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이연주 기자】산불이 발생한 지 벌써 3주 째. 지난 11일 경북 안동 다목적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는 노란 텐트들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높은 천장의 강당 아래, 텐트 앞마다 회색 플라스틱 의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손주 이야기를 나누거나 요즘 건강 상태를 묻고, 의료 봉사단이 건넨 한약을 서로 챙겼다.
몸은 지쳐 보였지만, 표정엔 놀라울 만큼 큰 동요가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피 생활이 계속되면서 슬픔마저 말라붙은 듯했다. 오고 가는 일상적인 대화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이곳은 더 이상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이들의 삶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백씨의 집은 흔적 없이 전소됐다. 창고, 뒷집, 옆집도 모두 타버렸다. 시청에서는 철거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절차는 여전히 낯설고 복잡하다. 그는 “완전히 재가 돼버렸어요. 껍데기만 남은 거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라며 허탈해했다.
그러면서도 백씨는 생존한 목련나무 사진을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꽃이 피었길래 찍었어요. 그걸 보니까 그래도 기분이 좀 좋아지더라고.”
그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집’이다. “정 붙이던 동네였는데… 또 어디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 자리에 다섯 평이라도 다시 지어 살아야지.”

같은 마을 김미자(86)씨는 백씨와 함께 의료봉사단의 한약을 챙겨 먹고 있었다. 그는 산불 후 길주초, 길주중, 그리고 이곳 체육관까지 벌써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도망 나올 때는 아무것도 못 챙겼어요. 지금 신는 신발도 얻은 거고, 옷도 다 얻어 입은 거예요. 장독에 4남매가 5년은 먹을 수 있게 고추장 담가놨는데… 가보니까 홀라당 다 타버렸더라고.”
그 역시 가장 시급히 필요한 지원은 머물 수 있는 집이다. “컨테이너라도 만들어주면 더 바랄 게 없지.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나요. 뭘 짓고 말고가 아니고, 그냥 내가 있을 집이 하나 있으면 돼. 그러면 또 살아지더라고.”
안동시는 이르면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까지 임시 조립주택 18동을 공급할 계획이다. 조립주택은 1년간 무료로 제공되며, 1년 연장 사용도 가능하다. 이달 중 전 세대 입주를 목표로 공공임대주택 74동도 추가 지원한다. 더불어 인문정신연수원, 청수년수련원, 숙박시설 등을 주거 공간으로 제공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경북도에 따르면 16일 기준 안동시 이재민 가운데 임시주택이 필요한 가구는 1024가구에 달한다.
피해는 주택뿐 아니라 생계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사과 주산지인 안동은 과수 피해가 특히 컸다. 경북도에 따르면 16일 기준 안동의 사과 피해 면적은 791ha로, 전국 피해 면적 1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농민들에게도 가장 시급한 건 결국 ‘집’이다. 고공리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임원석(55)씨는 마을을 안내하며 “10가구 중 9가구의 집이 형체도 없이 탔다”면서 “집을 두 번밖에 못 봤어요. 마음이 아파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안동시 관계자들이 피해 조사를 다녀가긴 했지만, 농촌 주택 구조 특성상 보상 문제는 여전히 걸림돌이다. 농사에 맞게 창고를 증축하거나 공간을 늘리는 일이 흔한 탓에 무허가 구조물이 많고, 실제 사용 면적보다 훨씬 적은 면적만 보상받게 된다는 것이다.

임씨는 “기존 집보다 작아지더라도 자부담해서라도 다시 짓고 싶어요. 그런데 금융 지원은 들은 게 없어 막막하죠. 이자나 원금 상환 유예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설령 조립식 주택이 모두 공급된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농지와 주택 사이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고령의 농민들이 많은 현실에서는 심각한 장애다. 고곡리 마을 김해춘 이장은 “조립주택이 들어서는 곳이 우리 마을이랑 멀다”며 “이 나이에 농사짓는 데 왔다갔다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