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독주]②킹달러에 힘 못쓰는 한·중·일…中기축통화도 먼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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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 가치가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중국·일본 통화는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미국 경기 침체 우려와 연방준비제도(Fed)의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기대로 달러는 약세, 아시아 통화는 강세를 보였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강달러 속에 중국 경제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 중심의 ‘탈(脫)달러화’ 움직임도 힘이 빠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 연고점…강달러에 속수무책

27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최근 달러 대비 원화·위안화·엔화 가치는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1349.5원까지 오르며 지난달 17일 기록한 연고점(1343.0원)을 갈아치웠고, 엔·달러 환율은 연중 최저인 149엔을 넘으면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에 바짝 다가섰다. 위안·달러 환율도 7.31위안으로 ‘포치(달러당 위안화 환율 7위안 돌파)’ 상태를 4개월 넘게 이어가는 중이다.

달러가 한·중·일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는 것은 상반된 경제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650억달러로 전년 동월(717억달러) 대비 크게 줄었다. 통상 미국과 교역이 많은 중국, 일본, 한국의 통화가치가 달러 대비 약세를 나타내면 미국 무역수지가 크게 악화되지만, 최근에는 강달러 국면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가 비슷한 상황이다.

이는 미국 경제가 강달러를 감내하면서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 통화정책을 더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내수 부진에 따른 불황형 흑자이고,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대미 교역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비율이 유의미하게 하락했다”며 “중국, 독일, 일본 등은 대미 무역흑자가 유사하거나 줄었기 때문에 미국이 주변국에 (통화가치 하락을) 경고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최근 물가 상승률이 3%대로 안정됐고 경제성장률도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높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때문에 달러가 원화 등에 비해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며 “내년에도 미국 경제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은 만큼 강달러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부진한 한·중·일 경제…강달러 못 막아

반면 한·중·일은 부진한 경기 탓에 긴축을 이어가기 힘든 입장이다. 한국은행은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황에서도 지난달 24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까지 여섯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금통위원들은 향후 물가나 Fed의 통화정책 방향에 따라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선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까지 하락한 상황에서 실제 금리인상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엔화 가치는 미·일 금리차 확대 영향으로 연중 최저치로 하락했으나 일본은행은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일각에선 일본이 과도한 엔저에 따른 부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조만간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폐기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63%로 선진국 최고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금리인상을 하더라도 국채 이자 부담 때문에 그 폭은 제한될 전망이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앞으로 사회보장비를 늘리고, 국방비 역시 크게 증액할 예정인데, 여기에 필요한 돈은 국채 발행을 통해 소화할 가능성이 크다. 금리를 1%포인트만 올려도 일본 정부에는 막대한 이자 부담이 가해진다. 한은도 지난달 13일 낸 보고서에서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해 “상당 기간 완화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위안화도 상황이 비슷하다. 중국 당국은 경기 회복세를 끌어올리기 위해 각종 부양책과 함께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는 여전히 살아나지 않고 있다. 미국과 금리차가 벌어지고, 경기 부진까지 겹치면서 위안화는 하방 압력이 더욱 커지는 중이다. 인민은행이 성명까지 내며 위안화 약세를 방어하겠다는 뜻을 시장에 여러 차례 전달했음에도 아직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中 부진에 ‘탈달러화’ 움직임도 힘 빠져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하는 ‘탈달러화’ 논란도 잦아드는 분위기다. 중국은 지난해 2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통화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제외하자 ‘달러를 무기화한다’고 비판하며 탈달러화에 힘을 실어 왔다. 실제 브라질, 아르헨티나와는 무역에서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를 하기로 하는 등 위안화 국제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에는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 국가가 새로 가입하면서 탈달러화 논의에 불을 붙였다. 사우디와 이란은 산유국이기 때문에 무게감이 다르다. 상당수 산유국은 자국 통화를 달러 가치와 연동하는 달러 페그제를 선택하고 있고, 이는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만약 산유국들이 위안화 사용을 늘린다면 달러도 힘이 빠질 수 있다. 네덜란드 ING 은행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달러가 위안화를 포함해 다양한 통화에 밀려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중국 경제가 최근 몇 달 사이 크게 부진하면서 탈달러화 논의도 의미가 약해졌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중국은 미국처럼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해야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부동산 등 내수시장 불안을 노출한 중국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위안화의 글로벌 결제 비중도 아직 3% 남짓으로, 달러(42.02%)와 존재감 차이가 크다.

물론 앞으로 미국 경제가 고유가와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 등으로 휘청일 수 있으나, 당장 위안화가 달러의 지위를 위협할 만큼 성장한다고 보기도 힘든 상황이다. 강 교수는 “중국이 무역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드는데 유리한 측면은 있으나 국제사회의 신뢰 문제가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며 “금융시장과 규제 등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비해 뒤떨어져 단기간에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성장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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