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퍼 신선혜의 집에 담긴 초여름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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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신선혜의 집 2층. 거실과 다이닝 룸, 부엌이 차례로 연결돼 있다.

포토그래퍼 신선혜의 집 2층. 거실과 다이닝 룸, 부엌이 차례로 연결돼 있다.

“늦은 오후, 4시 즈음에 촬영하면 좋겠어요. 부엌 안쪽으로 스미는 빛이 참 예쁘거든요.” 매거진과 브랜드 촬영으로 하루하루를 분주하게 보내는 사진가가 선택한 시간을 확고하게 믿고 집에 들어선 순간, 그녀가 굳이 그 시간을 고집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거실에서 다이닝 룸으로, 다시 부엌으로 물처럼 흐르며 이어지는 햇빛의 변화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최근 새 단장을 마친 부엌은 햇빛이 이곳의 마지막 터치인 것처럼 공간 구석구석을 빛내고 있었다. 그즈음에 시작된 촬영은 일몰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온갖 컬러가 가득한 그녀의 집은 해가 저무는 속도에 따라 빠르게 노랗고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원래 베란다였던 공간을 내부와 연결해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온실처럼 햇빛이 잘 든다.

원래 베란다였던 공간을 내부와 연결해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온실처럼 햇빛이 잘 든다.

결혼 후 줄곧 같은 지역의 빌라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신혼집도 지금 집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빌라였어요. 스튜디오나 촬영지로 이동할 때도 편하고, 아파트나 단독주택에서 느끼기 힘든 독특하고 새로운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이 집에서 6년째 살고 있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건 역시 구조입니다. 빌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집 구조 때문에 다음 집 역시 빌라를 선택하게 될 것 같아요.

3면에 책장이 빌트인 시스템으로 구성된 독특한 디자인의 가죽 소파는 빈티지 사이트에서 구입한 것.

3면에 책장이 빌트인 시스템으로 구성된 독특한 디자인의 가죽 소파는 빈티지 사이트에서 구입한 것.

처음 이 집을 봤을 때는 어떤 상태였나요

전체적으로 방 1개, 화장실 3개 구성이에요. 현관에 들어서면 방 2개와 화장실이 있고, 계단을 올라오면 거실이 펼쳐지는데, 다이닝 룸과 부엌까지 한 번에 길게 이어진 특별한 구조였어요. 안쪽으로는 메인 침실과 메인 화장실이 있고 게스트 화장실은 거실과 메인 침실 사이에 자리하고 있고요. 부부만 사는 집이기 때문에 방이 많지 않아도 괜찮고, 부엌 공간이 넉넉한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새롭게 공사를 마친 부엌. 가운데 자리한 비정형 아일랜드와 수납 가구의 색, 디자인은 모두 주인의 아이디어다.

새롭게 공사를 마친 부엌. 가운데 자리한 비정형 아일랜드와 수납 가구의 색, 디자인은 모두 주인의 아이디어다.

공사를 하기 전의 집과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1985년에 지어진 빌라여서 지을 당시의 인테리어가 그대로 유지된 공간이었어요. 큰 구조 변경은 하지 않았지만 소재와 조명 교체, 공간 분리 면에서는 제법 전면적인 공사를 했습니다. 부엌과 다이닝 룸, 거실을 분리하고 구획하기 위해 둥근 기둥을 설치했는데 없는 기둥을 새로 만드는 건 많이 하지 않는 시도라 당시 공사 팀도 조금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2층 한가운데는 원래 없던 자줏빛 기둥을 세웠다.

2층 한가운데는 원래 없던 자줏빛 기둥을 세웠다.

창문이 크고 많아요. 집 전체를 여러 창이 둘러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침실과 거실, 다이닝 룸, 부엌까지 이어지는 창문으로 어느 방향이든 온종일 빛이 스며들어요. 이 집의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죠. 부엌 옆의 공간은 원래 베란다였는데 그쪽으로 들어오는 빛을 집 안에 들이고 싶어 벽을 허물고 부엌과 연결했어요. 덕분에 온실 같은 공간이 생겼죠.

메인 침실에 가벽을 세워 안쪽에 침대만 놓인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다.

메인 침실에 가벽을 세워 안쪽에 침대만 놓인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다.

부엌을 새롭게 공사했어요. 어떤 부엌을 원했나요

첫 공사 때 완성된 부엌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특히 부엌 장이 내가 원했던 컬러나 디자인이 아니었고, 살다 보니 수납공간도 필요해서 공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집에 거주하면서 부분 공사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후에 완벽한 제 취향의 부엌을 얻게 됐어요. 여러 레퍼런스를 통해 화이트와 크림색의 중간 컬러와 오래된 빈티지 가구 같은 나무색이 조합된 부엌 가구를 머릿속에 그렸어요. 왼쪽 코너에는 빈티지 분위기의 가스레인지와 후드를 넣고 싶었고요. 벽에 칠한 노란색의 채도도 정확히 정해져 있어 결정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예상은 했지만 제가 바라는 색과 질감을 제대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몇 번을 다시 작업한 끝에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문고리도 직접 주문해 원하는 나무색으로 도장해서 만들었죠. 부엌 중앙에 비정형 형태의 아일랜드를 새롭게 설치했는데, 스틸과 대리석이 조합된 상판이 특징입니다. 상판 가운데는 꽃병을 놓을 수 있도록 동그란 자리를 낸 것도 마음에 들어요.

빈티지 컬러와 타일 패턴으로 이국적 느낌을 자아내는 1층 화장실.

빈티지 컬러와 타일 패턴으로 이국적 느낌을 자아내는 1층 화장실.

가구의 대부분은 빈티지인 것 같습니다

이베이나 현지 빈티지 숍 사이트를 통해 구매한 것이 많고, 국내 빈티지 숍에서 발견하기도 했어요. 여러 번 주문하다 보니 이제는 숍 주인과 타협하는 기술도 터득하게 됐죠. 특히 소파는 양옆과 뒤에 책장처럼 책을 꽂을 수 있게 디자인된 제품을 발견하고 고민 없이 주문했습니다. 오래 사용해서 가죽이 낡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드는 아이템입니다. 오래전부터 빈티지 마켓을 좋아해서 작은 가구나 소품을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출장 갈 때면 그 도시의 빈티지 마켓에 꼭 들러요. 집 안 곳곳의 꽃병이나 접시를 비롯한 소품, 장식품은 여러 나라의 빈티지 숍이나 마켓에서 발견한 것들이에요.

신선혜의 대형 사진과 빈티지 옷걸이, USM 수납장이 어우러진 메인 침실.

신선혜의 대형 사진과 빈티지 옷걸이, USM 수납장이 어우러진 메인 침실.

요즘 인기 있는 디자이너의 클래식 아이템이나 브랜드의 마스터피스 같은 가구들이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해요

역사적인 디자인 피스 수집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오히려 ‘언노운’이더라도 그만의 스토리와 미감이 느껴지는 가구들이 좋습니다. 책을 보거나 인터넷 서칭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가구, 공간 세팅의 예시를 발견하면 이미지를 저장해 두고, 새로운 가구를 구입할 때가 되면 레퍼런스로 하나씩 꺼내 보죠. 빈티지 가구는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만나게 되잖아요. 그래서 가구를 구입할 때 마음에 맞는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오래 찾아보고 생각하며 ‘그 순간’을 기다리는 편이에요.

다이닝 룸 창가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크고 작은 물건들이 올려져 있다. 이 물건들은 자주 자리가 바뀐다.

다이닝 룸 창가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크고 작은 물건들이 올려져 있다. 이 물건들은 자주 자리가 바뀐다.

집 안 곳곳에 다양한 컬러를 사용했지만 전혀 복잡해 보이지 않습니다

부엌 안쪽과 거실 벽에 연한 옐로 페인트를 사용했고, 거실 기둥에는 와인빛에 가까운 컬러로 도장했어요. 메인 침실은 침대가 놓인 바닥에만 하늘색 마모륨을 시공했습니다. 강한 원색보다 톤 다운된 컬러라 한 공간에 다른 컬러들이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공간에 컬러를 사용하는 데 부담감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요. ‘어울리지 않으면 다른 색으로 다시 칠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도전해요.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죠. 그곳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취향에 영향을 줬을까요

밀란 부근의 작은 도시에서 3년 정도 머물렀는데 짧은 시간 동안 꽤 빠르게 저만의 취향을 만들었어요. 첫 독립생활을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여느 유학생들이 그렇듯 이케아 가구부터 시작했어요. 하지만 집 앞에서 주말마다 열리던 빈티지 마켓을 구경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이탈리아 빈티지 가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갔죠. 처음부터 그 방에 놓여 있었던 빈티지 꽃무늬 벽장이나 소파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름다운 디자인 가구였어요.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요. 여러 나라로 출장을 다니지만, 저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올해 초에는 시칠리아에 가서 이탈리아 남부 겨울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돌아왔어요. 물론 페인팅 도자기 같은 전리품도 여러 점 갖고 왔고요.

신선혜의 집 곳곳에 놓인 소품은 대부분 그녀가 전 세계 빈티지 마켓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신선혜의 집 곳곳에 놓인 소품은 대부분 그녀가 전 세계 빈티지 마켓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일로, 여행으로 세상의 많은 도시와 공간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중 강하게 영감을 받은 공간은 어디인가요

어느 도시든 주로 에어비앤비에서 묵는 편이에요. 주인의 생활감이 묻어 있는 가구들과 물건, 공간 배치를 보며 많은 영감을 얻기 때문이죠. 프랑스 마르세유 부근의 작은 도시와 베를린의 에어비앤비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이번에 부엌 공사를 할 때도 에어비앤비를 검색하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평소 관심이 있던 도시의 에어비앤비를 검색해 이 집 저 집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견하는 식이죠.

오랫동안 수집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공간이라니, 완벽한 취향의 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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