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인물 박정희” 나라 전체를 바꾸는 중인 ‘독재 국가’ 대통령

“존경하는 인물 박정희” 나라 전체를 바꾸는 중인 ‘독재 국가’ 대통령
르완다의 기적, ‘아프리카의 박정희’로 불리는 지도자
동아프리카의 내륙 국가 르완다는 1994년 인종 대학살 이후 잿더미에서 일어났다. 그 중심에는 ‘르완다의 박정희’라 불리는 폴 카가메 대통령이 있다. 그는 한국의 산업화 모델과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하며 르완다를 재건했다. 실제로 농촌 현대화 정책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토대로 설계되었고, 교육·산업·기술 인프라 확충에서도 한국의 경험이 그대로 반영됐다.

대학살의 폐허 위에서 ‘단합’으로 국가를 세우다
르완다는 1994년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규모 학살로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반군 사령관이던 투치족 출신 폴 카가메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과도정부를 세웠다. 그는 복수 대신 ‘단합’과 ‘용서’를 내세워 피해와 가해의 경계를 지우는 통합 정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르완다는 장기적 안정과 사회적 화해를 이루며, 아프리카 내에서도 보기 드문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개발독재식 성장, 박정희의 그림자를 따르다
카가메의 통치 방식은 한국의 1960~70년대식 개발독재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헌법을 개정해 임기 제한을 폐지하고, 2034년까지 장기 집권이 가능하도록 했다. 치안 강화, 경제 성장, 부패 척결에 성공하며 국민 지지를 얻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언론 자유와 정치 다양성 제한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카가메는 이에 대해 “르완다의 길은 르완다 국민이 정한다”고 강조하며 자신만의 리더십을 정당화하고 있다.

‘르완다의 한강의 기적’, 산업화로 이어진 성장
르완다는 카가메 집권 이후 산업화·정보통신기술·농업 현대화에 집중 투자하며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르완다 비전 2050’을 통해 ICT 허브 국가를 목표로 세웠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디지털 행정이 발달한 나라로 꼽힌다. 수도 키갈리는 깨끗한 도시와 질서정연한 교통체계로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라 불린다. 박정희 정부 시절의 국가 주도형 경제성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국제사회 평가, 성장과 권위주의의 공존
카가메의 정책은 르완다를 아프리카의 모범 국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권위주의적 통치’ 논란도 커지고 있다. 영국과의 난민 수용 협약, 정치 반대자 탄압, 언론 규제 등은 서방 사회의 비판 대상이다. 그러나 르완다 내부에서는 높은 투표율과 경제 성장률이 리더십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카가메는 “혼란보다 질서가 발전의 토대”라는 철학을 내세우며, 경제 성장과 사회 통합을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다.

핵심 정리
1 폴 카가메는 박정희의 산업화 모델을 벤치마킹한 ‘르완다의 박정희’로 불린다.
2 내전과 대학살의 폐허 위에서 단합과 포용으로 국가 재건에 성공했다.
3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하며 개발독재형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4 ICT·농업·교육 중심의 산업화 정책으로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라는 평가를 받는다.
5 언론 자유 제한 등 권위주의 논란 속에서도 르완다는 여전히 아프리카 재건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