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 수집가의 보물 보따리

35
꼬집기 꽃무늬 보자기. 직물을 꼬집듯 잡아서 바느질하는 꼬집기 기법으로 꽃무늬를 만들었다. 바느질 선이 돋보이도록 단색 직물을 사용했다.

꼬집기 꽃무늬 보자기. 직물을 꼬집듯 잡아서 바느질하는 꼬집기 기법으로 꽃무늬를 만들었다. 바느질 선이 돋보이도록 단색 직물을 사용했다.

술장식 조각 격자무늬 보자기 안감. 정사각형 직물 조각을 이은 겉감에 안감으로 파란색 비단을 덧대고, 가장자리에는 잣을 본뜬 작은 장식을 더했다. 귀퉁이에는 부채꼴 모양의 은색 종이와 색실 술을 달아 장식한 파란색 끈이 매달려 있다. 정성을 담아 만든 예물 보자기로 추정된다.

술장식 조각 격자무늬 보자기 안감. 정사각형 직물 조각을 이은 겉감에 안감으로 파란색 비단을 덧대고, 가장자리에는 잣을 본뜬 작은 장식을 더했다. 귀퉁이에는 부채꼴 모양의 은색 종이와 색실 술을 달아 장식한 파란색 끈이 매달려 있다. 정성을 담아 만든 예물 보자기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쓰인 ‘리빙 용품’을 꼽으라면 단연 ‘보자기’ 아닐까. 지금이야 빛바랜 전통의 산물이지만, 과거 보자기 없는 일상은 상상이 안 될 정도였다. 흔히 물건을 싸거나 운반하는 용도로 떠올리지만, 실제 활용 범위는 훨씬 넓었다. 밥상을 덮는 상보, 이불을 감싸는 이불보, 노리개보, 빨랫보, 옷감보, 머릿보, 혼례를 위한 기러기보, 폐백보, 함보···. “가방에 붙어 다니는 동사는 넣다와 메다뿐이지만··· 보자기에는 이렇게 싸다, 메다, 가리다, 덮다, 깔다, 들다, 이다, 차다와 같이 가변적으로 복합적인 무수한 동사들이 따라다닌다”라는 이어령의 표현처럼,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 보자기의 이름은 다양해졌다. 용도뿐일까. 사용 계층에 따라 궁보·관보·민보로 불리며 계급 구분 없이 널리 쓰였고, 제작방식에 따라 옷을 지어 입고 난 후 남은 자투리로 만든 조각보, 실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무늬를 수놓은 자수보, 음식 보관을 위해 안쪽에 기름종이를 덧댄 식지보 등으로도 불렸다. 이 외에도 꾸밈새에 따라 홑보·겹보·솜보·누비보, 문양 제작방식에 따라 당채로 그린 당채보·금분을 찍은 금박보·물감을 묻혀 찍어낸 판보, 사용한 직물을 기준으로 명주보·사보·모시보·무명보·베보로 나뉘었다. 하나의 생활용품이 이토록 다채로운 면모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한 장의 보자기가 한 폭의 그림처럼 낯설고 느릿하게 다가온다.

자수 식물 무늬 보자기. 나무줄기를 사각형으로 둘러싸면서 배치하고, 열매와 새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완성한 자수 패턴이 자연의 역동성을 전달한다. 날염 보물 무늬 보자기. 보검과 파초선, 호리병, 화병, 피리, 연꽃 등 도교의 여덟 신선이 지녔다는 보물을 다양한 색으로 겉면에 찍어냈다.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기법. 삼각형, 직사각형, 사다리꼴 등 다양한 형태의 조각으로 이뤄진 조각 보자기. 중앙의 작은 빨간색 조각이 은근히 시선을 끄는 포인트가 된다. 서로 다른 크기의 사각형 조각을 한 줄씩 나열해 오묘한 앙상블을 이뤄낸 조각 보자기. 귀퉁이 끈에 남색 줄무늬를 넣은 다음 올을 살짝 풀어냈다.

“이름 모를 여인이 가족의 옷을 짓고 남은 자투리천으로 소박하게 지은 조각보의 갖가지 표정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조각 하나하나가 가족사진 같은 느낌이 든다. 양색을 많이 써서 불행을 예방하고 행복을 가져오도록 기원했으며, 생일날 국수를 먹듯 조각을 이어 붙여 무병장수를 꿈꾸고, 어망처럼 불행을 걷어내길 바랐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어떤 수집가에게 하나의 보자기는 하나의 사연, 하나의 삶이 돼버렸다. 한국자수박물관 관장 허동화는 흔한 규방 공예로 여겨지던 전통 자수품과 보자기 수집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천 쪼가리 하나가 지닌 고유의 기운과 그 속에 담긴 마음, 즉 가족을 생각하고 복을 기원하는 이의 염원을 기꺼이 들여다볼 줄 알았다. 훗날 자신의 수집 역사에 대해 남긴 담백한 소회처럼 “수집에는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흔히 ‘저걸 사면 돈이 남겠다’고 생각하는데, 조자룡 선생은 ‘그 물건이 자료집의 한 페이지가 되는지’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했죠.” 민화 수집가 조자룡의 조언과 어린 시절 유난했던 수집벽이 더해져 허동화는 1960년대 초부터 ‘수가 놓인 것이면 뭐든’ 자수 문화로 보고 자수품을 사들였다. 자수와 보자기가 민속문화재 취급도 받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허동화에게 자수면 몰라도 보자기는 “물건을 담는 하찮은 일상 용품”에 지나지 않았는데, 우연히 자수를 팔려고 온 상인들이 싸온 보자기의 예사롭지 않은 자태에 매료됐다. 결국 그 보자기를 얻기 위해 자수를 사고, 3000만 원짜리 도자기를 30만 원짜리 보자기와 바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컬렉션은 수천 점에 달하게 됐다. “자수나 보자기를 공부할 때, 음··· 뚜렷한 선생이 없습니다.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없으니까 공분하고 늘 싸움을 했죠. 그 싸움이라는 게 작품과의 대화입니다. 너는 언제 태어났니? 어느 용도로 쓰였니?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것과 왜 다르니?”

자수 기러기 매듭 보자기. 길고 얇은 직물 조각을 연결해 만든 기러기 매듭으로 좌측 하단을 장식하고, 끈의 끝에 다른 색 직물과 술 장식으로 포인트를 줬다. 전통혼례에서 나무 기러기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수 기러기 매듭 보자기. 길고 얇은 직물 조각을 연결해 만든 기러기 매듭으로 좌측 하단을 장식하고, 끈의 끝에 다른 색 직물과 술 장식으로 포인트를 줬다. 전통혼례에서 나무 기러기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수로 장식한 겹보자기. 검은 면직물 한쪽 귀퉁이에 여러 가지 색실로 수를 놓았는데 ‘목숨 수(壽)’ 자와 유사해 보인다. 귀퉁이 자수 무늬 외곽을 금색 실로 강조하고, 검은 면 가장자리에 황토색 직물로 넓게 테두리를 둘러 강조한 아웃라인이 단연 돋보인다.

자수로 장식한 겹보자기. 검은 면직물 한쪽 귀퉁이에 여러 가지 색실로 수를 놓았는데 ‘목숨 수(壽)’ 자와 유사해 보인다. 귀퉁이 자수 무늬 외곽을 금색 실로 강조하고, 검은 면 가장자리에 황토색 직물로 넓게 테두리를 둘러 강조한 아웃라인이 단연 돋보인다.

허동화는 유일무이한 보자기 컬렉터로서 수집에 사력을 다했을 뿐 아니라 자수품과 보자기 관련 연구와 집필에도 힘썼다. 그 덕분에 옛 보자기의 특성과 미감이 한층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그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수집 동반자인 부인 박영숙 여사가 운영하는 치과병원 옆에 ‘한국자수박물관’이라는 작은 사립 아카이브를 설립하고, 세계 11개국을 돌며 한국 자수 공예와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전시를 100여 차례나 열었다. 2018년 작고 직전 허동화는 부인 박영숙 여사와 함께 평생 모은 유물을 서울시에 기증했다. 보자기 1000여 점을 비롯해 자수 공예·복식 등 각종 직물 공예품에 장신구와 함, 바늘 같은 침선구 등 약 5000점의 유물이 서울공예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색색의 끈이 날개처럼 달린 것,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미세한 장식과 바느질 디테일, 각기 다른 크기와 빛깔로 정방형 속 우주를 이루는 수많은 직물 조각들. 이렇게 다채롭고 자유분방한 디자인은 모두 오래전 민가 여인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허동화는 생전에 보자기와의 만남을 운명의 상대를 조우한 것처럼 회상하곤 했다. “이렇게 예쁜데,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랄 정도인데 왜 사람들이 모를까. 나는 이렇게 얘기하지. 보자기가 나를 찾아왔다고. 보자기가 나한테 오고 싶었던 거라고.” 그 진부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면, 100가지 보자기에 담긴 100가지의 고유한 미감은 몇 안 되는 규방 공예 전승자들의 손길이나 오래된 문헌, 풍속도에서 어렴풋이 유추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한국 전통 자수에 대한 이어령의 말처럼 “처음부터 생활과 함께 숨 쉬어온 예술”“실용성이 사라지면 그 기능과 함께 예술성도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노력으로 우리 곁에 남은 보자기에서 당대 가장 생생한 리빙 데커레이션의 흔적을 엿본다. 자신의 서명조차 남기지 못한 무명 예술가들이 그들의 삶과 공간에 수놓은 염원과 바람을 말이다.

술장식 자수 꽃무늬 보자기에 달린 제비부리 모양의 끈. 꽃과 새, 나비를 수놓고 술 장식을 달아 어떻게 묶어도 아름다울 것 같다.

술장식 자수 꽃무늬 보자기에 달린 제비부리 모양의 끈. 꽃과 새, 나비를 수놓고 술 장식을 달아 어떻게 묶어도 아름다울 것 같다.

술장식 조각 격자무늬 보자기의 가장자리. 손톱보다 작은 자투리천을 일일이 접어 만든 잣 모양 장식은 행운과 복을 불러오는 것으로 간주해 신부의 혼수품과 어린아이 옷 장식에 많이 사용됐다.

술장식 조각 격자무늬 보자기의 가장자리. 손톱보다 작은 자투리천을 일일이 접어 만든 잣 모양 장식은 행운과 복을 불러오는 것으로 간주해 신부의 혼수품과 어린아이 옷 장식에 많이 사용됐다.

자수 식물 무늬 보자기. 나무와 꽃 등 식물을 이용해 ‘王’과 ‘山’ 등의 글자를 알록달록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자수 식물 무늬 보자기. 나무와 꽃 등 식물을 이용해 ‘王’과 ‘山’ 등의 글자를 알록달록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조각 전보무늬 상보자기. 직물 조각으로 둥근 원 속에 사각형이 들어간 형태의 전보무늬는 복을 의미하며, 원과 원이 겹치는 부분에 박쥐 매듭 장식으로 포인트를 더했다. 가운데 분홍색 매듭은 손잡이다.

조각 전보무늬 상보자기. 직물 조각으로 둥근 원 속에 사각형이 들어간 형태의 전보무늬는 복을 의미하며, 원과 원이 겹치는 부분에 박쥐 매듭 장식으로 포인트를 더했다. 가운데 분홍색 매듭은 손잡이다.

+1
0
+1
0
+1
0
+1
0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