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 찌르는 냄새가 시멘트 공장에서…’진짜 친환경’ 유럽 공장을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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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코 찌르는 냄새가 시멘트 공장에서…'진짜 친환경' 유럽 공장을 가보니
오스트리아 홀심시멘트 마너스도르프 공장 내에서 화물차가 합성수지 등 대체 연료를 연료 저장고에 싣고 있다. 이 공장의 순환자원 사용률은 약 90%로 국내 평균치 35%를 훌쩍 웃돈다. 이덕연 기자

23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동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니더외스터라이히주 홀심시멘트 마너스도르프 공장. 시멘트 원료 가열에 쓰이는 연료 저장고 안으로 들어서자 코를 콕 찌르는 냄새가 풍겨왔다. 폐비닐, 폐플라스틱 등 가연성 순환자원 연료에 묻은 각종 생활 물질이 발효하면서 나는 향이다. 홀심시멘트 마너스도르프 공장은 지난해 기준 전체 연료의 90%를 이런 순환자원 연료를 사용해 시멘트를 만든다. 연료 대부분이 순환자원이다보니 공장 시설은 마치 재활용품 처리시설을 연상시키듯 순환자원을 저장하고, 나르고, 가열하는 데 상당 부분이 할애돼 있다.

오스트리아 마너스도르프 공장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시설은 시멘트 원료로 쓰기 위해 건축 폐기물을 따로 분류해놓은 저장 창고다. 어림잡아 봐도 축구장 몇 개가 들어설 법할 정도의 규모를 가진 이 창고 또한 친환경 시멘트 생산을 위해 만든 시설이다. 이곳에서는 폐콘크리트, 폐벽돌, 철 슬래그와 같은 각종 부산물을 모아 저장한 뒤 잘게 부수어 시멘트 원료로 활용한다. 본래 시멘트 주 원료는 석회석을 높은 온도로 구워 만드는 ‘클링커’인데 이 과정에서 탄소가 다량 배출되다보니 대체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제조 공정에서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기 위해 유럽 시멘트 업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대부분 공장에서 순환자원 연료 사용률이 90%에 달하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그리스 또한 시멘트에 탄소 배출량이 적은 원료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탄소 저감에 앞장서는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대체 원료를 사용하는 데 규제가 엄격히 적용되면서 오스트리아, 그리스와 같은 선두 주자 따라잡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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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배출 주범인 ‘클링커’ 사용을 줄이기 위한 대체 원료는 그리스를 비롯해 오스트리아에서도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오스트리아 홀심시멘트 마너스도르프 공장 내 대체원료 저장고의 모습. 이덕연 기자

대체 연료·원료 모두 앞서나가는 유럽

일반적으로 시멘트 1t을 생산하면 약 700㎏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대부분 이산화탄소는 시멘트 주 원료가 되는 석회석을 잘게 부순 뒤 1450℃를 웃도는 고열을 주입해 클링커를 생산하는 데서 나온다. 유연탄 등 화석연료를 투입해 열을 1000℃ 이상으로 올리는 데서 일차적으로 탄소가 다량 배출되고, 고열을 받는 석회석 자체에서 또 다시 탄소가 발생하다보니 탈탄소 공정의 핵심은 탄소를 보다 적게 배출하는 대체 연료와 대체 원료를 사용하는 데 있다. 유럽 시멘트 업계는 둘 모두에서 세계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마너스도르프 공장을 찾기에 앞선 21일 오후 찾은 그리스 테살로니키 인근 타이탄사 에프카르피아 시멘트 공장에서도 높은 수준으로 진전된 탈탄소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프카르피아 공장에서도 시멘트 원료에 폐콘크리트, 석회석미분말 등 혼합재를 섞어 탄소 배출을 줄인다. 이런 대체 원료를 업계에서는 혼합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부 친환경 시멘트는 혼합재 비율이 50%에 육박하기도 한다. 클링커 비율이 낮아지면 시멘트가 제 성능을 못 낼 수 있지만 유럽 업계는 시멘트 입자를 더 작게 만드는 등 각종 신기술을 개발해 이를 해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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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테살로니키 인근 타이탄사 에프카르피아 시멘트 공장에 있는 ‘소성로(연료를 가열해 고열 가스로 만든 뒤 시멘트 원료에 주입하는 시설)’ 전경. 이 소성로 또한 순환자원 연료 사용에 최적화돼 있다. 이덕연 기자

홀심시멘트 마너스도르프 공장의 경우 대체 원료와 연료 모든 부문에서 앞서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공장은 지난해 기준 전체 연료의 90%를 이런 순환자원 연료를 사용해 시멘트를 만든다. 이는 한국 시멘트업계 평균치(35%)는 물론 유럽 평균치(53%)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마너스도르프 공장은 여기에 폐건축자재 등 대체 원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 시멘트 탈탄소를 이끄는 유럽 내에서도 가장 친환경적인 현장에 속한다. 홀심 시멘트사는 2040년께 마너스도르프 공장 내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 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넷 제로 달성을 위해 유럽 시멘트 업계는 탄소 저감을 위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홀심 시멘트사가 마너스도르프 공장 내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투자한 금액은 1억 3000만 유로(한화 약 1925억 원)다. 현지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베르톨트 크렌 홀심시멘트사 중부 유럽 권역 최고경영자(CEO)는 “(투자를 통해) 마너스도르프 공장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 대비 7만t 줄였고 오스트리아 내 홀심의 시멘트 공장 세 곳을 합하면 이산화탄소 감축량은 연간 21만t에 달한다”며 “이는 자동차 12만 대를 없앤 것과 같은 효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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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홀심시멘트 마너스도르프 공장 내 대체원료 저장고의 모습. 친환경 시멘트 생산의 근간이 되는 대체 원료는 외관상으로는 폐기물에 가깝지만, 이런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것이 탄소 저감에는 큰 도움이 된다. 이덕연 기자

‘게임 체인저’ EU CBAM, 국내서도 준비해야

유럽 시멘트사들이 ‘탈탄소 러시’에 나선 배경으로는 유럽연합(EU) 차원의 탄소 규제가 꼽힌다. EU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분야의 모든 제품은 탄소 배출량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보고서를 토대로 제품별 탄소 배출에 따른 유료 인증서 구매를 강제해 탄소 저감을 유도한다. 피터 호디노트 전 유럽시멘트협회장은 “현재 시멘트 1t 가격이 약 90유로인데 앞으로 탄소 배출에 따른 비용이 1t당 100유로 가량 발생할 수 있다”며 “넷 제로는 유럽 기업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EU CBAM은 유럽으로 시멘트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에게도 적용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의 탈탄소 행보는 더딘 편이다. 원인으로는 각종 규제가 꼽힌다. 다양한 혼합재를 활용해 클링커 비중을 최대한 줄이는 혼합 제품의 경우 국내에서는 KS기준에 따라 혼합재 비중을 10%까지만 쓸 수 있게 돼 있다. 비중이 50%에 달하기도 하는 유럽 친환경 시멘트에 비해 허들이 높은 셈이다. 김진만 시멘트그린뉴딜위원회 위원장(공주대 건축학부 교수)은 “국내 시멘트 업계의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혼합재 사용 기준 완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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