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3스타 ‘밍글스’의 공간은 누가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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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APLUS

온전한 마음이 담긴 선물 같은 공간, 에리어플러스 유일선 · 김융희.


한남동 모던 한식 파인 다이닝 공간 ‘소설 한남’.

한남동 모던 한식 파인 다이닝 공간 ‘소설 한남’.

인테리어부터 가구, 소품 디자인, 쇼룸 운영을 통한 공예품 큐레이션과 판매, 수입 제품 유통 등 사업 영역이 다양하다. 스튜디오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면

유일선(이하 ‘선’) 2015년 스튜디오를 설립해 올해로 10년이 됐다. ‘에리어’는 공간을, ‘플러스’는 무엇이든 더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부터 인테리어 설계만 목표로 한 건 아니고, 공간을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새롭게 제안하는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파인 다이닝 프로젝트로 많이 알려졌으나 사실 우리의 뿌리는 ‘좋은 선물 가게’다. 공간에 들어갈 다양한 기물을 작가들과 협업해 자체 제작하고, 공예품을 큐레이팅하는 일을 병행해 왔다. 공간뿐 아니라 가구, 조명, 작은 오브제만으로 삶은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삶’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스튜디오 설립 전 각자의 배경에 대해 묻고 싶다. 유일선 대표는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LG화학 건축자재사업부에서 근무했는데, 어쩌다 독립을 마음먹었는지

사실 어릴 때부터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디자인이었다. 공간 디자인이 아니라도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여건상 쉽지 않더라. 일단 경영을 배우고 나서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따라 일종의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친 다음(웃음), 김융희 실장과 에리어플러스를 차렸다.

융희 실장은 프랑스에서 실내 건축을 공부하고 ‘전 어소시에이트’에서 실무를 익혔다. 어린 시절 미술에 대한 관심이 공간으로 이어진 것으로 안다. 공간 디자인의 어떤 점에 끌렸나

김융희(이하 ‘희’) 사람들의 감정을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교회나 명상공간에서 느끼는 감정과 바에서 느끼는 감정이 전혀 다르듯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의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공간을 맡긴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따라서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을 찾아주려고 한다. 고객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고객은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삶의 태도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며, 그 경험이 지속적인 신뢰로 이어지는 것 같다.

에리어플러스의 공간은 한국적이다. 그런데 전통적이지는 않고 한국적 아름다움이 은은히 묻어난다

지나치게 튀거나 과시적이지 않아 그런 것 같다. 공간에 들어갔을 때 각 요소들이 과하게 드러나거나 강조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대신 조화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고급스러움을 담으려고 한다. 소박하면서도 부드럽고, 그 안에서 우아함이 느껴지도록. 그 결과 자연스럽게 한국적이라고 느껴지는 것 같다.

공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공예가처럼 세세히 공간 구석구석을 매만지고, 실제로 공예 작가들과 협업해 공간을 이루는 크고 작은 요소를 만들고 있다. 공예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나

공간은 다양한 과정이 결합돼 완성되기 때문에 초기 계획부터 최종 마감까지 모든 단계에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예를 적절히 접목하면 완성도가 확실히 높아진다. 옻칠 공예를 벽이나 문 마감에 적용하거나 도예 조명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예를 활용해 왔고, 이를 통해 우리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강화할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 해외 유학을 했는데,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너희 나라 건 하나도 없네”라더라. 큰 충격이었다. 돌아보니 옷이나 음식, 생활용품 대부분이 수입 브랜드였다. 그러다 방학 때 한국에 다녀와 친한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작은 도자기를 선물했는데, 예상보다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예가 주는 감동을 체감했다. 기성품은 값이 비싸도 다 비슷하지만, 공예품은 저마다 다르고 그 안에 담긴 정성이 다르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예에 대한 관심이 작가들과 협업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의 출발은 ‘좋은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공간 그 자체보다 클라이언트에 대한 관심이 먼저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가 정말 좋아할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시중에 마땅한 게 없을 때 ‘직접 만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시도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2019년 작업한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올해 〈미슐랭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에 선정됐다.

2019년 작업한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올해 〈미슐랭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에 선정됐다.

공예 작가와 협업해 공간을 완성하는 방식은 지금이야 꽤 보편화됐지만 당시에는 흔치 않은 시도였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공예 작가와의 협업이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한 것 같다. 처음에는 우리 오리지널리티가 쉽게 채용되는 것 같아 달갑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적 아름다움의 저변이 넓어지고, 공예 작가들의 판로가 더 열리는 걸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근래에 ‘공예’나 ‘컬래버레이션’ 같은 단어가 가볍게 소비되는 건 조금 아쉽지만, 결국 이런 흐름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좋은 발판이 되고 있다고 본다.

에리어플러스가 설계한 현대성과 한국적 미감이 공존하는 공간들. 분당 소재 공방 ‘문도방 갤러리’

에리어플러스가 설계한 현대성과 한국적 미감이 공존하는 공간들. 분당 소재 공방 ‘문도방 갤러리’

문도방 갤러리 내부,

문도방 갤러리 내부,

작가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나?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렇게 만들어주세요’라는 일방적 요구보다 공간의 큰 컨셉트를 공유하고, 그 범위에서 어떤 형태를 상상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그런 도전적인 경험을 통해 작가와 함께 한계를 넘어보자는 독려가 재미있고, 결과적으로 작가들도 큰 만족감을 느낀다. 긍정적 경험이 쌓이면 협업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블루 보틀 한남

블루 보틀 한남

공간을 커스터마이징하다 보면 예산이나 일정 같은 현실적 어려움과도 마주할 것 같다.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

어떤 클라이언트든 현장이든 예산은 늘 제한적이기에 결국 중요한 건 협의와 선택이다. 주거공간이라면 라이프스타일이 하나의 척도가 된다. 클라이언트 성향에 따라 개인공간에 집중하거나,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 더 투입하면서 말이다. 원하는 완성도를 위해 때로는 역마진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정성을 오히려 고객들이 감사하게 받아들여 이후에도 꾸준히 의뢰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

한강의 윤슬을 천장에 형상화한 블루 보틀 한남.

한강의 윤슬을 천장에 형상화한 블루 보틀 한남.

상암동 JTBC VIP 공간

상암동 JTBC VIP 공간

최근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2019년 공간 디자인을 맡은 ‘밍글스’가 올해 〈미슐랭 가이드〉 3스타에 선정됐다. 오래전에 작업한 공간이 다시 조명받으니 감회가 남다르겠다

발표된 지 1시간도 안 돼 강민구 셰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민구 셰프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홍콩에 ‘한식구’를 오픈할 때도 함께했는데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 못해 감동적이었다. 이후 발표된 〈미슐랭 가이드〉 소개를 보면 이례적으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와 이 또한 뿌듯하다. 진심인 클라이언트와 함께 성장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우리는 특별히 한 게 없다. 그저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특별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했을 뿐이다. 종일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원하는 형태를 위해 버려야 했던 것도 많았지만, 실패하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주의였다. 그런 태도가 아니라면 새로운 창조는 어렵다. 그만큼 간절하게 임했기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온전한’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무엇이 됐든 대충 만들고 싶지는 않다. 여태껏 그래왔듯 늘 온전하게 만들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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