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2부 D-2] 다시 보는 최동훈 월드, 넘볼 수 없는 흥미진진한 세계
주인공이 한두명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떼로 등장하는 주인공, 그들이 속고 속이는 과정은 짜릿한 쾌감과 반전의 미학을 선사한다. 매력적인 캐릭터로 관객에 오랜 잔상을 남기는 것은 덤이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독보적 스토리텔러인 최동훈 감독이 일련의 케이퍼 무비를 통해 영화계에 새긴 결정적 장면이다.
1월10일 개봉하는 ‘외계+인’ 2부(제작 케이퍼필름)는 최동훈 감독의 장기인 재기 발랄한 캐릭터와 환상의 팀플레이를 엿볼 수 있다. ‘외계+인’ 1부가 암시한 반전과 비밀이 드러나며 궁금증을 해소하고 인간, 도사, 신선, 로봇이 힘을 합쳐 외계인 죄수들을 저지하기 위해 팀워크를 발휘한다.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 우연과 인연 등 메시지도 돋보인다.
최동훈 감독은 2000년 임상수 감독의 ‘눈물’의 조감독으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2004년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이 흥행하고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범죄의 재구성’ 이후 최동훈 감독이 2006년 연출한 ‘타짜’는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작’이다. 강동원 주연의 ‘전우치’로 매력적인 도사 캐릭터를 만들었고, ‘도둑들’과 ‘암살’로 ‘쌍천만 감독’에 등극했다. 한국영화 사상 쌍천만 흥행을 일군 감독은 최동훈 외에 봉준호, 김용화, 윤제균 감독까지 단 4명 뿐이다.
최동훈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케이퍼 무비의 선구자로도 일컬어진다. ‘범죄의 재구성’ 이후 케이퍼 무비들의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한국형 케이퍼 무비의 정수와도 같은 ‘도둑들’을 선보였다. 최 감독이 아내이자 제작자인 안수현 대표와 설립한 제작사의 이름은 ‘케이퍼필름’으로, 이들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외계+인’ 2부 개봉을 앞두고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타짜’부터 ‘외계+인’ 시리즈의 원조와도 같은 ‘전우치’, 케이퍼 무비의 매력을 총집합한 ‘도둑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며 애국심을 일깨운 ‘암살’ 등이다. 다시 봐도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최동훈 감독의 작품을 살폈다.
● 범죄 오락영화의 신세계…’타짜’
‘타짜’는 허영만 작가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전문 도박사를 일컫는 은어이기도 한 ‘타짜’는 도박꾼들의 현란한 기술과 욕망, 짜릿한 승부의 세계를 그렸다. 청소년 관람불가임에도 불구하고 569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타짜로 성장하는 고니를 연기한 조승우,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정 마담 역의 김혜수, 전설적인 도박꾼 평경장 역의 백윤식은 물론 유해진(고광렬 역), 김윤석(아귀 역), 김응수(곽철용 역), 권태원(호구 역)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영화에서는 “묻고 더블로 가!”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이 바닥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원수도 없다”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등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숱한 명대사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최동훈 감독은 이 같은 명대사를 현란하고 화려한 편집으로 버무려 타짜들의 도박판이 만들어내는 긴박감과 긴장감으로 관객에게 장르 영화만의 쾌감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인생을 건 한 판 승부 안에 인물들의 희로애락까지 담아낸 명작으로 꼽힌다.
● 한국형 액션 히어로…’전우치’
2009년 개봉한 ‘전우치’는 조선시대 악동 도사 전우치(강동원)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누명을 쓰고 그림족자에 갇힌 조선시대 도사 전우치가 500년 후인 현대에 봉인에서 풀려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에 맞서 싸우는 내용으로, 고전소설 ‘전우치전’에서 캐릭터 모티브를 따왔다.
최동훈 감독은 ‘전우치’를 통해 이전에는 없던 ‘한국형 액션 히어로’를 만들었다. 한국 고전 속 영웅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풍자나 해학이 강조되고, 도술로 요괴들과 대결하고 세상을 구하는 설정은 기존 할리우드 히어로와 차별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강동원이 도술에 능하지만 풍류와 여자를 좋아하는 젊은 도사 전우치 역을 맡아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전우치는 임금까지 농락하는 악동과도 같은 인물이다. 최동훈 감독은 특유의 넉살과 유머, 활기차고 유쾌한 매력을 지닌 전우치가 초인적 능력을 발휘해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통해 갓을 쓴 토종 히어로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증명했다. 덕분에 ‘전우치’는 개봉 당시 ‘아바타’와의 경쟁 속에서도 60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 한국형 케이퍼 무비의 정수…’도둑들’
최동훈 감독의 특유의 ‘말맛’과 ‘감각’이 돋보였던 ‘도둑들'(2012년)은 한국영화 중 여섯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다.
최 감독은 마카오박(김유석) 팹시(김혜수) 뽀빠이(이정재) 예니콜(전지현) 첸(임달화) 씹던껌(김해숙) 잠파노(김수현) 등 개성 넘치는 열 명의 도둑들이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인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멜로를 화려한 액션으로 버무렸다.
흥미로운 설정과 숨 돌릴 틈 없는 전개, 개성 강한 캐릭터까지 ‘도둑들’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장기가 그야말로 제대로 빛을 발휘했다. 한국과 중국의 도둑 10인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얽히고 설킨 드라마와 배우들의 연기, 화려한 볼거리, 와이어 액션 등 지루할 틈 없이 영화에 빠져들게 하며 오락영화의 정수를 보여줬다.
‘기술자들’ ‘원라인’ ‘꾼’ ‘도굴’ ‘파이프라인’ 등 이후 다양한 케이퍼 무비들의 등장에는 ‘도둑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 한국영화 전성기 이끈 ‘쌍천만’ 신화…’암살’
‘암살'(2015년)은 최동훈 감독의 두 번째 1000만 돌파 작품이다.
영화는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 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들이 벌이는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있는 운명을 그렸다.
최동훈 감독은 이름 없는 독립군들의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기록을 토대로 가상의 인물들의 펼치는 ‘암살 사건’을 다뤘다.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의 모습을 섬세하면서도 웅장하게 담아낸 것은 물론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조진웅, 조승우, 김해숙 등 화려한 배우들이 최동훈 감독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연출과 만나 ‘살아있는 캐릭터’로 탄생됐다.
무엇보다 ‘암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영화들은 흥행이 어렵다는 징크스를 깼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 감독은 무겁고 진지한 소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독립운동의 정서를 극적으로 녹여냈다. 당시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의 모티브가 된 남자현, 조승우가 연기한 김원봉 등 실제 독립운동가들이 영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