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배신]①일단 ‘시간벌기’ 나선 정부…지원대책은 난망

155

정부가 남모씨(61·일명 ‘건축왕’)의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과 얽힌 피해주택의 경매 절차를 중단키로 하면서 일단 ‘시간벌기’에 나섰다. 전세금을 떼인 상황에서 집까지 비워줘야 할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정부·여당은 후속조치로 피해주택에 대한 우선 매수권 부여, 저리 대출 확대 등을 추진키로 했지만, 금융권에선 현실적으로 피해자들의 보증금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2금융권은 시간벌기에 따른 리스크 확대를 감내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시간벌기 나선 정부…전세금 회복은 ‘난망’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금융기관들은 이날부터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주택으로 확인된 주택의 경매절차를 중단한다. 이는 전날 전세사기 피해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에서 관련 피해주택으로 확인된 2479세대 중 은행권·상호금융권이 보유한 대출분에 대해 즉시 경매를 유예토록 협조를 구한 데 따른 조치다.

정부는 아울러 민간 부실채권(NPL) 관리회사 등 제3자에 매각된 건에 대해서도 최대한 경매절차 진행을 유예토록 협조를 구한단 계획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 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엔 추가 대책을 강구키로 했다.

이번 조치로 피해 임차인들은 한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경매 절차가 진행돼 낙찰되면 피해 임차인들은 전세금을 떼인 데 이어 거주하던 집을 비워줘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상황에 놓여있었던 까닭이다. 앞서 피해자 단체들도 경매 절차를 우선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경매 유예는 한시적 조치인 만큼 미봉책일 수 밖에 없단 평가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당사자 신청에 의해 경매 신청 채권자가 경매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 경우, 원칙적으론 2회까지 연기가 가능하며 연기기간은 회당 2개월 이내다. 수 개월 후엔 다시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될 공산이 크단 의미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야권에선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피해주택을 매입, 임대주택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선 현실적이지 않단 지적이 많다. 임대인(전세사기꾼)이 담보대출을 가능한 최대 금액까지 받은 상황인 만큼,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아닌 선순위 채권자인 금융기관만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어서다.

이외에 피해자단체와 야당은 LH, 캠코 등이 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해 피해자들에게 보증금 일부를 되돌려 주고, 이후 직접 경매에 참여해 채권을 회수하거나 주택을 낙찰받는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방식을 거론하고 있으나 정부·여당은 신중한 모습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방식에 대해 “부실채권에 대한 캠코의 채권인수는 50%, 70%씩 손실을 확정하는 식인데 세입자들이 손실 확정을 원할지 알 수 없다”며 “전액 반환 요구는 사기범죄 피해금액을 세금으로 떠안으라는 얘기인데, 과연 사회적 협의가 돼 있느냐”라고 전했다.

이에 정부·여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피해주택 경매시 임차인 우선 매수권 부여 ▲저리 대출(경락잔금대출 등) 공급 ▲조직적 전세사기 범죄수익 전액 몰수 보전 등의 대책을 내놨으나 현실적 대안이 되긴 어렵단 평가다. 보증금을 떼인 임차인으로선 피해주택을 끌어안는 방안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피해 임차인 중 다수는 사회초년생인 2030세대이기도 하다.

금융권에선 현실적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 회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피해자 지원을 위해 우선 매수권 부여, 저리 경락잔금대출 지원 등은 진행될 수 있겠으나, 관건은 사기로 사라진 전세금을 누가 메우느냐 하는 것”이라면서 “결국은 공공이 나서야 할 수 밖에 없는데,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시간벌기에 속 타는 2금융권

아시아경제가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임대인 102명에 설정된 근저당 중 제2금융권의 비중은 85.2%(87곳)에 달했다. 구체적으론 새마을금고가 30.3%(31곳), 신용협동조합 25.5%(26곳), 농업협동조합·수산업협동조합 각 13.7%(각 14곳), 저축은행·산림조합 각 1%(각 1곳)였다. 이외 1금융권(시중은행)은 7.8%(8곳)에 그쳤고, 개인·법인은 2.9%(3곳)에 머물렀다.

특히 새마을금고, 신협, 농협, 수협 등은 각 금고나 조합별로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시스템이라 해당 금고나 조합이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근저당이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준 대신에 갖는 담보의 개념이다. 정상적으로 채권이 회수되지 않고 연체가 지속돼 채무불이행이 이어질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금융회사는 경매 절차를 진행한다. 하지만 전 금융권이 경매 유예 조치에 동참하게 되면 이 기간 동안 해당 금고나 조합이 채권 회수를 못하면서 부담이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금고 및 조합들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근저당권을 가진 일부 상호금융회사의 공시(지난해말 기준)를 살펴본 결과 고정이하여신비율이 7%대를 넘는 곳도 다수 있었고 심지어 15.57%에 달하는 곳도 존재했다. 건전성 지표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은행이 보유한 총여신 중 부실채권의 비중이다. 통상적으로 이 비율이 5% 이하일 경우 양호하다고 평가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전체 상호금융권의 지난해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84% 수준이다. 상호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어떤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동안 시간을 버는 개념이라 금융권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각 조합이 그 기간 동안은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1
0
+1
0
+1
0
+1
0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