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방송사는 ‘갑’이었다. 콘텐츠 제작자든 연예인이든 광고주든, 방송사 문턱을 넘는 일이 가장 먼저였고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방송사는 더 이상 유일한 유통 채널이 아니다. 콘텐츠는 더 이상 지상파를 통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 OTT와 유튜브라는 파괴적 플랫폼이 콘텐츠 유통의 주도권을 가져가면서 방송사는 콘텐츠 시장에서 ‘을’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조의 변화가 재무제표에 선명히 드러난다.

SBS의 2024년 연결 재무제표를 보면, 전체 매출 약 1조 원 가운데 광고수익은 3992억 원에 불과하다. 콘텐츠 판매를 중심으로 한 사업수익이 6474억원으로 광고수익보다 훨씬 많다. 2023년에 비해 광고수익은 4.2% 줄었지만, 사업수익은 11.6%가 증가했다. 즉 지상파 방송으로 벌어들이는 돈보다 콘텐츠를 판매해 버는 돈이 더 크다. 이런 추세는 2018년부터 시작됐고, 2022년부터는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송 제작비가 늘면서 손익에 문제가 생긴다. 지난해 SBS는 19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큰 틀에서는 방송사업 수익성이 줄고 있다는 걸 숫자로 보여준다. 특히 금융수익 등에 힘입은 337억원의 당기순이익은 방송사가 콘텐츠 자체보다는 투자와 금융활동에 의존한다는 걸 반증한다. SBS의 2024년 유동금융자산 취득∙감소 규모는 약 1조1000억원이다.
JTBC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2024년 매출액은 약 3801억 원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386억원, 당기순손실은 473억원에 달했다. 방송채널 광고와 수신료/프로그램 판매 등 양쪽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현금흐름도 악화돼 영업현금흐름이 -731억 원으로 전년보다 크게 악화됐다.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자 신종자본증권 1144억 원을 발행해 자본을 일시적으로 보강했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대표 OTT 합작사인 ‘콘텐츠웨이브’ 역시 1476억원의 적자를 낸 상황이다.

콘텐츠웨이브는 흔히 Wavve(웨이브)로 알려진 회사로 국내 지상파 3사(KBS, MBC, SBS)와 SK텔레콤이 힘을 모아 2019년 공동 출자하여 설립한 회사다. 당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OTT(Over-The-Top) 플랫폼 운영사로 키워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응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현재로서는 손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공중파 3사에 전가되고 있다. MBC(문화방송) 사정도 비슷하다. 2024년 매출액 약 1조2559억원에 396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다행히 당기순이익은 228억 원으로 플러스다. MBC 순이익은 614억원에 달하는 이자수익과 자회사나 투자에서의 수익 덕분이다. MBC 또한 방송 외 수익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광고가 힘이 되질 않는 방송사는 올드 미디어 플랫폼(송신망)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텐츠 제작사가 플랫폼을 선택하는 주체로 떠오르는 변화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불거진 ‘최강야구’ 사태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최강야구’는 JTBC에서 방영되던 인기 예능 프로그램으로, 외주 제작사 스튜디오C1(대표 장시원 PD)이 시즌1부터 시즌3까지 제작해 고정 팬층을 확보한 콘텐츠였다. 그러나 시즌4 제작을 앞두고 문제가 불거졌다. JTBC와 스튜디오C1 간에 제작비 청구 방식, 수익 배분, 회계 처리 등에서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스튜디오C1은 제작 중단을 선언하며, 출연진과 연출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운 프로그램 ‘불꽃야구’ 제작을 발표했다.
방송 프로그램 송출권을 가진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사이의 갈등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방송사에 감히 항거할 수 없었던 분위기가 존재했다. 게다가 불꽃야구는 다른 방송사와 협의 중이라고 하니, 이제는 방송사가 제작사를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콘텐츠 유통의 주도권이 방송사에서 플랫폼(OTT, 유튜브)과 그리고 제작사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우수한 콘텐츠 제작 능력이 없는 방송사는 점점 도태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공중파 방송사의 영업적자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에 반해 종편 방송사는 TV조선(조선방송)과 MBN(매일방송)의 흑자는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광고보다 콘텐츠 제작에 집중한 결과다.

방송사가 플랫폼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단순 유통창구가 되어가는 시대, ‘채널’보다 ‘콘텐츠’가 강자라는 시장 인식이 정착되고 있다. 이는 단지 제작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성과 지표인 재무제표 숫자에도 드러나는 현실이다. 이제 방송사들은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방송사가 스스로 콘텐츠의 기획과 품질을 통해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시청률’은 더 이상 방송사의 파워를 의미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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