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만 수억이 날아간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1위 기업까지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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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문 닫고, 전기로 꺼지고
1위 기업까지 줄도산 위기
높은 전기요금이 부른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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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입니다.”

국내 제조업 공장이 하나둘 멈춰 서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전기를 많이 쓰는 업종을 중심으로 줄도산 위기까지 거론된다.

급기야 업계 1위 기업들마저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나섰다.

밤에만 돌아가는 유령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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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최근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196원 수준까지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 소모가 많은 합금철, 시멘트, 철강 업계는 아예 공장을 멈추거나, 야간·주말처럼 요금이 비교적 저렴한 시간대에만 가동하는 상황이다.

합금철 업계 1위인 DB메탈은 전체 15개 공장 중 13곳의 전기를 껐다. 470명이던 직원도 350명을 줄였다.

연간 전기료만 1900억 원에 달하면서 “이 상태론 국내에서는 도저히 경쟁이 안 된다”며 설비 축소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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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뉴스1

동해공장 전경은 마치 멈춰선 유령 공장과 다름없으며, 한때 11기 중 9기를 가동하던 전기로는 현재 단 2기만 돌아가며 가동률은 10%대에 그친다.

2위 업체인 심팩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충남 당진 공장을 닫고, 대신 브라질에서 생산한 제품을 들여오고 있다.

시멘트 업계도 마찬가지다. 전체 35기 중 10기가 멈췄고, 레미콘 가동률은 외환위기 시절보다 낮은 17%에 불과하다. 전기로 기반의 철강업체들도 ‘야간 전용 공장’ 체제로 전환 중이다.

동국제강이 시작한 이 체제는 철강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떠나는 기업까지… 美로 눈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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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위기 속에서 일부 기업은 아예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기기 시작했다. 현대제철이 대표적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4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2028년까지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짓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현대차그룹 측은 “현지에서 고품질 강판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돼 관세 등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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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이 결정의 핵심 배경 중 하나는 미국의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5.3달러(2022년 기준)로, 미국(84.5달러)보다 10% 이상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을 100으로 했을 때 미국은 58 수준으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루이지애나주는 천연가스가 풍부한 지역으로 미국 내에서도 전기요금이 저렴한 곳이다. 현대제철이 이 지역을 선택한 배경에는 이런 전기료 차이도 작용한 셈이다.

전력 남아도는데… 공장은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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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전기는 남아도는데, 기업은 그 전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산업용 전기 판매량은 매달 감소세를 기록했다.

11월엔 전년 동월 대비 4.0%, 12월엔 2.5%, 올해 1월엔 4.6% 줄었다. 제조업만 따로 보면 감소 폭은 더 큰데, 1월 한 달 동안에만 4.9%나 감소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대표적 피해 업종이다.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나프타분해설비 가동률은 81%로, 전년 대비 5%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벤젠·톨루엔·자일렌 가동률은 54.3%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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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인상은 이런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경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80원 인상됐다. 이는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폭의 두 배에 달한다.

정부는 2023년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직접 전력거래(PPA)’를 허용했지만, 기존 기업은 해당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해상공회의소는 “발전소는 전력을 못 팔고, 기업은 비싼 전기료에 고통받는다”며 “이상한 제도 설계가 산업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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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늦게나마 해외 투자 지원과 신시장 개척을 언급했지만, 업계는 본질적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요금 부담이 해소되지 않으면 결국 더 많은 기업들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국내 주요 제조업체들의 전기로 공장이 잇따라 가동을 멈추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는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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