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대균의 데일리 공간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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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직업인 나는 공간을 X축, 시간을 Y축에 놓고 나라는 존재를 좌표값에 넣어본다. 이것을 발명한 사람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남긴 근대철학의 아버지이자, 해석기하학의 창시자 르네 데카르트다. 모든 존재는 공간 좌표를 통해 존재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기호화할 수 있다는 그의 탁월한 해석은 내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침대, 해 뜰 녘(X, Y) 비밀을 하나 말하면 나에게는 사소하지만 꽤 유용한 능력이 하나 있다. 바로 해가 뜰 무렵 알람 없이 자동적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전부터 이 능력은 나의 다른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주방 거실, 아침 1부(X, Y) 일어나자마자 화장실과 욕실에 간 후, 주방에서 전기 포트로 물을 끓인다. 물을 끓이는 막간에 주방과 이어진 거실에서 오디오 파워 앰프를 켠 다음, 프리 앰프에 전원을 넣고 마지막으로 LP 턴테이블이나 CD 플레이어를 켜서 오디오에 온기를 넣는다. 그동안 물은 다 끓었고, 캠핑용 파타고니아 보온컵에 뜨거운 물 반과 생수 4분의 1을 섞어 여러 차례 나눠 마신다. 이렇게 하면 몸에 생기가 돌고 의식이 깨어난다. 이전의 행동들이 오랜 기간 반복으로 생긴 무의식적 반응이라면, 지금부터는 의식의 시간이다. 가장 우선하는 행위는 하루를 시작할 음악을 신중하고 신속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장르는 관계없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음악을 선택한다. 음악이 집을 채우면 집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거실 서재, 아침 2부(X, Y) 하루 중 몸과 마음이 가장 맑을 때다. 직접 디자인한 길이 1.8m, 폭 0.8m의 유리 상판 책상 위에 있는 25년 지기 아르테미데 톨로메오 조명을 켜고, 사무용 의자를 최초로 디자인한 돈 채드윅의 채드윅 체어에 앉아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하나씩 점검한다. 조각가가 형태 없는 나무를 점진적으로 다듬어 생명이 깃든 섬세한 작품을 만들듯, 건물의 치수를 미세하게 조정하고 마감재를 상상해 보며 모서리나 처마 끝의 마감 디테일을 고민해 사무실에서 의논할 내용을 정리한다. 업무 내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다시 주방으로 향한다. 타이트한 아침 커피는 스틱형 동결건조 커피다. 이걸로 충분하다. 한결같은 맛은 ‘일상’의 기분을 유지해 준다. 다시 커피잔을 들고 책상에 앉는다. 책상 위에서 읽고 있던 책을 펼쳐 든다. 읽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일시 정지 모드로 전환하고, 메모장에 다이어그램이나 그림을 섞어 글과 함께 남긴다. 나중에 메모를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내용도 상당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매번 이런 행위의 반복이 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유용한 것의 가치는 지금의 수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옷장 현관, 아침 3부(X, Y) 옷장에서 늘 비슷한 나일론 재질의 검은색 또는 흰색 옷을 꺼내 입는다. 같은 옷을 여러 벌 사서 갈아입기 때문에 늘 같은 옷을 입는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어제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인지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지만, 상대방을 향한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게 사실인 것 같다. 가방에 정리한 메모들과 필통, 지갑, 스마트폰,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챙긴 후 한스 웨그너가 디자인한 CH88 의자에 앉아 편하고 느긋하게 양말을 신는다. 아침에 양말을 허겁지겁 신는 일만은 피하고 싶어 양말 신는 전용 의자를 두었다. 현관 앞 검은색 신발 중에서 마음에 드는 하나를 신는다. 자, 오늘 하루도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 집에 돌아와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오디오에 온기를 넣고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희망을 품고 현관문을 나선다. 아, 퇴근하고 싶다!

주방, 저녁 1부(X, Y) 오늘도 세상을 배우고 집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저녁 먹거리 생각이 가득이다. 하지만 지친 날이 많기에 집에서 간단한 요리라도 할 수 있다면 행운의 날이기도 하다. 주방 가구는 냉장고, 양념 선반, 싱크대, 조리대, 화구 순으로 직접 디자인해 만들었다. 냉장고에서 생각한 재료를 꺼내 손질한 후, 양념이 있는 선반을 보면서 요리 방향을 결정한다. 올리브오일과 페페론치노, 발사믹이 눈에 띄면 이탈리아식, 굴소스나 두반장이 보이면 중식, 간장이나 고춧가루가 보이면 한식, 뭐 이런 방식이다. 원 디시 스타일의 간단한 조리가 끝나면 다시 오디오를 켜고 떠오르는 음악을 튼 후 거실에서 저녁을 먹는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날이 흔치 않기 때문에 오늘도 집에서 ‘퍼펙트 데이’를 꿈꾼다.

김대균

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집생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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