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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천재들이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통쾌함을 느낀다. 영화 〈히든 피겨스〉(2016)처럼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동안 지워진 이름은 도대체 몇이나 될까?” 〈윌리를 찾아서〉에서 윌리를 찾듯 역사 속 ‘히든 피겨스’를 복원하는 작업은 긴 여정이다.
이 작업의 단초를 찾기 위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2년으로 시간 여행을 가보자. 바로 그해에 천문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여러 명의 여성 과학자 이름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캐서린 존슨은 미국 NASA에서 궤도 역학 계산을 담당하던 천재 수학자였다. 그녀는 수작업으로도 복잡한 궤도 수식을 당시 막 도입된 IBM 컴퓨터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해내 전폭적으로 신뢰받는 존재였다. 미국 최초로 지구 궤도를 비행하게 될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발사 직전 컴퓨터를 믿지 못하겠다며 “캐서린이 직접 확인한다면 탑승하겠다”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된 표현은 상당히 불쾌하다. “그 여자애에게 확인하라고 해(Get the girl to check the numbers).” 1960년대 미국 사회가 여성(특히 흑인 여성)을 흔히 ‘Girl’로 불렀다고 해도 NASA의 공식 직함과 업무를 맡은 전문가를 이렇게 취급했다는 건 명백히 젠더 위계와 대상화의 오류다. 같은 해, 영국인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DNA 구조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결정적 열쇠인 ‘사진 51’을 찍은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자료는 남성 동료였던 모리스 윌킨스에 의해 무단으로 공유됐고, 그 사진을 전달받은 미국인 왓슨과 영국인 크릭은 이를 바탕으로 DNA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받는 데 성공했다. 수상 당시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난소암이 발병해 37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였고, 그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목소리가 있다. 이름이 붙여지고 계속 호출되는 목소리 그리고 지워진 목소리다. 그 이름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각주로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한 시대 남성들의 ‘조력자’나 ‘뮤즈’로 남아버렸다. 이제 긴 역사를 통해 여러 문헌을 복구한 결과, 우리는 그들의 잊힌 목소리와 노고를 찾아낸다. 그리고 천재는 단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이번에는 수학과 건축 분야로 가보자.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유럽이 배경이다. 1918년에 등장한 ‘에미 뇌터의 정리’는 현대 물리학의 대칭성과 보존 법칙의 기초이지만, 물리학자들의 이름, 특히 아인슈타인 뒤에 묻혔다. 대칭이 자연의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주제임을 부각시킨 이 현대적이고 혁명적인 사고방식에 아인슈타인이 “통찰력 있는 수학적 사고”라며 극찬했음에도 에미 뇌터는 당시 괴팅겐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가 불안했을 정도다. 당대 수학을 주도했던 다비트 힐베르트가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홀대했던 남성 과학자들을 참지 못해 “나는 후보자의 성별이 강사 자격 승인을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남탕이 아닙니다”라고 발언한 건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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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디자인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 건축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체어’는 실은 릴리 라이히와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나 오늘날 반 데어 로에의 이름으로만 기억된다. 당시 독일의 선구적 디자인 스쿨 ‘바우하우스’ 교장을 맡은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라이히는 전시 기획과 가구 디자인을 함께 이끌었으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끝내 ‘조력자’라는 프레임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잃어버린 릴리 라이히의 공간〉(2022)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남아 있다. 영화 〈더 프라이스 오브 디자이어〉(2015)는 바로 이 지워진 역사, 그 중심에 있는 아일린 그레이의 존재와 억압 그리고 복권의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그녀가 설계한 빌라 E-1027을 중심으로, 그녀의 작품이 어떻게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 의해 은폐되거나 훼손됐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코르뷔지에가 그레이가 설계한 이 빌라에 자신의 벽화를 무단으로 그려 넣는 폭력을 자행한 것임에도 이 건물은 코르뷔지에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후대의 비평과 페미니즘 미술사 연구를 통해 이제야 그레이는 모던 디자인의 핵심 창조자로 복원됐다. 드래건 체어(Dragons Chair)와 E-1027 빌라 모두 아일린 그레이의 디자인적 독창성과 건축적 선구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임에도 오랫동안 남성 작가나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잘못 귀속되거나 평가절하돼 온 것이다.
조금만 더 역순으로 가보자.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1818)을 스무 살의 나이에 집필하며 근대 공포문학, 과학소설, 존재론적 소설의 시초를 열었다. 그러나 초판은 익명으로 출판됐고, 많은 독자는 이 혁신적 작품이 그녀의 남편, 시인 퍼시 셸리의 것이라 오인했다. 1840년 로베르트와 결혼한 클라라 슈만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지만,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로만 기억됐다. 그녀의 곡들은 한동안 ‘남편의 작품’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알마 마흘러는 작곡가였지만, 1902년 남편 구스타프 마흘러는 결혼 조건으로 그녀에게 작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그 뒤로 예술가들의 뮤즈로만 회자됐다. 이 여성들은 스스로 예술을 만들었지만, 역사는 그들을 남성 예술가의 영감으로 남기려 했다.
한국에서 동대문 DDP를 만든 위대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이들 모두처럼 창조의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그녀의 곡선은 ‘자궁’과 ‘성기’, ‘여성의 신체’로 환원돼 조롱받았다. 하디드가 말했듯, 만약 그 곡선이 남성의 것이었다면 ‘유기적 양식’이라 불렸을 것이다.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성을 가늠하는 척도 자체가 얼마나 젠더화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지워진 이들의 이름을 ‘각주’ 아닌 ‘본문’에 적고 더 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원진
〈니체〉를 번역하고,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를 썼다. 기자로 일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이 세상을 해독하는 가장 좋은 코드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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