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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인질극? ‘설계자’ 트럼프에겐 매뉴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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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다보스=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다보스=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인질극을 보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트럼프는 협상 방식의 사용 설명서를 이미 출간해 둔 인물이기 때문이다. 1987년 기자 토니 슈워츠(Tony Schwartz)가 집필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 그렇다. 슈워츠는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이 책을 두고 “인생 최대의 후회”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에는 뉴욕의 살벌한 부동산 시장에서 정상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트럼프가 썼던 전술과, 그 과정에서 체득한 협상 방식이 상세히 담겨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국제관계에도 ‘딜메이커’ 페르소나를 그대로 이식하려 해 왔다.

이번 그린란드 국면은 트럼프가 위기를 만들고, 다시 해결하는 데 단 1주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1월 어느 한 주 동안, 그는 자신의 책에 적어둔 전략을 거의 문장 단위로 따라 움직였다. 트럼프식 협상술은 다섯 가지 규칙으로 요약된다. 

규칙 1: 목표를 크게 잡아라

트럼프는 먼저 위협의 바닥을 깔았다. 1월 14일(현지 시간) 그는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미국은 국가 안보 목적상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며 “그보다 못한 건 받아들일 수 없다(Anything less than that is unacceptable)”고 썼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협상 스타일은 아주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나는 목표를 아주 높게 잡고,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계속 밀어붙인다.”

며칠 사이 유럽 국가들이 그린란드 방어를 명분으로 병력을 보내면서 시장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럽 곳곳에서 “Hands off Greenland(그린란드에서 손 떼라)” 시위가 벌어진 직후, 트럼프가 압박 강도를 높였다. 그는 8개 NATO 동맹국에 다음 달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고, 6월에는 2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린란드를 완전·전면적으로 구매하는 합의(Complete and Total purchase of Greenland)가 이뤄질 때까지”라는 조건도 붙였다.

타이밍은 절묘했다. 이튿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로 미국 시장은 휴장이고, 세계경제포럼이 예정돼 있었다. 투자자와 각국 정부는 ‘긴 주말’ 동안 위협을 곱씹고 불안해할 시간을 충분히 갖게 됐다.

시장이 다시 열린 20일(현지 시간) 매도세는 거셌다. 약 1조 3000억 달러의 가치가 증발했고, 나스닥은 2.4% 하락하며 수개월 만의 최악의 하루를 기록했다. 지정학적 악재가 반복돼도 버텨오던 주식시장의 ‘내성’이 깨진 셈이다. 이때가 되면 보통 “화면에 빨간색이 뜨는 걸 싫어하는 사업가 트럼프가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분석이 나오고, 그래서 ‘TACO 트레이드(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결국 겁먹고 물러선다)’라는 말도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번 폭락 자체가, 오히려 전략의 일부였을 수 있다.

규칙 2: BATNA를 흔들어라

트럼프는 《거래의 기술》에서 “가끔은 조금 미친 듯이 굴어야 이득”이라고 쓴다. 과거 사기꾼 같은 은행가를 살인 혐의로 몰겠다고 위협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다. NATO 창설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그린란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며 동맹을 깨뜨릴 수도 있다’는 가정이 시장과 정책 당국에서 진지하게 검토되는 순간을 트럼프는 만들어냈다. 그 자체가 지렛대였다. 화요일 “어디까지 갈 거냐”는 질문에 그는 짧게만 답했다. “보게 될 거야(You’ll find out).”

경영대학원에서는 이를 BATNA 조작이라고 부른다.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는 ‘협상이 결렬됐을 때의 최선 대안’이다. 트럼프는 ‘합의가 없을 때의 대안’을 더 비싸고 더 불안정해 보이게 만들어, 상대가 느끼는 하방 리스크를 인위적으로 키운다. 그러면 미국이 ‘차악 중 차악을 피하는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이게 된다.

설계상 상대를 윽박지르는 방식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가 관세를 “영토 주권을 상대로 한 지렛대”로 쓰고 있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협박보다 존중을 택한다(We prefer respect to bullies)”고 직격했다.

규칙 3: 지렛대를 써라

트럼프는 책에서 “딜을 잘하려면 힘으로 협상해야 한다. 그리고 지렛대는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썼다. 지렛대란 “상대가 원하는 것, 최고는 ‘없으면 못 사는 것’을 쥐는 것”이라고도 했다. 유럽 국가들로서는 NATO의 보호와 미국의 호의를 떼어놓고 살기 어렵다.

수요일, 트럼프와 시장 모두에게 ‘반전’이 찾아왔다. 그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 연설에서 그린란드를 얻기 위해 무력을 쓰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또 한 번 변동성 장세를 각오하던 투자자들이 그 메시지를 똑똑히 듣게끔, 반복해서 못 박았다.

“이제 다들 ‘아, 다행이다’라고 하잖아. 아마 내가 한 말 중 가장 큰 말이었을 거야. 사람들은 내가 무력을 쓸 거라 생각했거든. 난 무력을 쓸 필요가 없어. 쓰고 싶지도 않아. 쓰지 않을 거야.”

규칙 4: 상대가 ‘중간’을 찾게 둬라

몇 시간 뒤 트럼프는 NATO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Mark Rutte)와 만난 뒤, 북극 안보를 둘러싼 “미래 합의의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시장은 급등했고, 수개월 만의 ‘최고의 하루’ 중 하나를 기록했다.

상대가 중간지대를 찾도록 유도하는 이 논리는 책 여러 장에서 반복된다. 트럼프는 더 나쁜 결말(적대적 인수, 더 큰 충돌)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낸 다음, 상대가 되사기, 합작, 특별 접근권 같은 타협안을 스스로 내놓게 한다. 트럼프는 이를 받아들이고 ‘완승’으로 포장한다. 그는 폭스 비즈니스(Fox Business)의 마리아 바르티로모(Maria Botoromo)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그린란드에 “끝이 없는(total access, with no end)” “전면 접근”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합의가 현상 유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은 1951년 덴마크와 체결한 방위협정에 따라 이미 그린란드에서 광범위한 군사적 권한을 누린다. 이 조약은 미국이 기지를 운영하고, 병력을 주둔시키고,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군사시설을 건설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권한은 이미 NATO와 연동된 조기경보 체계를 만드는 데 활용돼 왔다. 러시아와 북미 사이 최단 경로가 북극 상공을 지나기 때문에, 그린란드의 위치는 미사일 조기 탐지에서 핵심 거점이 된다.

규칙 5: “나는 사람들의 환상에 호소한다”

트럼프가 말하는 마지막 열쇠는 ‘허세’다. “나는 사람들의 환상에 호소한다(I play to people’s fantasies).” 미국이 그린란드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건 오래된 ‘환상’이기도 하다.

북극 해빙이 진행되며 새로운 항로가 열리고, 러시아와 중국의 관심이 커지면서 다극 체제의 대리 경쟁 무대로 북극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중국 컨테이너선이 북극 항로를 통해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한 첫 사례가 나왔고, 기록적으로 20일 만에 도착했다. 러시아는 한편으로 군사기지 네트워크와 냉전 시대 장비를 그 지역에 유지하고 있다.

이런 ‘판’이 커지면, 합의의 실질이 힘의 균형을 크게 바꾸지 않더라도 트럼프는 “그린란드에서 뭔가를 해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도 썼다. “그래서 약간의 과장은 결코 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장관이길 원한다.”

/ 글 Eva Roytburg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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