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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풍경은 아주 단편적이다. 1년 또는 2년 주기로 이사를 많이 다닌 탓일까? 초등학교 6학년 이후 남은 10대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있는 충청남도 천안은 그래서 내게 진짜 고향처럼 느껴진다. 호두과자와 유관순 열사의 고장! 천안을 향한 이런 ‘느낌적 그리움’을 더해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이태리안경원’이다.
열 살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한 나와 내 뒤를 곧바로 따른 여동생, 양쪽 눈 시력 차이가 심한 아빠, 유일하게 뛰어난 시력을 자랑했으나 일찍 찾아온 노안은 피하지 못한 엄마까지. 네 식구 모두 안경을 썼기에 이태리안경원은 우리 가족과 끈끈한 사이였다. 안경사 선생님의 따님 역시 2대 안경사가 돼 부녀가 함께 가게를 지키는 것도 보기 좋았다. 대입과 함께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후 ‘041’ 국번으로 시작하는 충청남도의 모든 번호와 멀어진 나에게 이태리안경원이 명절 휴무 혹은 임시 휴무를 알리거나, 한 해 마무리를 잘하라고 안부를 전하거나, 천안사랑카드를 사용하라고 권하거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보내는 문자들은 귀찮으면서도 묘하게 고향과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처럼 느껴졌다. 나름의 의리도 지켰다. 서울의 저렴한 각양각색의 안경테에 굴복하더라도 시력 측정과 렌즈는 꼭 이태리안경원에서 했고, 안경을 덜 쓰고 하드 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천안에 내려올 때마다 역 근처의 이태리안경원으로 달려가 렌즈를 한 아름씩 샀다(마중 나온 아빠가 결제해 주리라는 모종의 기대가 있기도 했다).
그랬던 이태리안경원과의 이별은 뜻밖의 사건을 계기로 찾아왔다. 전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으로 유의미한 금액의 목돈, 즉 퇴직금을 손에 쥔 나는 ‘명품’ 안경테를 맞추기로 결심했다. 당연히 이태리안경원에서! 어릴 때부터 골랐던 5만 원, 8만 원이 표기된 쇼케이스가 아닌, ‘명품 안경’으로 분류된 안경테 쇼케이스를 난생처음 으쓱한 기분으로 살폈다. 샤넬, 셀린느, 크롬하츠 등의 고가 안경테는 선택지에도 없던 당시 내가 고른 것은 우드 톤의 겐조 빅 프레임 안경. 30만 원 정도였던 가격을 안경사 선생님이 조금 깎아주셨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는 아주 마음에 들었던 그 안경을 구입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대체 어디에서 흘린 건지, 차에서 내리다가 떨어뜨렸는지, 미련을 못 버리고 몇 번이고 지나온 길을 되짚어봤지만 안경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순식간에 잃어버려 그 안경을 쓰고 찍은 사진도 한 장 없었다. 나는 의리도 조금 있지만 성격도 급하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진 나머지 곧바로 라식 수술을 예약했다. 타고난 각막이 두꺼워 앞으로 두세 번은 더 수술이 가능할 것 같다는 병원 쪽 칭찬과 함께 양쪽 시력 1.5로 거듭난 이후 더 이상 이태리안경원을 찾을 일이 없었다. 그래도 문자는 계속 왔다. 나의 마지막 검진일이 2015년이라며 내 눈 상태를 걱정하는 문자를 받을 때면 괜히 찔렸지만 문자가 온다는 건 가게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의미였기에 내심 안심하기도 했다. 집에 내려갈 때면 안부도 챙겼다. “아빠는 이태리안경원 언제 마지막으로 갔어? 선생님 아직 계셔?” “엄마 다초점 렌즈 이태리에서 한 거야?”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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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지난해에 긴 문자를 받았다. 오랜 경험과 많은 자료를 참고해 직접 사이트를 제작했는데 시력 관리법이나 좋은 자료가 많으니 꼭 클릭해서 시력 보호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구글 검색 창에 ‘이태리안경원’을 검색해 본 것은 안경원과 나의 20년 훌쩍 넘는 역사상 처음이었는데 뜻밖에도 검색 최상단에 ‘이태리안경콘택트’의 이름이 빛났다. 좋은 자료가 많다는 홈페이지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고, 마침 라식한 병원에서 최신 기기로 안압과 시력, 각막, 홍채 모두 이상 없다는 2만7천원짜리 검사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기도 했다. 금방 창을 닫았다.
왜 다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안경 조정, 코받침 교체, 세척 등 언제든 방문하세요. 환영합니다’라는 최근 문자가 다정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다시 들어가 홈페이지를 요리조리 살폈다. ‘삶과 건강’ 항목을 누르니 좋은 피를 만들어야 오래 산다는 올바른 식습관과 운동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선생님,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저속노화 선생님이야 뭐야.’ 낄낄대다가 ‘저희 이태리안경원은’이라고 쓰여진 항목을 클릭한 것은 홈페이지 구경이 시들할 즈음이었다. 하단에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일이든지 즐거움이 없으면 오래 지속할 수 없지요. 이태리안경원을 창업한 지 19년입니다. 밝은 세상을 보게 한다는 즐거움, 좋은 안경을 만들어 눈을 보호해 준다는 즐거움, 즐겁고 신명이 나야 좋은 안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아, 이분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그것도 이렇게 오래. 불로소득이 최고라거나, 적게 일하고 많이 벌라는 말이 덕담이 돼 일 자체의 보람을 점점 더 말하지 않게 된 세상에서 내게도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오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문득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역 근처 안경원에 들러 더러워진 안경을 내밀면 안경 세척기에서 안경을 꺼낸 뒤에도 정성스럽게 수건으로 렌즈를 닦아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나면 약간 쑥스러울 만큼 반짝반짝 새것이 됐던 내 안경. 이태리안경원에 갈 것이다. 여전히 내 양쪽 시력은 1.5지만 요즘 눈이 좀 건조하기도 하고, 모니터 화면으로부터 날 지켜줄 블루 라이트 차단 안경도 있으면 좋을 테니까. 그래, 천안에는 이태리안경원이 있다. 안경을 오랫동안 만들고,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아무튼, 순정만화〉를 썼다. 수도권 기준이 아닌 다양한 삶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목표는 좋은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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