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부자는 확신하고 서민은 포기한다” K자형 양극화의 그림자

FORTUNE Korea 조회수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윌리엄앤드메리(William & Mary)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리서치 회사 파이낸셜 인사이트츠(Financial Insyghts)를 이끄는 피터 앳워터는 이른바 ‘K자형 경제’ 개념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코로나19 이후 회복 국면을 두고, 일부는 빠르게 회복하지만 일부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구조를 가리켜 “K자형 회복(K-shaped recovery)”이라고 부른 익명 트위터 이용자 ‘아이반 더 K(Ivan the K)’가 첫 포문을 열었고, 앳워터가 이를 널리 퍼뜨렸다.

앳워터는 표현을 만든 공은 아이반 더 K에게 돌리지만, 이 개념을 본격적으로 확장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는 2020년부터 소득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을 여러 글로 분석했다.

화이트칼라 근로자는 재택근무로 버텼지만, 블루칼라 근로자는 그 울타리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 산업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지만, 서비스업처럼 저소득층이 일하던 업종은 직격탄을 맞았다. 해고되거나, ‘필수 노동자’로 분류돼 위험 부담을 안은 채 일터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K자형 경제’라는 말은 각종 데이터에서 드러나는 소비·임금 격차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상·하위 소득 계층의 소비와 소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벌어지면서, 그래프가 K자 모양으로 갈라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개념을 대중화한 당사자인 앳워터는 전문가들이 이 갈라진 운명을 이야기하면서 “결정적인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감정이라는 요소다. 앳워터는 포춘에 “사람들이 감정의 측면을 놓치고 있다”며 “우리를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동인은 경제 그 자체가 아니라 경제를 둘러싼 감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강렬한 확신과 끊임없는 통제력을 느끼는 아주 작은 집단이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절망의 바다(sea of despair)’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 부분이 논의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 지표만 봐도 부의 격차는 분명하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미국 소득 하위 25%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은 약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대로 소득 상위층의 임금은 어떤 계층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

신용평가사 트랜스유니언 보고서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대출이 늘고 있다는 점도, 많은 미국인이 재정 압박을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높은 신용점수를 가진 이들이 받는 ‘슈퍼 프라임’ 대출도 함께 늘고 있다. 아폴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르스텐 슬록은 심지어 “주식시장조차 K자형”이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세븐(Magnificent Seven)’ 일부 대형 기술주의 이익 전망은 올해 내내 치솟았지만, 나머지 S&P 493개 종목의 기대 이익은 줄었다는 것이다.

신뢰와 자신감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 온 앳워터는 이런 숫자를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정 역시 K자형으로 갈라져 있다는 주장이다. 미시간대 소비자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인들의 경제 심리는 소득 수준에 따라 확연히 갈렸다.

저소득층은 경제에 대해 훨씬 덜 자신감을 느끼는 반면, 고소득층은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2022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리면서 상위 3분의 1과 하위 3분의 1 소득층 모두에서 심리가 동반 하락했다.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가 발표된 올해 4월에도 모든 소득 계층에서 경제 전망에 대한 자신감이 동시에 떨어졌다.

감정은 왜 중요한가. 앳워터에 따르면 이 갈라진 감정선은 서로 전혀 다른 두 가지 행동 패턴을 만들고, 둘 다 경제의 취약성을 키운다.

그는 “사람은 세상이 예측 가능하다고 느껴야 일정 수준의 확실성을 가질 수 있고, 동시에 어느 정도 통제력도 느껴야 한다”면서 “앞길이 곧게 뻗어 있다는 걸 아는 건 좋지만, 차를 운전하는 방법을 모르면 운전대 앞에서 결코 자신감을 느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낮은 소득층이 경제적으로 취약했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그런 취약성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완전히 무력하다고 느낄 수 있다. 앳워터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다섯 가지 F’로 정리한다. 싸우기(fight), 도망치기(flight), 얼어붙기(freeze), 그저 따라가기(follow),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f-ck it)” 하고 포기해 버리는 태도다.

그는 “사다리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가 이기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지게 만들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감정은 지갑을 닫는 행동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앳워터는 블루칼라 노동자나 단순 사무 업무에 묶여 있는 화이트칼라 노동자 모두, 소비를 줄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일터 자체를 망가뜨리기 시작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컨설팅사 콘페리(Korn Ferry)의 스테이시 디체사로 매니징 컨설턴트는 올해 초 포춘에, 채용·해고가 모두 적은 이른바 ‘잡 허깅(job hugging)’ 시대에 직원들이 일자리를 붙들고 있는 대신 조직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정서는 몰입 감소와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지고, ‘대퇴사(Great Resignation)’의 재연을 부를 수 있다.

반대편, K자형의 윗부분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앳워터는 경고한다. “우리가 과도하게 자신만만하고 스스로 상처 입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위험에 눈이 멀게 됩니다.”

부의 효과 덕분에 부유층은 주식시장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 특히 거품 논란이 커지는 인공지능 관련 주식 비중이 커졌다. 앳워터는 오늘날 고소득층이 느끼는 부는 단지 숫자상의 증가가 아니라, ‘부가 영구적’이라는 감정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뉴욕대의 에드워드 네이선 울프 교수 계산에 따르면, 미국 상위 20% 가구가 전체 주식 자산의 약 93%를 보유한다. 2022년 11월 챗GPT가 등장한 이후 AI 관련 종목은 S&P 500 수익의 약 4분의 3을 책임졌다.

앳워터는 “경제학자와 시장 참여자들은 늘 ‘주식시장이 곧 경제는 아니다’라고 말하곤 한다”며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경제가 곧 주식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클라우디아 삼 뉴 센추리 어드바이저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K자형 경제가 자산 거품이 터질 경우 경제의 취약성을 훨씬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앳워터는 그 효과를 정치적 영역까지 확장해 본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긴장은, 특히 하위 소득층이 “위에 있는 사람들만 계속 더 부유해지고 있다”고 느낄수록 더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아랍의 봄’을 촉발한 사회 불안을 세계 식량 가격 상승과 연결한 2011년 뉴잉글랜드 복합시스템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하며, 미국에서도 저소득층이 상위 계층을 향해 점점 더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앳워터는 “지금 벌어지는 일은 신뢰의 위기(crisis of confidence)”라고 진단했다. “안타깝게도 이를 해결할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이들은 최소한 무관심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무관심은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 글 Sasha Rogelberg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이 기사에 대해 공감해주세요!
+1
0
+1
0
+1
0
+1
0
+1
0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