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보기] 사랑의 배터리, 생존의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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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한 유명 여가수는 애정사가 잘 되려면 배터리가 필요하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방진복(防塵服)의 청정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첨단산업의 대명사 AI(인공지능) 분야도 탄소배출 관점에서 자칫 굴뚝산업이 될 수 있을 처지이다. 엄청난 전력 수요를 화석연료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렇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배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AI혁명이 진행되면서 관련된 데이터센터(컴퓨터 서버와 시스템, 네트워크, 저장장치 등이 설치된)에 대한 수요도 급속히 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이미 데이터센터가 많아졌다. 하지만, AI는 차원이 다른 연산 처리 능력을 구비한 데이터센터를 요구하고 있다. 근래 언론에 회자되는 미국의 엔비디아(NVIDIA)가 이런 추세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AI에 특화된 사양의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회사로, AI 확산과 함께 지난 5년간 주가가 약 2000%(최근 주당 가격이 약 890달러) 급등했다.

4월 11일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기존 데이터센터와 달리 AI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는 연산장치는 약 4배 이상의 전력을 사용한다. 발생하는 열이 많으니 식히는 데 소요되는 전력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구체적인 예로 구글 검색에 비해 챗GPT 검색은 10배 정도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2022년의 두 배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026년 예측되는 데이터센터의 사용량은 현재 일본의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것이다. 미국 전문기관들은 데이터 처리에 사용되는 전력량이 2030년에는 지금보다 3배 늘어 전체의 7.5%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의 전력 수요가 2030년에 약 20% 정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AI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당연히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데, 데이터센터가 전기 먹는 하마이고 보니 전력 조달이 큰 과제다. 규모뿐 아니라 탄소배출이 낮은 전력을 요구하고 있어 발전회사들에 어려운 숙제가 되고 있고, 여기에 더해 송전망의 개선·확대에도 엄청난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빅테크는 발전회사에 의존하기보다 자체적인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공격적인 기업이 2030년까지 100% 탄소배출이 0인 에너지 쓰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마이크로소프트(MS)이다. 이달 초 MS가 재생 에너지 개발에 100억 달러(약 13조9000억 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발표하고, 대체투자사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국내 언론에도 널리 보도되었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관련 자회사 AWS는 올 3월 인근에 원전이 위치한 데이터센터를 매입했다. 구글은 지열을 이용한 발전 분야에 스타트업 기업과 공동으로 투자하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청정 전력원(源)을 확장하지 않으면 최첨단 지식정보 서비스산업도 석탄·가스 등 화석연료를 태우는 발전에 의존하는 구조이니 탄소배출 측면에서 굴뚝산업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어진다. 점차 청정에너지로 옮겨가는 전환기가 어떤 모습일까를 알려면 현재 태양광, 풍력을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 유용하다. 청정에너지 비중이 낮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변화는 필요한 일이다. 변화의 선두에 있는 곳이 미국의 캘리포니아주(州)이다.

아래의 두 도표는 이달 7일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발췌한 것으로, 2021년과 2024년 4월 캘리포니아 전체 발전량 중 가스, 태양광, 풍력 등 에너지원별 발전량 분포를 보여준다. 세로와 가로축은 각각 발전량(단위, 메가와트)과 시간(새벽 12부터 밤 12시)을 표시한다. 도표는 각 시간대에 전기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보여준다. 위로부터 타 지역에서 수입(IMPORTS), 가스(GAS), 태양광(SOLAR POWER), 풍력(WIND), 수력(HYDRO), 그리고 핵발전(NUCLEAR)이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태양광 발전으로, 해가 있는 시간대(오전 7시~오후 7시)의 비중이 제일 큰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 시간대에는 가스가 제일 중요한 발전 에너지원이다.

          2021년 4월 캘리포니아 에너지원별 발전량 분포

         2024년 4월 캘리포니아 에너지원별 발전량 분포

2024년 5월 7일 뉴욕타임스 기사 ‘Giant Batteries Are Transforming the Way the U.S. Uses Electricity’에서 캡처.   
2024년 5월 7일 뉴욕타임스 기사 ‘Giant Batteries Are Transforming the Way the U.S. Uses Electricity’에서 캡처.   

두 도표의 중요한 차이점은 태양광 발전이 끝나는 오후 7시 이후 배터리 전력의 비중이다. 2024년엔 해가 있을 때 발전한 전기를 대용량 배터리에 저장하였다가 일몰 후 약 3시간 정도 사용하며 화석연료 발전을 현격히 줄이고 있다. 중국산 배터리가 대부분이고, 화재의 위험과 같은 문제점도 있으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더 효과적으로 안전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가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규모, 경제·사회 분야의 선도적 위상을 감안하면 시사점이 적지 않다. 앞서 살핀 빅테크 기업들의 저탄소 에너지 사용 확대과정에서도 대용량 배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청정발전 비중이 제일 낮다.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다지만 다른 나라들과 차이가 상당히 크다. 국내 곳곳에서도 청정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발전용 대형 풍차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제주도에서는 풍력 발전이 꽤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잉여 생산량이 많을 때 전력망이 과부하가 걸리는 문제가 있어 풍차의 가동을 멈추는 조치가 빈번하다는 뉴스를 접한다. 잉여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나 타 지역으로 송전하는 설비의 미비로 발생하는 문제라고 한다.

지난 정부 때 태양광 발전 사업이 복마전이었다는 개탄을 주변에서 종종 들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으면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청정발전은 정치적 이슈가 아니다. 이미 온실가스로 인한 기상이변이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따라서 탄소배출 감소는 시급한 과제이다. 결국 배터리는 연애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온하게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장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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