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선재센터에서 7월 20일까지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를 선보이는 홍영인 작가.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 전시는 기생 출신 독립운동가 현계옥, 제주 해녀 부춘화, 청계피복노동조합 신순애까지, 역사 속에 가려진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다. 이 주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시작은 바느질이라는 작은 행위였다. 동대문 시장에서 자수 기술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눈을 떴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게 되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젊은 여성이 바느질을 배우는 걸 ‘돈 벌기 위한 일’로만 보던 시선들, 그 안에 묻혀 있던 수많은 이야기가 나를 움직였다. 특히 신순애 선생님의 〈13살 여공의 삶〉을 읽고 마음이 완전히 뒤집혔다. 그 책에는 문맹이어서 자신의 삶을 기록하지 못했던 여공들의 현실이 담겼는데, 읽을 수 없고 쓸 수 없었기에 역사에서 배제된 존재들의 기록이 뼈아프게 와 닿았다. 표현조차 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역사, 그 침묵을 어떻게든 꿰매고 싶었다.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루며 지금의 전시로 이어졌다.
태피스트리와 퍼포먼스,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역사’라는 일관된 주제를 풀어내 왔다
역사는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작업의 핵심이다. 특히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몸과 감각을 통해 체화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고, 그것을 예술로 표현하려고 했다. 언어가 아닌 몸과 참여, 실천을 통해 말이다. 심지어 ‘두루미’가 되려는 퍼포먼스도 그 일환이다.
사운드 설치미술 작품 ‘우연한 낙원’은 인간과 두루미의 경계를 흐리는 실험이 돋보인다. 두루미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충만함의 상징이다. 눈 내리는 DMZ에서 수백 마리의 두루미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봤을 때, 말이 안 나올 정도로 황홀했다. 그들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내가 뭔가 잃고 살아온 건 아닌가 싶더라. 두루미는 창작의 방향을 바꾸는 존재가 됐는데,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정신성과 공동체성이 나를 움직였다.
역사 속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현재로 불러내는 작업을 진행하며, 개인적으로 와 닿은 순간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을 향한 존경이었던 것 같다. 짚풀 공예를 하는 장인이나 바느질을 오랫동안 해온 분들과 일하며 그들의 태도나 순수함, 자부심에 깊이 감동했다. 덕분에 예술이라는 것이 단지 창조가 아니라 함께 살아낸 시간이라는 걸 배웠다. 이번 전시에 있을 퍼포먼스를 담당한 퍼포머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에 다가가고, 그 안에서 나도 다시 배웠다.

동물원에서 관찰한 동물 행동 풍부화 도구이자 고리 던지기, 종치기 등의 놀이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 소품 〈소품 5. 고리던지기〉.
5회에 걸쳐 진행될 이번 퍼포먼스 작업에서 특히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매번 각자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서 신기하고 인상 깊었다. 어떤 분은 항쟁의 역사를 보며 손동작 하나를 떠올렸고, 또 어떤 분은 해녀들이 물속에서 숨 쉬는 소리를 몸으로 표현하더라. 그 차이를 소중히 여기고, 그런 작업이 단순히 내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무언가가 된다는 걸 느꼈다.
전시를 통해 ‘제의적 공간’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지워진 역사와 억눌린 감각을 다시 소환하려고 했다. ‘제의’란 어떤 의미인가
내 작업이 늘 ‘의식’ 같았으면 한다. 퍼포먼스든, 설치미술이든, 신성한 행위처럼 느끼길 바란다.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공동체 감각이나 상징을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 내가 만든 조각이나 사물이 단지 예쁜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무구’처럼 작동하길 바라는 거지. 그래서 작업이 끝나고 퍼포머들이 들어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공간이 정말 살아나는 것 같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예술가’로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감각을 갖게 된다. 예술가로서 그런 시각을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역사의 주변에 머물렀던 이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조명하고 싶다. 스스로 어떤 여성인지 단정짓기 어렵지만, 예술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분명한 믿음은 가지고 살아간다.
앞으로도 잊힌 존재들을 계속 다룰 계획일까
당분간 그렇게 갈 것 같다. 특히 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그들의 시선에서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다면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동물원에서 시작된 관찰이 결국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거든. 아직 말로 정리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 존재들을 보며 내 안의 질문을 풀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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