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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우느라 바빴다.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고 억울한 일도 없었는데. 아주 사소하고 반반한 이유 때문에 자주 운다. 어디서든 눈물이 톡 떨어지는 순간에 ‘참, 웃기다’면서 친구들에게 붉게 물든 눈과 코를 우스꽝스럽게 찍어 보냈다. “어때, 나 정말 잘 울지?” 하면 다 같이 웃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우는 나는 사람들을 자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우는 나를 보고 눈길을 거두거나 잘 다가오지 못했다. 가끔 내가 많은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건 아닌지, 가능하다면 눈알을 뽑아서 무언가 심하게 고장 난 건 아닌지 점검하고 싶었다.
나는 크게 앓아본 적도 없고, 잔병치레도 잘 안 한다. 그러다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환한 방에 오도카니 앉은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아무도 일을 주거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보송하게 세탁한 옷 한 벌을 준 게 전부다. 그러다 보니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환한 낮이어서 잘 기분도 아니었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건 누워서 자거나 자는 척하는 일이니까. 나는 벽을 바라보고 누워 팔을 베개 삼아 눈을 감았다. 솔솔한 기분이 좋았다. 옅은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깨운 건 맞은편 병상에 있는 윤정 씨였다. 윤정 씨가 삐죽 내려온 내 머리칼을 사악 쓸어 넘기면서 볼을 만졌다. 나는 퍼뜩 깨고 말았다. 그 손길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된 듯 부드러웠다. 나조차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손길은 매우 무서웠다. 어쩔 줄 몰랐다. 왜 나를 이렇게 만지는 거죠? 윤정 씨. 절 아세요? 저는 윤정 씨 딸이 아닌데요. 윤정 씨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곧 간호사가 와서 나와 윤정 씨 사이를 떨어뜨려놓았다.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환자는 환자를 만지면 안 되나 보다. 참 좋았는데. 그 이후로 윤정 씨가 언제 나를 한 번 더 쓰다듬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잠든 척 연기했다. 윤정 씨가 내 얼굴을 만지고 중얼거렸던 게 잊히지 않아 힘들었다. “참 예쁘네. 우리 딸.” 윤정 씨에게는 아들 한 명과 매일 과일을 깎아주는 남편만 있는데. 윤정 씨와 특출한 우정을 쌓거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건 아니다. 솔직히 윤정 씨가 내 얼굴을 만진 게 전부다. 내가 말을 거는 일도 없었고, 윤정 씨는 애초에 다른 환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가끔 새콤한 간식이 나오면 ‘참 좋지 않니?’ 하는 표정으로 서로 말없이 웃곤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게다가 윤정 씨는 나보다 더 많이 자는 사람이었다. 내가 윤정 씨를 볼 때 그는 자고 있거나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병원에서는 매일 아침 환자들의 애창곡을 틀어주었다. 매일 밤 환자들은 잘 준비를 마친 뒤 게시판에 걸린 신청곡 리스트 앞에 줄을 서서 한참 고민했다. 윤정 씨는 거의 매일 첫 번째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에게는 무조건 단 한 사람의 목소리만 유효했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의 노래,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윤정 씨 역시 퍼뜩 일어나 몸을 살랑살랑 흔든다. 아주 크게 웃으면서 노래를 만끽한다. 노래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퍽 하고 누워버린다. 그 다음부터 재생되는 노래들은 그에겐 소음과 다르지 않다. 내가 윤정 씨를 ‘윤정 씨’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런 이유다. 진짜 이름이 뭔지 모른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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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 씨는 병동에서 최고참 환우였다. 나보다 빨리 퇴원하는 건 기정사실이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이유로 있고 어떤 지점이 얼마나 나아져서 언제 돌아가는지는 몰랐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할 뿐이었다. “참새야, 나 내일 간다.” “네, 윤정 씨…. 먼저 퇴원하시네요. 그런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병실에서 개별 환자는 별도로 부여된 번호나 침대 위치로 호출되고 개인 정보는 공유되지 않는다. 그가 내 이름을 어쩌다 알게 됐는지는 모른다. 그저 내가 윤정 씨를 기억하는 이유가 매일 아침 동명의 트로트 가수가 부른 노래에 몸을 내맡기던 그 사람을 어느 순간부터 윤정 씨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윤정 씨가 떠나간다니 약간 서운했다. 침대맡에 걸터앉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화 같은 걸 했다. “참새 네가 매일 나 세수했는지, 샤워는 언제 할 건지, 운동은 했는지 확인하는 것 알고 있었어. 칭찬 스티커 나도 받고 싶어서 따라 해봤어. 참새 네가 그걸 참 열심히 하더라고. 귀여웠어. 새로 온 쟤는 무섭다. 참새 너는 안 그랬지. 너는 참 예뻤지.” 모든 게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윤정 씨가 내 얼굴을 만졌다는 것, 윤정 씨가 장윤정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는 것, 어쩌다 나눈 조각보 같은 대화나 같이 먹은 식단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슬펐다. 여러 번 고민하고 곱씹어보고 이렇게 글로도 쓰고 있지만, 윤정 씨와 있었던 일을 내 마음대로 지어낼 때마다 나를 안심시키게 된다. 이런 좋은 기억이 있었어. 병원이란 곳에서 윤정 씨랑 이런 말을 나눴어. 참 좋은 것이었어.
윤정 씨는 정말 매몰차게 떠났다. 못다 먹은 간식을 물려준다든지, 병원의 기억이 어땠는지, 여기서 날 만난 게 무슨 의미였는지, 드디어 집에 가서 얼마나 기쁜지 같은 것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내 뺨을 한 번 더 어루만져 주거나 조심스러운 포옹을 기대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뒷모습이 얼마나 홀가분해 보였는지는 기억난다. 너무 좋아 보여서 나도 그곳을 박차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칼날 같은 여름이 온 지 한참인데 나는 여름 너머에 있다. 아직도 환자복을 입고 있고, 윤정 씨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 그곳, 새 계절도 새 생활도 오지 않은 그 경계의 장소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윤정 씨가 갔으니 여름이 곧 올 것이다 하고. 윤정 씨, 잘 가요. 그리고 윤정 씨, 내 이름도 참새가 아니에요. 내 이름은…. 너무 울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안 해야겠다. 그냥 다 같이 조금 곤란하고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내일 들을 노래나 같이 생각해 보면 되는 일이다. 자기 전부터 꾸려놓은 미래의 아침에 예정대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그냥 살랑살랑 몸을 좀 흔들면 되는 일. 전부 기억에 남지 않아도 말이다.
박참새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 〈시인들〉을 펴냈다.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시집 〈정신머리〉를 출간했고,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을 펴냈다. 글자에 가둬지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능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