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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청춘의 죽음은 안돼”…우리가 기억해야 할 안타깝게 순직한 군인 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사진=대한민국 국방부

입대 9일 밖에 되지 않은 대한민국 청년이 규정을 위반한 중대장의 살인적인 ‘얼차려’를 받던 중 쓰러져 끝내 숨졌다.

2주 전만 해도 사회 속에서 가족·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국민’의 한 사람이 부당한 지시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은 국민들의 분노를 들끓게 하고 있다.

의무복무를 다하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입대한 국민이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이 땅에서 부당한 명령 때문에 죽어나가는 군인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를 잊지 않아야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과거 우리를 떠나간 순직 군인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고 시민들은 입을 모은다. 그래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순직 군인을 모았으니, 잊지 말도록 하자.

1. 故 허원근 일병

SBS '그것이 알고싶다'

1984년 4월 2일, 허원근 일병은 강원도 화천군 소재 육군 제7보병사단 GOP 철책근무지 전방소대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변사체로 발견됐다.

하지만 7사단 헌병대는 허 일병이 처음에는 M16 소총을 오른쪽 가슴, 두번째는 왼쪽 가슴을 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에는 오른쪽 눈썹에 밀착해 사격, ‘두개골 파열로 인한 사망’이라는 결론까지 내렸다.

유족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2002년 9월 제1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는 술에 취한 상관이 우발적으로 총을 쏴 허 일병을 살해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족과 국방부는 법적 다툼을 벌였고,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허 일병의 극단 선택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2017년 5월 16일 국방부는 허 일병의 사망 구분을 최종적으로 순직으로 인정했다.

2. 故 정선엽 병장

MBC

지난해 개봉해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봄’에서도 잠깐 조명됐던 인물이다.

정 병장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 초병으로 근무하던 중 국방부에 진입하려던 반란군에게 끝까지 저항하다 총격을 당해 전사했다.

12.12 군사반란 과정에서 국방부를 지키다 전사한 유일한 희생자가 바로 정 병장이었다.

영화 '서울의봄'

국방부 벙커를 점령하기 위해 달려온 공수부대원에 끝까지 맞서던 그는 목에서 머리를 관통한 1발, 가슴 부위에 3발의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2022년 4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고인의 죽음을 바로잡았다. 기존의 ‘교육훈련 중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같은 해 12월 7일 유족에게 전사확인서를 전달해 국가유공자임을 인정했다.

3. 故 최민서 일병

SBS

故 최민서 일병은 코로나 19 바이러스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2년 입대했다.

스무살의 나이에 입대한 그는 육군 제36보병사단 제107보병여단에서 복무하게 됐는데, 2023년 1월 혹한기 훈련을 앞두고 예행연습을 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훈련 도중 텐트 안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당시 부대원들은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지만, 돌아오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군사경찰과 민간경찰은 최 일병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각종 분석을 했지만 끝내 ‘해부학적 불명’으로 종결됐다. 고인의 사망 원인은 현대 해부학으로는 밝힐 수 없는 상황이다.

4. 故 채수근 상병

Instagram 'rokmchq'

故 채수근 상병은 지난해 여름, 한반도에 폭우 사태가 났던 때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7월 19일 오전, 해병대원들은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의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을 펼쳤다. 이들은 내성천 일대에서 도보로 이동하며 탐침봉 등을 이용해 인간띠 작전으로 실종자를 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채 상병과 다른 해병대원 2명이 급류에 휩쓸렸다. 다른 대원 2명은 배영으로 스스로 헤엄쳐 빠져나왔지만 채 상병은 20미터가량 급류에 떠내려가다가 사라졌다.

수색 당일 내성천은 폭우로 물이 불어난 탓에 유속이 굉장히 빨랐다. 그는 사고 약 14시간 만인 밤 11시 8분께 내성천 고평교 우측 하류 400m, 수심 1m 지점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7월 20일 오전 12시 45분께 공식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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