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말말말’…포워드 가이던스[송승섭의 금융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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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습니다. 지난 2월과 4월에 이어 세 차례 연속 동결입니다. 이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언론과 만나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이 절대로 (기준금리 인상을) 못 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말아 달라”고 강조했죠. 시장에서는 금리인상 사이클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추후 상황을 보고 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수도 있다는 나름의 경고였습니다. 이날 있었던 이 총재의 발언은 화제를 모으면서 여러 언론사가 일문일답으로 정리해 공개했습니다.

이렇듯 중앙은행 총재의 말은 늘 세간의 관심을 받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중앙은행 총재의 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죠. 물론 통화정책 수장의 발언이니 당연히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중앙은행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앙은행의 금리결정권자들은 경제에 끼치는 파급력이 막대해서 극도로 말을 아낍니다. 즉 중앙은행 총재에게서 현재 경제국면에 대한 상황과 진단, 전망, 해결책 등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단 뜻입니다. 그러니 기자들이 중앙은행 총재와의 질의응답에 집중하는 거죠.

“모호함이 미덕”…중앙은행이 ‘입꾹닫’ 해왔던 이유
“난 현재 위치에서 금리 예측을 할 수 없다고 배웠다. 이 직책을 맡은 사람이 겪는 어려움이다.” 1965년 12월,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당시 연준 의장)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성명과 보고서에는 현재의 행동이나 무위에 대한 부연설명, 판단, 설명이 없다. 미래 행동에 대한 팁과 예측, 위협, 약속도 없다. 우리의 지식을 고려하면 그런 것들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1966년 10월, 조지 와일더 미첼 (당시 연준 총재)

중앙은행 사람들의 침묵이 얼마나 심한지는 위 발언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경제상황에 대해서 중앙은행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까지 느껴집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지 내릴지에 대한 어떠한 힌트도 제공하지 않겠다네요. 이 시절 미국 중앙은행의 관료들은 본인이 말실수할까 봐 토론이나 강연 같은 외부활동까지 극도로 꺼렸다고 합니다.


“모호하게 얘기하기는 중앙은행원이 배워야 할 미덕이다”

이 총재도 말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15일 미국 워싱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이 총재가 직접 한 말이죠. 당시 이 총재는 “아마도 여러분은 제가 전보다 직설적이지 않고 다소 모호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을 알게 되실 것”이라며 “이는 중앙은행원으로서 배워야 하는 미덕이기도 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발언은 바로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죠.

‘말하니 좋네’…입 열기 시작한 중앙은행 수장들

포워드 가이던스란 ‘사전안내’, ‘향후지침’이라는 뜻입니다. 중앙은행이 미래의 금리 방향을 외부에 간접·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거죠. 가령 언제까지 금리를 어느 정도로 내리겠다거나,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금리를 특정 수준까지 조정하겠다거나, 연말 안에 금리를 올릴 계획이 없다고 미리 말해주는 거죠. 그런데 이상하네요. 아까 말했듯이 침묵은 중앙은행 총재들의 기본자세와도 같았는데, 어쩌다 포워드 가이던스가 생긴 걸까요?

침묵을 깬 첫 중앙은행장은 미국 연준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입니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의장을 역임해 미국의 최장수 재임기록을 보유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취임 초만 해도 금리에 대한 얘기를 꺼리던 그린스펀은 1990년대가 되자 조금씩 금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미 연준이 2021년 5월 작성한 논문에도 ‘1990년대 말 연준은 때때로 단기적인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공했다’고 나와 있죠. 이후 세계금융 위기가 시작되면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2011년 정식 도입한 이후 여러 나라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포워드 가이던스가 각광받았던 건 재정정책의 속도와 효과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금리를 내리면 끝이지, 몇 마디 말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나?’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중앙은행이 연초부터 ‘올해는 매번 기준금리를 계속 내린다’는 발표를 했다고 가정합시다. 상업은행들은 발표 덕분에 연말 금리가 얼마나 떨어질지 예측할 수 있고, 고객들에게 빠르게 많은 돈을 빌려주려 할 겁니다. 여러 경제주체는 더 빨리 돈을 빌릴 수 있고, 중앙은행은 경기진작과 물가상승이라는 목표를 신속하게 달성할 수 있는 거죠.

특히 이미 기준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포워드 가이던스가 채택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기준금리가 0%대에 가까우면서도 물가상승률이 낮은 선진국들에서요. 기준금리는 이미 너무 낮아서 뚜렷한 방법이 없었는데, 포워드 가이던스가 짠하고 등장한 겁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대표적입니다. ECB는 2013년 7월 처음으로 ‘장기간 기준금리가 낮은 수준일 것으로 예상한다’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내놨습니다. 오랫동안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겠다는 발표로 물가를 끌어올리려고 한 셈이죠.

그렇다면 한국에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가장 처음 도입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눈치챘겠지만 이창용 총재입니다. 2022년 5월 취임한 이 총재는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당분간 물가에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는 금융통화위원 6명이 제시한 최종금리 수준을 공개했고요. 이 총재는 “금통위의 생각을 시장과 보다 투명하게 소통하기 위해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죠.

내뱉은 말 못 주워 담자…포워드 가이던스 지위 ‘흔들’

물론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습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부정적 여파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금만 내리겠다고 했는데, 경제를 잘못 예측해서 실제로는 대폭 내렸다고 생각해봅시다.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에 맞춰 준비해왔던 경제주체들은 날벼락이겠죠. 앞으로 중앙은행의 말에 대한 신뢰 역시 떨어질 겁니다. 좋기만 할 것 같은 포워드 가이던스가 장기적으로는 나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재 미국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도 포워드 가이던스 때문에 곤욕을 치른 바 있습니다. 파월은 2022년 6월 회의를 앞두고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은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금리를 급격히 올리지 않겠다는 포워드 가이던스였죠. 하지만 짧은 기간 미국의 경제지표가 급속도로 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죠. 스스로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무너뜨린 겁니다.

이 총재 역시 포워드 가이던스로 도마 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가 외환시장의 혼란을 야기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죠. 당시 유 의원은 “이 총재가 앞으로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는데 통화정책 책임자로서 향후 포인트까지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이후 상황이 변하면서 이에 대한 이 총재의 입장과 언급이 바뀌었다. 이전 발언들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코로나19로 포워드 가이던스가 종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경제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중앙은행들이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렸거든요. ECB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도 지난해 “어떤 종류의 포워드 가이던스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훨씬 더 유연하다”고 말했습니다. 로이터는 이 발언에 대해 “ECB가 (포워드 가이던스의) 관에 최후의 못을 박았다”고 평가했죠.

이 총재는 자신의 포워드 가이던스를 둘러싼 비판에 대해 “사람들은 지난 베이스라인 시나리오를 조건부로 받아들이기보다 ‘서약(commitment)’이나 ‘약속(promise)’으로 여기는 것 같다”면서 “미래 금리 경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오랜 방식에서 벗어나기에는 현실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여러 가지 애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속도로 이러한 관행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변화는 어려운 것임이 틀림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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