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마케터 시점] 숏폼의 시대, 우리는 ‘지속 가능한 대환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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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숏폼과 인공지능(AI)의 시대다. 영화는 봐야겠고, 시간은 안될 때 혹은 자투리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던 숏폼이 어느덧 대세로 자리잡았다. 

AI의 경우 그 편리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이들이 점차 많아졌다. 이미 주변에는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이 둘은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은 태생부터 같은 DNA를 지녔다. 바로 ‘속도’다.

현대인을 위한 효율성과 즉시성이라는 이름 아래, 기술은 거침없이 진화해 왔다. 영화와 콘텐츠 마케팅도 예외는 아니다. 단계별 메시지라던가 빌드업 전략은 사치다. 긴 영상은 잘게 썰린다. 스크롤에 매달려야만 살아남는다.

최근 카카오엔터가 출시한 AI 기반 웹툰 숏폼 제작 기술 ‘헬릭스 숏츠’는 이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용자의 취향에 맞춰 웹툰을 추천하고, 줄거리와 관전 포인트까지 압축해준다. 로그라인과 시놉시스를 쓰느라 머리를 싸맨 마케터들을 머쓱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나다. 나와 맞지 않는 콘텐츠는 애초에 보이지 않는다. 하루를 버티게 하는 초고속 도파민, 그렇게 우리는 ‘선택’이 아닌 ‘주입’되는 즐거움을 받아들인다. 확실히 즐겁다.

하지만 과연, 그 즐거움이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 /넷플릭스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 /넷플릭스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을 봤다.

어디가서 자랑할만 하지 않은 나의 숨기고 싶은 일상과 닮은 모습, 예능계의 유니콘 같은 희소성을 동시에 지닌 기안84에 대한 호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기안84가 출연하는 예능은 트렌드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점이 늘 끌렸다.

그가 나오는 예능에는 그 흔한 게임도 없고, 먹방도 없고, 속도전도 없다. ‘대환장 기안장’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탄생하게 만든 상상력을 주춧돌처럼 울릉도 바다 한 복판에 무심한 듯 쌓고, 거기에 로망처럼 보이는 자기관리(클라이밍과 운동기구)를 한 스푼 넣은 다음, 맨손으로 카레 한 그릇을 비벼 민박을 찾아온 손님에게 내놓듯 시청자들에게 선보인다. 

제목 그대로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대체할 수 없는 도파민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요새 MZ는 숏츠나 보고, 알아 들을 수조차 없는 줄인 말로 말도 통하지 않는다고 속단했던 사람들을 한 방 먹인다. 세상 사는 게 녹록하지 않다고 꼰대처럼 말할 필요도 없다. 취준생, 탈북자, 휴가 나온 군인까지 모여든 울릉도의 밤바다는 세상에 ‘로망’보다 긴 도파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우리에게 말해준다.

청춘, 낭만,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의 소중함은 여전히 ‘로망’이라는 이름으로 유효하다고. 나이로는 기성 세대로 편입된 기안84와 청춘을 영리하게 만나게 한 제작진의 연출력이 빛을 발했다.

속도가 주는 쾌감은 즉각적이지만, 감정의 잔향은 오히려 속도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순간들에서 피어난다. 연예인이지만 연예인이 아닌 기안84의 예능처럼 뾰족하게 재미를 겨냥하지 않는 콘텐츠가 오히려 오래 남는 이유다.

요즘은 무언가를 ‘견디는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감정을 느끼기 전, AI가 감정을 요약해주고, 숏츠는 감정의 핵심만 발췌해 준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요약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천천히 체험한 감정에 반응한다. ‘효율’로 감정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케터들의 존재 이유이자 가장 큰 과제다.

필자에게 있어 ‘힐링 콘텐츠’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하지 못한 것들’이 전해주는 쓰라린 단맛이 에너지로 변환될 때 느끼는 감정을 담고 있다. 그 감정은 속도로는 얻을 수 없다. 사용하는 사람도, 제공하는 사람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다. ‘짧을수록 강력하다’는 숏폼의 공식이 모든 감정을 대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진짜 힐링은 효율성을 극대화한 AI로 절대 요약될 수 없다.

BTS 진의 중독성 높은 말투나, 지예은의 무해한 표정이 초기에는 관심을 끌지 몰라도, 그 끝까지 느리게 따라가서 울릉도의 마지막 밤을 마주해야 비로소 손에 쥘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숏폼의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지속 가능한 대환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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