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이 드러낸 AI 붐의 이면
![[사진=셔터스톡]](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1/CP-2024-0163/image-0c51a669-5dce-4e34-9174-03339fc82ab6.jpeg)
“오라클이 ‘시장 총아’에서 ‘예비 문제아’로 급격히 바뀐 과정은 AI 붐의 이면을 드러낸다”는 인식이 월가에서 퍼지고 있다. 지난 2년간 투자자들의 기대가 아무리 높았더라도, AI 산업은 물리 법칙과 부채 조달의 현실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라클 주가는 9월 고점 대비 45% 하락했고, 지난 주에만 14% 떨어졌다. 분기 실적 발표에서 분기 설비투자(CAPEX)가 120억 달러로, 시장 예상치(82억 5000만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영향이다.
실적 가이던스도 부진했다. 오라클은 2026회계연도 설비투자 전망을 추가로 150억 달러 상향했다. 투자 대부분은 AI 사이클에서 3000억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맺은 오픈AI(OpenAI) 전용 데이터센터에 투입될 예정이다. 오라클 공동 CEO 클레이 마고익은 지난 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용량을 공급하기 위한 야심차면서도 실현 가능한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막대한 투자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클라우드 매출과 클라우드 인프라 매출이 모두 월가 기대에 못 미친 가운데, 애널리스트들은 오라클의 AI 인프라 확장을 ‘부채에 의존한 투자’로 평가하고 있다. (*오라클은 공시에서 특정 부채를 특정 프로젝트에 직접 연결하지는 않았다.)
더 큰 문제는 AI 전략의 핵심으로 꼽히는 오픈AI 데이터센터에서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라클은 ‘노동력과 자재 부족’을 이유로 미국 내 일부 오픈AI 데이터센터의 완공 시점을 2027년에서 2028년으로 미뤘다.
데이터센터 연구자인 조너선 쿠미는 “노동력과 자재 부족이 발생하는 것은 충분히 현실적인 시나리오”라며 “AI 붐은 디지털의 속도와 물리적 속도의 차이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트의 세계는 빠르지만, 원자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라며 “데이터센터는 이 두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지연된 시설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쿠미는 뉴멕시코 외곽에 제안된 초대형 데이터센터 단지 ‘프로젝트 주피터(Project Jupiter)’가 유력한 후보라고 봤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16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는 메가 캠퍼스로, 오라클이 오픈AI에 연산 능력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의 핵심이다.
쿠미는 “자본은 즉시 투입할 수 있지만, 그 자본으로 구매해야 할 장비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터빈, 변압기, 특수 냉각 시스템, 고전압 설비 등의 납기는 수년 단위로 늘어났고, 대형 변압기는 4~5년, 산업용 가스터빈은 6~7년이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설령 프리미엄을 지불하더라도 생산 공장이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는 없고, 설치·시공을 담당하는 제조·건설 인력도 이미 과부하 상태다. AI 기업들은 모델 출시 속도에 맞춰 움직이길 원하지만, 건설과 유틸리티 산업은 전혀 다른 시간표로 운영된다.
이 같은 물리적 제약은 모든 하이퍼스케일러에 적용되지만, 오라클은 AI 인프라 시장에 비교적 늦게 진입했고, 설비투자의 상당 부분을 단일 고객인 오픈AI에 묶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더 크다. 쿠미는 “대규모 투자 전환기마다 이런 현상은 반복된다”며 “결국 제조 역량은 따라잡지만, 즉각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현실이 개입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금융적 한계도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주가 하락보다 더 중요한 신호는 채권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라클의 회사채 금리는 급등했고, 한때 투자등급이던 일부 채권은 투기등급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신용 위험 지표는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기술 사이클을 비교적 냉정하게 바라보는 채권 투자자들이 AI 인프라 투자 리스크를 재평가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과거 수십 년간 기술기업들은 이익으로 성장을 감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라클을 포함해 많은 기업이 대규모 확장을 위해 신용시장을 활용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분석에 따르면 구글,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5대 AI 하이퍼스케일러는 올해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총 121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는 과거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인프라 투자가 부채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오라클은 9월 180억 달러 규모 회사채 발행 등 가장 큰 거래를 성사시킨 기업 중 하나다. 오라클의 총 부채는 약 1000억 달러에 달한다. 나머지 4개사는 더 강한 현금 창출력과 높은 신용등급(AA/A)을 보유하고 있지만, 오라클은 BBB 등급대에 머물러 있다. AI 투자에 부채를 활용하는 기업은 오라클만이 아니지만, 규모와 현금흐름, 신용등급을 고려하면 레버리지가 가장 큰 편이다.
채권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초과 수익이 아니라 원금과 이자의 확실한 회수다. 신뢰가 조금만 흔들려도 금리는 즉각 상승한다. 클라우드비스(CloudBees)의 CEO이자 닷컴버블 시절 기술업계 임원이었던 아누지 카푸르는 액시오스에 “1998년과 비슷한 순간처럼 느껴진다”며 “엄청난 가능성과 동시에, 수익이 얼마나 빨리 나타날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쿠미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막대한 자본을 쥔 기술 인력과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문화, 그리고 장비를 만들고 시설을 짓기 위해 수년이 필요한 제조·건설 산업 사이에 명확한 괴리가 존재한다.”
/ 글 Eva Roytburg & 편집 김타영 기자 young@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