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29조 시대…불안은 어떻게 경쟁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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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한 아이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학원가를 향해 걷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한 아이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학원가를 향해 걷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민수 인턴기자】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큰 가방을 멘 채 학원 건물로 향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학원 앞은 자녀를 데려다주는 부모들의 차량이 끊이지 않았고, 거리에는 ‘○○의대관 모집’, ‘초등수학·초등논술’ 등 홍보 간판이 즐비했다. 오후 3시, 방과 후 여유로운 일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닌 학원가에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사교육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대치동. 이곳의 방과 후 풍경은 과거보다 더 치열해졌다. 놀이터 대신 학원으로 향하는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고 학원 앞은 자녀를 데려다주는 차량으로 붐빈다. ‘사교육 공화국’이라는 말이 이 거리 위에 그대로 펼쳐진 듯하다.

유아기까지 번진 사교육 광풍

초등학생을 넘어 이제는 유아기까지 사교육이 일상처럼 자리잡고 있다. 최근 발표된 통계자료와 교육현장 용어는 그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통계청과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사교육비는 2022년 26조원, 2023년 27조원, 지난해 29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사교육비 29조원은 국방비 예산(57조원)의 절반 수준이다. 교육 분야에서 민간이 부담하는 비용이 국가 예산 주요 항목에 버금갈 정도로 커진 것이다. 

또한 초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50만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3%에 달해 사실상 대부분의 학생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과열 속 ‘조기 사교육’은 유아기까지 확산됐다. ‘초등 의대반’, ‘4세 고시’, ‘7세 고시’와 같은 신조어가 등장했다. 4세 고시는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한 레벨 테스트를 말하며 7세 고시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명 학원의 입학시험을 의미한다.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준의 문제를 풀고 유아들이 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현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도한 조기 교육에 대한 규제 움직임도 있었지만 실효성은 낮다. 지난해 7월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은 초등의대반 방지법 제정 국민운동을 시작해 규제를 촉구했으나 아직까지 법안은 계류 중이다. 국회 논의가 학원의 자율성과 충돌해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의는 이어지고 있지만 정책적 해결은 제자리걸음이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사교육

사교육은 단순한 학습 보완이 아니라 부모 세대의 불안을 반영하는 구조적 선택이 되고 있다. 그 불안이 입시 경쟁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과 연결되며 조기 사교육까지 확장하고 있다.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사교육 수강 목적에는 학교 수업 보충, 선행학습, 진학 준비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 등이 있다. 특히 과열된 입시 경쟁과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교육은 이미 ‘선택’이 아닌 ‘불안에 대한 보험’이 돼버렸다.

조기 사교육 열풍의 근본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학벌 중심주의와 직업 안정성 양극화에 있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중심으로 상위권 대학 진학이 곧 안정된 직업, 높은 소득,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길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학벌은 인생의 출발선이 된다.

대학 서열화는 이 구조를 고착화한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출신 대학을 주요한 채용 기준으로 삼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상위권 대학 입학은 곧 안정적인 일자리와 계층 상승의 수단이 된다. 부모들은 자녀가 경쟁에서 밀릴까 두려워 조기에 사교육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신대학교 황규성 연구교수는 “사람들이 명문대에 집착하는 것은 단순히 학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로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라며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과 같은 일자리 양극화를 해결하지 않는 한 사교육은 계속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입시제도 개편을 시도했지만 사교육비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SKY 대학에 진학하는 강남학생 비중은 더 늘어났다”며 “입시제도를 바꿀 때마다 학부모들은 불안에 편승해 사교육 시장의 새로운 틈을 찾아내고 그 구조 속에서 사교육이 더욱 팽창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불안은 이제 유아기까지 파고들고 있다. 교육부에서 지난 3월 발표한 ‘2024년 영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에 따르면 0~5세 영유아의 47.6%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관성 없는 정책, 깊어지는 불신

사교육 문제가 커지면서 정부는 매 정권마다 ‘공교육 정상화’를 내세우며 다양한 교육정책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은 일관성을 잃은 채 반복적으로 수정·변경됐고 이는 학부모와 학생의 혼란과 불안 심리를 부추겼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사고와 특목고 확대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고교 서열화 해소를 목적으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정권에 따라 정책 방향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입시제도 역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과목 선택 제도가 폐지되면서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과목으로 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는 올해부터 도입된 고교학점제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다양성과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목적이지만 수능은 다시 획일적 평가 체제로 회귀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교육개발원 남궁지영 연구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급변하는 것은 학부모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감과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며 “더불어 복잡한 입시제도에서 오는 학부모의 불안감과 준비 부담감이 사교육을 통한 선행학습을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공교육만으로 대비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강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사교육 시장에 의존해 정보와 전략을 선점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정책의 일관성 부재는 학부모의 조바심을 자극하고 이는 사교육 수요를 구조적으로 늘리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초·중·고 수학 선행·심화 수업을 홍보하는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투데이신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초·중·고 수학 선행·심화 수업을 홍보하는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투데이신문

가계 부담 넘어 사회 위기로

사교육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그 부담이 단순히 개인이나 가정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되며 점점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은 한 가정의 선택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를 흔드는 원인지가 결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계층과 거주지역에 따라 상위권 대학 진학률의 큰 격차가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계층별로 소득 상위 20%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하위 20%보다 5.4배 높게 나타났으며 서울과 비서울 간의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8%만이 잠재력 차이에 의해 나타난 것이었고 92%는 부모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 등 ‘거주지역 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교육과 학업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실현시키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개천’을 고착화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출발선의 차이를 극복하기보다 부모의 소득과 지역, 사교육 투자 능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가 됐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교육의 문이 출발선부터 기울어져 있는 셈이다.

사걱세 백병환 정책팀장은 “사교육 투자 여력의 차이가 교육 기회의 차이로 이어진다”며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에 따라 사회 양극화도 고착화된다”고 평가했다.

가구 소득 수준에 따라 사교육비에 최대 3.3배 차이가 난다. [이미지제작=투데이신문]
가구 소득 수준에 따라 사교육비에 최대 3.3배 차이가 난다. [이미지제작=투데이신문]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은 월평균 67만6000원을 사교육에 지출한 반면, 300만원 미만 가구는 20만5000원 수준에 그쳤다. 소득이 높은 가구일수록 더 많은 사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격차는 소득 격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 기회를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많은 이들이 ‘내 아이도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가진다. 이러한 불안은 사교육의 부담과 맞물려 출산 자체를 망설이게 한다. 

경희대학교 김태훈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월 5일 제37회 인구포럼에서 발표한 ‘사교육비 지출 증가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생 1명당 사교육비가 1% 증가하면 이듬해 합계출산율이 약 0.192~0.26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재수생이 또 다른 재수생을 양산하면서 노동시장 진입과 혼인이 늦춰지고 이는 미래 출산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사교육 문제는 단순한 교육 이슈를 넘어 인구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과제”라고 진단했다.

백 팀장도 “사교육비 부담은 단순한 교육비 지출을 넘어 ‘아이를 낳아도 키우기 두렵다’는 현실적 불안을 초래하고 이는 결국 출산 기피로 이어져 저출생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은 GDP(국내총생산)의 약 1% 수준에 달할 만큼 가계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으며 이는 부동산 구입이나 소비 지출 여력에도 직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학원에 가기 위해 모이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학원에 가기 위해 모이고 있다. ⓒ투데이신문

사교육의 뿌리 흔들 구조적 개혁 필요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교육 제도만의 실패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학벌 중심 사회와 노동시장 양극화, 정책 불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사교육 확산의 구조적 배경이 형성됐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제도 개선에만 초점을 맞춘 반복적인 접근이 이어지며 근본 원인에 대한 실질적 개입은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황 교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지금의 노동시장에서 사교육이 ‘계층 보존·상승을 위한 투자’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며 “교육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단순한 교육·입시 제도 개편만으로 사교육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지방대학의 경쟁력 회복, 학벌 중심 채용 문화 개선, 일자리 질 격차 완화 등 대학 구조와 노동시장 전반의 개혁이 병행돼야 사교육을 유발하는 구조적 불안이 완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또한 한국 교육정책과 입시정책이 정권마다 바뀌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변화의 피로’와 ‘불확실성’을 안겨줬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정책이 자주 요동치는 상황에서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더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단기적·파편적 접근이 아니라 긴 호흡의 국가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백 팀장은 “교육정책은 단순한 제도 설계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며 “아이를 믿고 학교에 보낼 수 있어야 사교육 의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이어질 수 있는 10년 단위 국가교육계획과 같은 중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교육위원회 같은 독립기구의 실질적인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일각에서는 핀란드식 무시험제나 중국식 사교육 규제 등 해외 교육 모델을 단편적으로 차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외 사례를 단순 도입하는 방식은 국내 현실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외형만 따라가는 방식은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학창 시절의 교육은 본래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 교육계의 일반적 견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육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교육이 어느새 대학 입시를 위한 준비 단계로 전락했고 입시 경쟁을 위한 도구로만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서울대학교 이종재 명예교수는 “우리는 지금 입시 경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진정으로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조차 잊고 있다”며 “AI(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자기주도학습과 삶의 맥락 속에서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라고 전했다. 이어 “획일적인 입시 중심 교육을 넘어 다양한 학습 생태계를 조성하고 이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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