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데이즈오브디자인을 뜨겁게 달군 뱅앤올룹슨의 지속가능 디자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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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3일, 전 세계 디자인 러버가 모여드는 코펜하겐으로 모여드는 시간. ‘쓰리데이즈오브디자인’을 뜨겁게 달군 뱅앤올룹슨의 뉴 컬렉션이 공개됐습니다. 바로 타임리스 디자인의 정수가 담긴 리미티드 에디션이었죠.

세계적인 건축 스튜디오 BIG 사옥 1층에 전시된 베오시스템 3000c.

세계적인 건축 스튜디오 BIG 사옥 1층에 전시된 베오시스템 3000c.

재창조된 클래식
‘쓰리데이즈오브디자인(3 Days of Design, 이하 3DD)’ 기간, 코펜하겐은 전 세계 다양한 브랜드가 모여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는 박람회장으로 변모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뉴’를 외치는 이 때에 올해 뱅앤올룹슨이 선보인 건 복각한 턴테이블 ‘베오시스템 3000c(Beosystem 3000c)’이었는데요. 의아함도 잠시, 코펜하겐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뱅앤올룹슨의 이벤트 수석 컨설턴트 애니 마리 몰린(Annie Marie Moulin)의 설명을 듣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결정임을 수긍했습니다. “우리가 최근 몇 년간 계속 해온 일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뱅앤올룹슨이 지속가능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입니다. 모든 제품은 ‘C2C(Cradle to Cradle, 요람에서 요람으로)’ 인증을 받았고,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5년 전부터 ‘리크리에이티드 클래식(Recreated Classic)’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1985년 출시된 베오그램 3000 턴테이블에 베오랩 8 스피커를 연동시켜 완성한 베오시스템 3000c. 와이파이 연결 및 블루투스를 통한 스트리밍 재생이 가능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1985년 출시된 베오그램 3000 턴테이블에 베오랩 8 스피커를 연동시켜 완성한 베오시스템 3000c. 와이파이 연결 및 블루투스를 통한 스트리밍 재생이 가능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레전드 턴테이블의 화려한 부활
뱅앤올룹슨의 ‘리크리에이티드 클래식(Recreated Classic)’은 과거의 대표적 제품을 브랜드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수집, 복원해 최신 기술과 현대적 미감을 더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리크리에이티드 클래식의 일환으로 선보인 베오시스템 3000c의 원형은 바로, 1985년 출시돼 당대 하이파이 오디오의 판도를 바꾼 턴테이블 ‘베오그램 3000(Beogram 3000)’. 캐나다 디자이너 스티브 맥건(Steve McGugan)이 디자인한 것으로, 반복 재생이나 바늘 각도를 수직으로 고정해 왜곡을 방지하는 ‘탠젠셜 암(tangential arm)’ 등 당대로서 매우 혁신적인 기술이 내재된 전설적 시스템인데요. 여기에 최신 스테레오 스피커 ‘베오랩 8(Beolab 8)’을 접목시켜, 바이닐의 감성과 최신 음향 기술이 한데 공존하는 컬렉션을 탄생시켰습니다. 수량은 전 세계에서 단 100대. 1부터 100까지 고유한 넘버링을 부여한 이 컬렉션은 이미 출시 2주 만에 80여 대가 주인을 찾아간 상태였죠.

복원이 아닌 재창조
앞서 ‘복각’이라는 단어로 일축했지만, 베오그램 3000c의 탄생 과정은 ‘복원’ 또는 ‘재설계’라기보다 하나의 오리지널 피스를 만드는 일에 좀 더 가깝습니다. 장인들의 손으로 일일이 가공한 월넛으로 교체하고 재아노다이징 처리된 알루미늄으로 마감 처리를 하며, 마치 디자이너의 가구를 만들듯 마감재 하나에도 완벽을 기하는 과정이 따르기 때문이죠. “베오그램 3000c의 목재 커버는 여러 조각을 덧대지 않고 하나의 나무를 깎아 만들었어요. 그래서 색감도 통일돼 있고 나뭇결도 매우 자연스럽죠. 코펜하겐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섬에 있는 목공소와 협업했습니다. 1949년부터 저희와 함께 해온 곳인데, 가구도 제작할 만큼 숙련된 장인들이 있고, 무엇보다 소재 품질을 일 순위로 여기죠. 닐센(Nielsen)이라는 장인은 목재를 보면 ‘이건 뱅앤올룹슨용이다’라고 알아볼 정도입니다.”

건축가 비야르케 잉엘스와 함께한 토크 프로그램.

토크부터 깜짝 선공개까지, 다채로운 이벤트의 향연
올해 3DD에서 뱅앤올룹슨은 ‘미래 세대를 위한 디자인 – 100년의 디자인에서 배운 교훈’이라는 주제 아래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두 대의 베오시스템 3000c를 코펜하겐 플래그십 스토어와 건축 스튜디오 BIG 사옥에서 공개했는데요,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BIG 1층에 마련된 몰입형 설치 작품이었습니다. 거대한 레코드판 위에 놓인 베오시스템 3000c은 지속가능성을 창조적 기회이자 공간을 만드는 원동력으로 삼아온 BIG의 철학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졌죠. BIG의 수장 비야르케 잉엘스(Bjarke Ingels)와 뱅앤올룹슨의 제품 순환성 디렉터 마즈 코그스가르드 한센(Mads Kogsgaard Hansen)이 순환형 디자인과 장인정신의 미래에 대해 나눈 루프탑 토크에도 상당한 인파가 몰렸습니다.

아틀리에 리미티드 에디션 아르데코.

뱅앤올룹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가져온 바이닐을 베오시스템 3000c로 재생하는 리스닝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막 오픈해 한산한 아침 시간, 그 사운드의 위력을 오롯이 혼자 누릴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으레 ‘바이닐’을 통해서라면 기대조차 못할 풍부한 공명이 공간 전체를 채웠기 때문이죠. “닭살 돋을 준비 됐나요?” 제품 시연 전 자신 있게 묻는 애니의 질문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한편, 행사 기간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베오랩 28(Beolab 28)’ 스피커와 ‘베오비전 시어터(Beovision Theatre)’를 1920년대 아르데코풍으로 재해석한 사운드 시스템 ‘아틀리에 에디션(Atelier Edition)’도 깜짝 선공개 됐습니다. 이 역시 전 세계 100대, 국내에서는 단 1대만 판매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사운드 미학의 완성
1925년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해 MoMA에 영구 소장될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100년 간 뱅앤올룹슨을 이끌어온 건 사운드 경험에 대한 폭넓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건 제품의 ‘수명’과 ‘개성’이에요. 음악은 단순히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각적으로도 즐거워야 하죠. 100년의 역사 속에서 지켜온 생각이에요. 엔지니어 중심의 회사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품을 디자인적 관점에서도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고객이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집에 놓고 자랑할 수 있는 오브제가 되도록 말이죠.”

동시대 진정한 클래식을 만드는 법
제품의 수명을 늘리고 동시대적 효용을 더해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한바탕 유행에 쓸려 창고 신세에 그치는 물건이 아니라 세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클래식’을 세상에 남기는 것. ‘지속가능’에 관한 복잡한 정의가 만연한 가운데, 지속가능성을 향한 뱅앤올룹슨의 제스처는 더없이 단순하고 그래서 오히려 매혹적입니다. 올해 3DD에서 확인한 뱅앤올룹슨의 메시지는 단순한 레트로를 향한 향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동시대적 디자인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선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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