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빼앗겼던 이것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기적 같은 귀환 소식에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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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사당, 비운의 역사 속
100년 만에 돌아온 목조 전각
문화유산 귀환의 새로운 이정표
석유화학
사진 = 국가유산청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 왕실 사당 건축물 ‘관월당’이 100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긴다.

한 차례 무산됐던 귀환 시도가 재추진된 끝에 마침내 모든 건축 부재가 한국으로 이송됐다. 일제강점기 반출된 문화재 중 원형에 가까운 목조 건축물이 온전히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월당의 복귀는 단순한 문화재 반환을 넘어, 상실된 역사에 대한 회복이자 문화 정체성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100년 전 일본으로 넘어간 왕실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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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국가유산청

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를 갖춘 목조건축물로, 조선 후기 왕실의 사당 양식을 보여준다. 운보문, 만자문 등 화려한 문양이 단청에 남아 있어 왕실 건축물의 위계를 뚜렷이 드러낸다.

학계 안팎에서는 조선 왕실이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관월당을 담보로 넘어갔고, 이후 조선식산은행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이를 스기노 기세이에게 넘긴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후 스기노가 관월당을 1930년대 일본 가마쿠라의 고토쿠인 사찰에 기증했고, 이후로는 해당 사찰의 경내에서 약 100년간 관음보살상을 모신 기도처로 활용됐다.

당시 일본의 주요 경제인물이었던 스기노 기세이는 야마이치 증권의 전신인 야마이치 합자회사의 초대 사장을 지낸 인물로, 그의 손을 거쳐 조선 왕실의 유산이 타국의 절에 자리잡는 비극을 맞은 것이다.

실패 끝에 찾아온 기적 같은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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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관월당 귀환을 위한 첫 시도는 2010년으로, 당시 대한불교조계종과 일한불교교류협회가 귀환에 합의했으나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이후 2019년부터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고토쿠인 측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고, 약 6년간의 협의를 통해 부재를 공식 양도받는 데 성공했다.

2023년 고토쿠인 측은 건물의 보존과 복원을 위해 건축물을 해체했고, 기와·석재·목재 등 모든 주요 부재를 순차적으로 한국으로 이송했다.

현재 이 부재들은 경기 파주의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서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이번 반환은 사찰 주지인 사토 다카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그는 일본에서의 해체 및 운송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며 문화유산 귀환에 힘을 실었다.

또한 한국과 일본 양국이 문화유산을 공동 연구하자는 제안과 함께 관련 기금까지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형 복원’ 사례로는 첫 기록… 그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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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관월당의 귀환은 기존의 문화재 반환 사례와 비교해도 그 의미가 크다.

1995년 반환된 경복궁 자선당 유구는 기단석과 주춧돌 등 일부 석재만 돌아온 사례였으나, 이에 비해 관월당은 목조 건축 전체가 해체 후 원형에 가깝게 반환된 최초의 사례다.

건축학적 분석에 따르면, 관월당은 대군급 왕족을 위한 사당 규모로, 궁궐 건축의 전형적인 형식을 띤다.

다만, 정확한 원래 위치와 건물의 명칭, 봉안된 인물 등에 대한 정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아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태다. 해체 과정에서도 상량문 등 결정적인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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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향후 정밀 조사와 함께 원형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며, 일부 구조가 일본 이전 과정에서 변형된 것으로 확인돼 복원 단계에서 이를 반영할 방침이다.

관월당 귀환은 물리적인 문화재 복귀를 넘어 한일 간 문화적 공감과 협력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문화유산이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자산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이번 귀환에 대해 “소장자의 진정성 있는 결단과 양국 전문가들의 협력 덕분에 가능했던 성과”라며, “문화유산을 통한 상호 존중과 공감이 한일 간 미래지향적 연대의 상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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