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한메일’이라는 이메일 서비스를 무료로 내놓았다. 파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메일은 돈을 내고 쓰는 유료 서비스가 상식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메일은 ‘무료가 당연한’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2010년대에는 영상통화가 그 뒤를 이었다. 페이스북 메신저, 카카오톡 등에서 앞다퉈 무료 영상통화 기능을 내놓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이메일과 영상통화가 ‘공짜’라는 개념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애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2025년 6월, 쿠팡플레이가 한국 OTT 최초로 광고 기반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도입한다. 구독료 없이도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넷플릭스의 독주와 국내 OTT의 고전 속에서, 태생이 다른 쿠팡플레이가 꺼낸 이 ‘무료화’ 전략은 단순한 가격 정책을 넘어 콘텐츠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콘텐츠도 이메일이나 영상통화처럼, ‘무료화의 길’을 걷게 될까?
우리는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유튜브, 틱톡, OTT, SNS까지 — 화면을 켜는 순간부터 쏟아지는 볼거리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볼 게 없다’고.
재화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는 수요와 희소성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콘텐츠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무형의 재화인 콘텐츠는 객관적인 비용이 아니라 주관적인 욕망과 집중력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재미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건 단지 ‘무가치’가 아니라 ‘시간 낭비’가 된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어떤 콘텐츠는 0원이 아니라 마이너스다.
영화관도 다르지 않다. 한 때는 줄을 서서 예매하고, 상영관 앞에서 대기하던 ‘의식 같은 소비’가 지금은 앱 몇 번 터치로 끝난다. 편의성은 높아졌지만, 그 만큼 희소성은 증발했다.
콘텐츠는 정말 공짜가 될 수 있을까?
이메일은 무료가 됐고, 영상통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콘텐츠는 다르다. AI가 창작을 보조하는 시대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콘텐츠는 사람이 만든다. 상업영화의 경우, 전체 제작비의 절반 이상이 배우, 감독, 스태프의 인건비다.
OTT 오리지널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만들기 위해선 돈이 드는 일이고, 좋은 것을 만들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콘텐츠를, 공짜로 소비하길 원한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누가 2시간짜리 영화를, 12부작 드라마를 ‘기꺼이 돈 내고’ 보려 할까? 우리는 지금 ‘관람의 시대’를 지나 ‘구독의 시대’, 그리고 이제는 ‘부가서비스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의민족이 티빙과 손을 잡았다.
“음식을 주문하면 콘텐츠를 보여줄게.”

이제 콘텐츠는 주인공이 아니라, 미끼다. 사람들은 콘텐츠 그 자체보다는 콘텐츠를 둘러싼 편의성에 지갑을 연다. 콘텐츠는 여전히 재화인가? 콘텐츠는 넘쳐나는 시대에 이 질문은 더욱 공허해진다.
영화업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필자는 시시때때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느 정도 콘텐츠가 어느 정도 가격에 소비돼야 타당한가?”
명쾌한 답은 없다. 유료 구독자는 줄어도, 조회수는 오른다.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 게 아니다. ‘지불하지 않고 소비하는 방식’을 찾고 있을 뿐이다. 쿠팡플레이의 실험은 이 흐름 위에 있다.
이제 콘텐츠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플랫폼 위에서 거래되는 신호이며, 유입의 기회다. 무료화는 콘텐츠의 종말은 아니지만,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 시대의 징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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