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으로 예술하는 사람들, 이름하여 카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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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구찌의 전시에 참여하며 제작된 인터뷰 속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10대 때부터 연을 만들고 날렸어요. 지금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요. 연을 만드는 일은 뿌리로 돌아가는 느낌이죠. 우리의 창의성이 시작된 그곳으로.”

10대 시절, 그러니까 모리스 셸턴스(Maurice Scheltens)와 베르티안 포트(Bertjan Pot)가 서로 모르는 사이일 때부터 우리는 각자 ‘파워 카이팅(Power Kiting)’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엔 큰 연을 돛 삼아 해변을 질주하는 방식으로 즐겼죠. 나중에 그것이 카이트 서핑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저희는 이미 각자의 창작 활동으로 바쁜 시기였어요. 당시 리스베트 아베네스(Liesbeth Abbenes)는 예술가로서 퀼트와 직물 벽걸이 작업을 해왔어요. 그러다 몇 년 전 모리스와 베르티안이 연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다시 연결되었어요. 리스베트는 연의 직물적 가능성에 흥미를 느껴 곧바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바닷가에서 놀기 위해 휴가 직전 몇 개의 연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세 사람 모두 연에 대한 열정이 강해 금방 일이 커졌어요. 카이트 클럽의 인스타그램 계정(@_kite_clubclub_)도 만들고, 몇 차례 워크숍과 예술 관련 페스티벌, 기관에서 전시도 열게 됐죠.

디자이너 베르티안 포트, 사진가와 아티스트 듀오인 리스베트 아베네스 그리고 모리스 셸턴스가 함께하는 팀입니다. 세 사람의 협업 방식이 궁금해요

연 커뮤니티의 매력 중 하나는 ‘오픈 소스 정신’이 살아 있다는 거예요. 저희 셋도 연을 만들며 얻은 기술, 연결 방식, 재봉 팁 등을 서로 아낌없이 공유합니다. 덕분에 세 사람의 창의력이 자연스럽게 쌓이고, 이 모든 게 카이트 클럽으로 이어지죠. 각자 취향과 관심사가 분명해서 누가 어떤 연을 만들었는지 저희는 잘 알지만, 아이디어가 겹치는 영역에선 서로 관대하고 이기적이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워크숍이나 전시 그리고 최근에는 책 작업까지 포함하고 있어요.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하고요. 특히 타협 없는 창작이 가능한 예술 영역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과업 중심의 작업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해요.

리스베스가 고안한 연 ‘블로운 어웨이’.

리스베스가 고안한 연 ‘블로운 어웨이’.

분리 가능한 구조의 연을 만들기 위해 리스톱 나일론과 석유 기반의 플라스틱 재료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창작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도 고려하나요

밀란 디자인 위크의 전시를 위해서는 ‘이지 카이트’라는 연을 만들었어요. 폐기물과 플라스틱 빨대, 스카치테이프로 제작한 연이었죠. 쓰레기 같은 재료로 얼마나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저희도 놀랐습니다.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재료의 대부분은 석유 기반의 플라스틱이에요. 하지만 이 연들은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든 만큼 쉽사리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 가치를 두고 있어요.

일본식 카쿠다코 프레임에 태슬과 꼬리를 붙여 멕시코풍으로 완성한 6㎡의 패치워크 연.

일본식 카쿠다코 프레임에 태슬과 꼬리를 붙여 멕시코풍으로 완성한 6㎡의 패치워크 연.

한국에서는 연날리기가 전통놀이이자 일종의 공예입니다. 카이트 클럽의 작업은 특정한 전통이나 공예, 문화적 기억과 연결돼 있나요

저희는 전 세계의 연날리기 역사와 의미를 꽤 조사했어요. 하지만 항상 문화들을 혼합하고 새롭게 조합해 새로운 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의 전통적인 파이터 카이트(싸움 연)는 구조가 매우 영리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데, 저희는 장식 이상의 의미로 꼬리나 술을 풍성하게 매달기를 즐겨요. 연이 하늘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조용히 비행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원래 파이터 카이트는 훨씬 역동적이고 불안정하게 비행하는 연이죠.

2025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구찌가 대나무를 주제로 선보인 전시에 협업하며 제작한 이지 카이트.

2025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구찌가 대나무를 주제로 선보인 전시에 협업하며 제작한 이지 카이트.

연을 만들거나 날리는 과정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나요? 카이트 클럽의 여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얼마 전에 직접 리스톱 나일론을 염색하면 더 좋은 색을 구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연은 특정한 순간을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리스베트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연을 함께 만든 적이 있어요. 그녀의 유골을 뿌릴 때 직접 만든 연을 날렸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특별했어요. 손에 쥐고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연이 하늘 멀리서 나는 것을 볼 땐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마법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카이트 클럽으로 날아온 여정은 매 순간 우리에게 큰 영감과 배움을 줬어요.

해변에서 연날리기를 준비 중인 베르티안 포트.

해변에서 연날리기를 준비 중인 베르티안 포트.

그렇다면 카이트 클럽의 일원 모두 동감하는 즐거움은

우리가 만든 연이 실제로 하늘을 날 때마다 여전히 짜릿한 감동을 느낍니다. 그건 마법 같기도 하고, 어떤 힘이 생기는 느낌이기도 해요. 가장 좋아하는 칭찬 중 하나는 “나도 연을 만들어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예요. 단순히 소비만 하지 않고 직접 만드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연을 날려봐요!”도 좋지만 “연을 만들어봐요!”는 더 좋죠.

연 만들기 튜토리얼을 담은 책 〈One Single Kite〉.

연 만들기 튜토리얼을 담은 책 〈One Single Kite〉.

카이트 클럽의 작업을 볼 때마다 저도 연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카이트 클럽이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공유하고 싶은 경험은 무엇인가요? 재미, 성찰, 몰입…. 아니면 이와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일까요

질문에 답이 담겨 있는 것 같네요. 저희는 그 모든 것을 원해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연도 존중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멋지게 만든 연을 해변에서 함께 날릴 수 있다면! 모두가 하얀 전시장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과는 사뭇 다른 영감을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 한 개의 연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One Single Kite〉라는 책도 발간했습니다

책을 만든 데는 여러 이유가 있어요. 당연히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연을 만들었으면 하기 때문에 책 전체를 연 만들기 튜토리얼로 구성했죠.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연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연이 날아오르는 순간이 가장 눈에 띄겠지만, 그 이전의 모든 과정도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연 만들기 튜토리얼을 담은 책 〈One Single Kite〉.

연 만들기 튜토리얼을 담은 책 〈One Single Kite〉.

다음 행보를 알려주세요. 또 어디에서 카이트 클럽을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은 네덜란드 ‘포를린던 미술관’에서 2주간 진행되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엔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미술관 안팎에서 연을 만들고 날리는 작업을 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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