품 외부에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브랜드 철학과도 궤를 같이한다 느껴집니다. 한편으로 하우스의 보물 1호 격인 인트레치아토의 가치와 의의를 직접적으로 표현 가능한 장인, 기술, 수공예의 개념을 캠페인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도 인상적입니다. 그 대신 손의 제스처라는 보편적인 서사로 관심을 유도하고 더 큰 이해와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죠.
‘Craft is our Language’ 캠페인 영상에는 청각 장애인이자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 수상자인 배우 트로이 코처가 등장합니다. 그는 수어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요.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 생각해요. 예술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어요. 손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핏대를 세운 목소리보다 더 크게, 더 강렬하게 와닿는 트로이 코처의 사유를 빌려 적습니다. 손을 통해 하우스의 철학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보테가 베네타의 캠페인에 기꺼이 이렇게 맞장구를 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야말로 예술적인 손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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