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7 DESIGN SPACE
디테일로 완성한 미니멀리즘, 817디자인스페이스 임규범.

서초구 신원동에 위치한 임규범 대표의 집 겸 사무실 ‘빌라 트래버틴’.
2012년 스튜디오를 설립해 미니멀리즘에 기반한 건축 및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817디자인스페이스’의 시작은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갔다. 디자인에 집중하는 회사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해 주로 백화점이나 명품 브랜드 공간을 다루며 디테일 감각을 익혔다. 이후 건축사사무소로 옮겨 의도한 디자인을 잘 구현해 내는 훈련을 하며 단독주택부터 대기업 사무공간까지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 독립을 결심한 건 지인의 아파트 인테리어를 하면서였다. 당시 결과물을 인테리어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에 올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자신감을 얻어 2012년 스튜디오를 차렸다. 처음 사무실로 사용한 오피스텔 주소가 817호였다. 숫자로 된 이름이 당시엔 흔하지 않았고, 전화 응대할 때도 “817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더 감각적인 것 같았다(웃음).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컨셉트로 완성한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거실.

빌라 트래버틴 주방.
초창기 작업은 주로 20~30평대 아파트 인테리어였으나 지금은 그보다 넓은 규모의 하이엔드 주거로 범위가 확장됐다
초반엔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들어오는 문의로 포트폴리오를 쌓아갔다. 디자인이라고 할 게 없는, 허드렛일에 가까운 일을 맡거나 예산이 낮은 프로젝트도 많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밑거름이 됐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재료비를 부담하면서까지 완성도를 높인 적도 있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마다 정성을 쏟다 보니 더 큰 규모의 의뢰가 들어오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이엔드를 의도적으로 지향한 건 아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나 디테일을 구현하고 싶었고, 이런 마인드로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급 주거까지 확장된 것 같다.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컨셉트로 완성한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드레스 룸.
디자인 철학으로 ‘미니멀리즘’과 ‘선 정리’를 자주 언급한다
두 번째 직장에서 미니멀에 대한 감각을 많이 배웠다. 그곳 대표님이 군더더기를 싫어했고, 나 역시 그런 디자인에 끌렸다. 미니멀이라는 건 단순히 비우는 게 아니라 시선 안에 불필요한 요소를 감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2015년 40평대 아파트 현관에 화이트 붙박이장을 설치할 때 벽과 문틀의 마감재가 나뉘는 게 싫어 전체를 MD 필름으로 통일한 적 있다. 보통은 도배 후 걸레받이나 몰딩을 시공하지만, 그조차 거슬려서 생략하고 필름으로 깔끔하게 마감했다. 최근 주거 인테리어 트렌드로 몰딩을 하지 않거나 일체형 필름 마감이 유행하는 걸 보면 그보다 앞서 이런 스타일을 적용해 온 셈이다. 이후 필름 대신 무늬목 같은 고급 소재로 퀄리티를 높이기도 했다. 선 정리는 공간이 하나의 흐름으로 인지되는 설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강조한 것이다. 이런 디테일이 쌓여 공간의 품격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김해하우스.
매립된 냉난방기 공기를 얇은 선형의 틈으로 배출하는 라인 디퓨저를 이용한 군더더기 없는 천장도 817디자인스페이스 작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포인트다
그 디테일도 회사를 한층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 개인적으로 국내에 있는 많은 공간의 천장은 에어컨이 망친다고 생각한다. 2020년 한 펜트하우스를 리모델링하다 공사 중 천장에서 박공지붕의 구조를 발견했다. 일반적인 아파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구조여서 에어컨 설치를 위해 천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대신 박공지붕을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라인 디퓨저와 매립형 덕트를 사용해 천장 모서리 틈 사이로 에어컨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여기에 얇은 라인의 펜던트 조명과 업라이팅 조명을 설치해 박공지붕의 형태를 강조했다.

김해하우스.
구조 변경을 통해 아파트 공간을 과감히 개선한 시도들이 눈에 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현장이 생각난다. 부부만 사는 60평대 아파트였는데, 방 네 개가 있던 기존 구조에서 과감하게 벽을 철거하고 주방과 거실, 침실을 하나로 통합한 구조를 제안했다. 클라이언트는 원래 맥시멀리스트인데, 공간에 라이프스타일을 새롭게 맞추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해 극도로 미니멀한 공간으로 설계했다. 새로운 공간에서 정말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지내더라. 그 모습이 놀라웠고, 내게도 영감이 됐다.

천장에 달린 다비데 그로피 조명과 라인 디퓨저의 조화가 아름다운 청담동 테일러 숍 ‘루스트로’.
지금은 서초구 신원동에 주택을 짓고 1층을 사무실, 2층을 주거공간으로 사용한다
다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해 주면서 내 공간을 온전히 꾸미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워 직접 짓게 됐다. 되도록이면 주거와 사무공간을 분리하고 싶었지만, 서울에선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인테리어부터 가구 디자인까지 총괄한 ‘최상산부인과’ 로비.
미니멀한 디자인에 트래버틴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마감재와 디테일에 신경 쓴 흔적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다양한 IoT 기술까지 더했다
트래버틴을 처음 다뤄본 건 첫 직장에서 막스마라 매장을 디자인할 때였다. 이후 루이스 칸의 솔크 연구소나 LA 게티 뮤지엄을 방문하면서 이 소재의 매력에 빠졌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단단하며, 깊이가 느껴지는 표면이 마음에 든다. 사실 트래버틴은 외장재로 잘 사용하지 않아 도전이었지만, 개인적 만족도는 매우 높다.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기능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IoT 기술도 적극 적용했다. 조명이나 블라인드, 에어컨 등을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아침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조명이 켜지고 블라인드가 열리는 식으로 한층 매끄러운 생활공간을 완성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단순히 기술을 연결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읽고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적 분위기가 인상적인 루스트로 피팅 룸.
해당 집은 유튜브와 SNS 등에 ‘빌라 트래버틴’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앞으로 817디자인스페이스의 여정에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다
우리도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몰랐다. 대관 제안도 많이 들어오고, 무엇보다 우리 스타일과 디자인 철학을 존중하는 설계 의뢰가 눈에 띄게 늘어 감사하다. 이곳이 817의 색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초대형 혼성 신인 ‘올데이 프로젝트’를 주목할 7가지 이유
- 알렉산더 맥퀸부터 미스 소희까지 탄생시킨 패션쇼, 다음은 누구?
- 스타들이 굳이 아침에 유정란 챙겨먹는 이유
- 여름 티셔츠의 리듬을 바꿔 놓을 여름 바지
- 올리비아 로드리고처럼 질리지 않게 도트 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