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 /한백영](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185/image-0effcde0-e879-4427-b521-196281431304.jpeg)
사랑해! – 모두 ‘사랑해’라는 같은 단어이다.
그런데 여러분의 감정은 어떠한가? 모두 같은 ‘사랑해’로 느껴지는가?
분명 아닐 것이다.
휘휘 날려쓴 ‘사랑해’는 자유분방한 사랑의 에너지가, 궁서체로 쓴 ‘사랑해’는 조금은 점잖은 감정이, 두껍고 각진 ‘사랑해’는 우직하고, 진솔한 감정 등 각각의 ‘사랑해’의 감정이 각각 다르게 전해질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같은 의미인데, 글자의 스타일에 따라 감정이 왜 다르게 전해질까? 이는 ‘분명’ 글자의 모양에 따라 시각적으로 전달해 주는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글씨의 모양새의 집합체를 서체나 폰트라고 부른다.
◆서체와 폰트는 같은 의미?
일상적으로 우리는 서체와 폰트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정확한 의미는 구분된다.
서체(Typeface): 글자의 전체적인 디자인 개념 (예: Times New Roman, Arial)
폰트(Font): 특정 서체의 세부 스타일 (예: Times New Roman Bold 12pt, Arial Italic)
쉽게 설명하자면 특정한 형태의 글자들을 모음은 서체를 말한다. 그리고 그 서체의 크기, 굵기 등을 포함하는 글꼴의 스타일을 폰트라고 한다.
![▲다양한 서체들. /한백영](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185/image-d50b8c05-d588-4b76-894d-910cd1641d13.jpeg)
개념은 위와 같지만, 디자인 현업에서도 구분짓지는 않고, “OO서체”, “OO 폰트” 이런식으로 혼용하여 사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제부터 서체로만 소통하겠다.
◆서체가 감성을 만든다
우리는 매체를 접할 때, 수 많은 이미지와 서체로 내용을 접한다.
이미지로 감정을, 서체로 정보를 전달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체를 통해서도 감정을 전달받는다.
서체의 스타일에 따라 “정직한, 가벼운, 행복한, 딱딱한, 귀여운” 등의 감정을 전달 받는다. 특히 자랑스런 우리 한글은 전세계적으로 독특한 조형미를 지닌 문자로서 감정의 전달이 매우 뛰어나다.
알파벳도 조형미가 뛰어난 문자이지만, 우리 한글은 알파벳이상으로 조형미가 뛰어나며, 그 유니크함은 감히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서체가 어떤 모습을 지니는지에 따라 전달되는 감정이 변한다. 부드러운 곡선이 강조된 ‘나눔손글씨’ 서체는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는 반면, ‘프리텐다드’ 같은 고딕체는 직관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초등생 꼬마 친구가 정성들여 꾹꾹 눌러쓴 듯한 ‘한나’ 서체는 어린이의 귀여움이 전달된다.
우리의 감정은 모양새를 일일이 해석하지 않고 무의식으로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 명조체가 주는 클래식한 무드, 손글씨체가 주는 친근함, 가독성 높은 고딕 폰트가 주는 신뢰감 등 폰트 각각 마다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나눔손글씨 한나는 열한살 서체. /프리텐다드](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185/image-6c7fa4bf-8bf7-4d40-a5ed-e1a6626759f3.jpeg)
◆서체의 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스마트폰의 뉴스, 영상의 자막, 무수한 광고, 지하철 노선도, 식당의 메뉴판까지 일상 생활에 수 많은 글자들을 마주친다. 그렇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글자들이 어떤 서체인지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매체의 특징과 목적을 고민하여 서체를 선택하고 사용한다. 맥락에 적합한 서체를 선정한 후 크기, 두께, 자간 등을 조정하여 정보 요소와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글의 정보 뿐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함께 전해받게 된다.
서체가 단순한 글씨체가 아니고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체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되고, 사용자 경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서체는 가독성만 중시되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런 서체의 힘을 알아채고 서체를 적극적인 브랜딩의 무기로 활용한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현대카드…서체로 브랜딩한 대한민국 최초의 기업
현대카드는 2003년 ‘유앤아이(Youandi) 라는 서체를 선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국내기업에서 최초로 서체를 제대로 만들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 사례이다.
그것도 아주 아주 잘 만들었다~
당시 카드회사에서 서체를 만들었다는 것에 나는 꽤 낯설고 의아했다. 카드회사가 왜 서체를 만들지?… 생각해보면 눈치를 못챈 그 때 필자는 어리고 어리석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의아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대카드는 서체와 디자인을 차별화하였고, 이내 카드업계에서 그 존재감을 확장하기 시작하였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 2021년에는 디지털 환경에 더 적합한 서체인 ‘유앤아이 뉴’ 서체를 개발해 꾸준히 진화하고 있으며 현대카드의 브랜드 자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서체로 브랜딩한 대한민국 최초의 사례. /윤디자인](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185/image-5eaa45c6-f0f4-4578-bdfc-bea838e16a9a.png)
◆배달의민족 – 무료배포로 국민서체 등극
디자이너 출신 김봉진씨가 CEO로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 배달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2년 한나체를 필두로 주아체, 을지로체, 연성체등 많은
서체를 개발했다. 무엇보다 온국민에게 무료로 배포하였다. 도대체 서체 회사인지, 배달 플랫폼인지 헷갈릴 정도다.
가장 먼저 개발한 한나체는 1960~70년대 가장 최신식 간판 스타일인 아크릴판에 시트지를 칼로 투박하게 잘라낸 듯한 모습이다. 삐툴삐툴한 모습이 조형미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서체다.
하지만 이 특별한 조형미는 배달의 민족이 지향하던 유머와 해학의 전략적 결과물이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또 무료로 배포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사용이 가능해 디자이너들이 이곳저곳에 사용하면서 국민서체가 되었다. 이후 주아체, 을지로체 등 연이어 같은 옛스럽고 투박하지만 정감넘치고 유쾌한 폰트들을 개발하여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갔다.
잠시 여담인데, 한나체와 주아체는 김봉진 대표의 자제분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멋진
대표이자, 멋진 아빠다.
![▲배달의 민족 한나체. /우아한형제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185/image-69b771fe-863b-4027-80b9-f48b3db94e48.png)
◆롯데마트 – 더잠실체, 기업의 헤리티지를 녹이다.
롯데마트는 대형유통사에서 드물게 2011년 전용서체를 최초로 개발했다.
당시 “통큰 치큰” 등 이른바 “통큰” 브랜드가 선보였는데 이를 위해 “통큰 서체”와 행복체, 드림체 까지 통큰서체 패키지를 개발해 브랜딩에 활용했다. 하지만 각각의 서체의 특징이 도드라지지 못해 얼마 못가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2022년도 칼을 갈고 만든 ‘더잠실체’를 선보였다. 잠실에 가보면 알겠지만, 그곳은 롯데의 헤리티지가 모여있는 곳이다. 롯데월드와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그곳에 있다. 롯데의 헤리티지를 잠실에서 찾고, 디자인 모티브를 ‘잠실 -누에치는 방’에서 이끌어 냈다.
가독성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시대의 트랜디함을 담고 있다. 아직은 대중들이 많이 알아채지 못하지만 찬찬히 롯데마트의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무기가 되어갈거라고 기대하며, 무엇보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롯데마트 더잠실체. /롯데마트](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185/image-a806c7fe-d6ce-4517-9bf7-0f8693243b80.png)
◆굴림체를 아시나요? – 못나디 못난
예전 PC를 처음 사용하면서 접한 기본 글꼴은 돋움, 바탕 그리고 굴림체였다. 어찌나 그리도 모양새가 못났는지. 별명이 구림체다. 필자가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서체다.
굴림체는 태생이 심미성이 목적이 아닌, 기술이 부족한 시절 단순히 컴퓨터에서 읽기 위해 만들어진 서체이다. 이 글꼴의 원형은 일본어를 표기하는 둥근고딕형 서체인 나루체이다. 이를 토대로 한양정보통신이 개발했고, 윈도우 3.1 부터 윈도우 시스템에 기본으로 탑재됐다.
모양은 못났지만 딱히 대안이 없는 터라 돋움, 바탕, 굴림체 3가지 폰트만으로 디자인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는 그래도 굴림체 만큼은 피했다.
필자 뿐만 아니라 굴림체 덕분에 서체 디자이너들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고민의 결과로 요즘 너무 훌륭한 한글 서체들이 등장하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요즘은 굴림체를 보면 은근 반갑기 까지 하다.
젊은 시절 추억이 함께한 서체, 디자인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리포트를 작성한 서체 – 굴림체
![▲3차 FX 사업 당시 후보기종에 오른 F-15SE의 개발사인 보잉의 신문광고. 굴림체를 사용해 보잉의 광고로 보이지 않고, 대학생 리포트로 보인다. /나무위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185/image-67c22a6c-3d15-4665-b4c0-ffab1a8fa8a4.jpeg)
◆프리텐다드 – 한글의 아름다움이 가득
일반인들은 프리텐다드라는 서체가 낯설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너들에게 보물덩어리
서체이다. 프리텐다드 서체는 젊은 디자이너 길형진씨가 2021년, 당시 25세의 나이로 만든 서체이다. 그는 오픈소스 서체인 ‘본고딕’과 ‘인터’를 활용하여 프리텐다드 서체를 개발하였고, 이를 무료로 배포했다. 서체 작업이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장장 8개월의 시간을 투자해 2780자의 한글 조합을 만들어냈다.
고딕을 기본으로 한 프리텐다드 서체는 한글의 조형성이 뛰어나고, 가독성 또한 뛰어나서 디자이너들이 자주 사용하는 서체다. 고딕체의 쉽게 질리지 않는 특성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을 것이다.
필자는 긴 시간 동안 만든 서체를 무료로 배포한 그의 인품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이자리를 통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
매력적인 한글 서체를 필요로 하는 독자라면 꼭 프리텐다드 서체를 사용해보시기를 권한다.
![▲프리텐다드 서체. /눈누 홈페이지 캡처](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185/image-06253366-c5c1-4c10-b507-456e922d13db.jpeg)
디자이너는 태생적으로 서체를 대할 때 글의 내용보다는 서체의 감정을 먼저 전해받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가끔 오탈자를 내기도 하지만, 그 감정을 알아채는 행위는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비단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을텐데 눈치를 덜 챘을 뿐이리라.
나의 감정을 올곧이 상대방에게 전해주고 싶다면, 글의 내용과 함께 서체까지 고민해본다면 어떨까?
글쓴이 : 한백영은 현재 성균관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이자 롯데이커머스(롯데온) 디자인 자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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