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하나에도 진심을 다하는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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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고기동 도예가의 집 ‘란트샤프트(Landschaft)’.

용인 고기동 도예가의 집 ‘란트샤프트(Landschaft)’.

2008년 사무소를 열어 빛과 여백이 조화롭게 담긴 공간을 선보여 왔다. 아키텍츠601의 시작은

학부는 실내 디자인, 건축 및 실내 건축을 석사로 전공했다. 어떻게 보면 외연이 확장된 케이스다. 공간 디자인은 구획된 틀에 개념을 입혀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그러다 약 10년 전 우연히 건축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았는데, 내가 진정 바라던 일이라는 걸 느꼈다. 빛이라는 무형의 디자인 요소를 포함해 공간을 보다 깊게 다룰 수 있어 희열을 느꼈다.

용인 고기동 도예가의 집 ‘란트샤프트(Landschaft)’.

용인 고기동 도예가의 집 ‘란트샤프트(Landschaft)’.

‘601’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왔나

대학시절 밤새 설계하고 모형을 만드는 작업실이 601호였다. 개인적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시작점이나 다름없어 스튜디오 이름으로 지었다.

용인 고기동 도예가의 집 ‘란트샤프트(Landschaft)’.

용인 고기동 도예가의 집 ‘란트샤프트(Landschaft)’.

인테리어에서 건축으로, 무엇이 외연의 확장을 이끌었나

스튜디오 설립 전, 설계와 시공을 모두 다루는 실내 디자인 회사를 4년 정도 다니다 프리랜서로 일했다. 호텔부터 주상복합 레너베이션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운 좋게도 건축가 이타미 준의 ‘핀크스 타운 하우스’와 ‘방주교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땅과 환경이라는 ‘본질’과 대화하는 작업은 공간에 대한 내 열망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내 집과 지인의 주택을 설계하면서 건축 작업에 더 큰 뜻을 품었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카페 겸 스테이 ‘경주의 시간’.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카페 겸 스테이 ‘경주의 시간’.

설계부터 시공, 건축 그리고 인테리어, 가구까지 다루는 범위가 넓다

지금은 경계라는 개념 자체가 맞지 않는 시대다. 오히려 바운더리를 없애려는 편이다. 기획자 포지션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한다. 프로젝트 하나를 하고 나면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어 성장의 폭이 크다. 대신 그만큼 힘도 든다(웃음).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카페 겸 스테이 ‘경주의 시간’.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카페 겸 스테이 ‘경주의 시간’.

스튜디오 운영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된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용인 고기동 ‘도예가의 집’이 기억에 남는다. 도예가 부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당시 나는 유학 준비 중이어서 설계만 맡기로 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해외로 나갈 수 없게 됐다. 결국 그 프로젝트의 설계와 시공을 총괄했고, 과정 중 충분히 많은 걸 배워서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되겠다 싶더라. 클라이언트의 성향에 따라 건축 방향과 디자인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걸 체감했다. 설계자에게 충분한 신뢰를 보내준 덕분이고, 클라이언트의 도예 작업에서 좋은 영감을 받았다. 무엇보다 ‘건축은 같이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카페 겸 스테이 ‘경주의 시간’.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카페 겸 스테이 ‘경주의 시간’.

여러 프로젝트가 공통적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복잡하고 정교한 디테일이나 강렬한 시각 표현을 연출하는 스튜디오는 아니다. ‘어떻게 하면 정갈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우아하다는 느낌은 아마 자연스러운 안정감에서 오는 게 아닐는지. 빛을 신중히 다룬다. 앞서 언급한 땅과 건축물의 관계, 재료의 물성이 주는 경험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빛’과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라이언트에게서 많이 듣는 피드백 중 하나가 ‘살아보니 훨씬 좋더라’이다. 공간에서 빛과 그림자, 바람, 나무의 흔들림 같은 요소를 통해 얻는 감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외의 자연을 고스란히 끌어들인 청평 주택 ‘란트샤프트Ⅱ(LandschaftⅡ)’.

교외의 자연을 고스란히 끌어들인 청평 주택 ‘란트샤프트Ⅱ(LandschaftⅡ)’.

‘공간을 대하는 진정성’을 강조한 적 있다. 아키텍츠601이 추구하는 진정성의 핵심은

이 분야에서 진정성 없이 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강조하고 싶은 건 감각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고유한 가치를 지닌 채 존재하는 공간, 그런곳이야 말로 진짜 잘 만든 건축이 아닐까 한다. 근본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공간, 한국적 정서와 동양의 서정성을 담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

우아한 미감을 지닌 남양주 수석동 주택의 계단.

우아한 미감을 지닌 남양주 수석동 주택의 계단.

근래 공간 디자인 분야에서 디테일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럴수록 ‘진정성 있는 디테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디테일을 다룰 때 특히 중시하는 점은

디테일을 위한 디테일, 즉 ‘작위적인 디테일’은 지양한다. 디테일은 기능과 구조, 조형적 측면에서 필요한 이유가 명확할 때,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들 때 의미가 있다. 내가 추구하는 디테일은 특정 요소라기보다 공간에서 진실된 것을 경험하도록 돕는 태도에 가깝다. 준공을 앞둔 프로젝트 중 카페와 워킹 스페이스가 함께 있는 상업공간이 있다. 공간의 주제가 ‘항해’여서 거친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정신을 담기 위해 외부에 2톤 가까운 바위를 놓았다. 강원도 땅을 다니며 직접 고른 것으로, 큰 돌을 트럭으로 가져와 원하는 위치까지 옮기는 과정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요즘은 가공 기술로 만든 가짜 자연도 많지만, 나는 이런 경우 ‘진짜’를 추구하는 편이다. 나무와 돌 같은 근원적 재료를 선호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란트샤프트Ⅱ’의 외관.

‘란트샤프트Ⅱ’의 외관.

‘영성의 빛’은 빛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담긴 작업이다. 집 안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으로 스며드는 빛이 인상적인데, 다락의 색유리창도 무척 눈에 띄었다

클라이언트 가족이 크리스천이어서 다락을 작은 예배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빛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그 빛을 어떤 경험으로 연결할지 고민했다. 아이들 방에 천창을 두고 집 안 깊숙한 곳까지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입구 쪽에 포켓 정원을 계획했다. 고저차가 큰 대지에서는 자연광을 내부 깊숙이 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일종의 ‘빛 그릇’을 삽입한 셈이다. 다락의 색유리창은 가장 순수한 색이 빛과 만날 때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다. 두 아이가 다락에서 순수한 색채를 몸으로 경험하길 바랐다.

곳곳에 개구부를 만들어 빛을 매력적인 방식으로 끌어들인 신봉동 주택 ‘영성의 빛’.

곳곳에 개구부를 만들어 빛을 매력적인 방식으로 끌어들인 신봉동 주택 ‘영성의 빛’.

더 나은 주거 경험을 위해 추가적으로 신경 쓰는 부분은

흔히 거실이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야말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이닝 공간에 신경을 많이 쓴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이 우선이니 요리를 즐기지 않는다면 볼륨은 줄이고 단순히 설계한다. 또 하나 중시하는 것은 정원이나 테라스, 마당 등 외부공간이다. 내부와 외부가 연속되어 흐르는 경험은 특히 주택에서 더욱 값진 시간의 흔적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외부공간은 ‘집’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경험을 선사한다고 생각한다.

곳곳에 개구부를 만들어 빛을 매력적인 방식으로 끌어들인 신봉동 주택 ‘영성의 빛’.

곳곳에 개구부를 만들어 빛을 매력적인 방식으로 끌어들인 신봉동 주택 ‘영성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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