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발가락으로 리듬 탔다는 음악 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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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트로트 자작곡인 ‘그때 그 사람’을 들고 참가, 비록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큰 인기를 끈 가수 심수봉.

이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미워요’, ‘비나리’ 등 무수한 히트곡을 만들고 부른 싱어송라이터이자 국민가수이기도 한데, 대중에게는 트로트 음악으로 익숙한 그녀이지만 사실 재즈를 전공했다는 사실!

심수봉은 재즈를 주 전공했는데, 정식 가수로 데뷔하기 전 로큰롤 밴드 ‘논스톱’의 드러머로 활동하며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한 적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공연과 방송을 통해 멋진 드럼 실력을 뽐낸 바 있다.

피아노부터 드럼, 남다른 노래 실력에 자작곡 실력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천상 예술가인 심수봉. 증조부 때부터 4대째 내려오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이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녀의 증조부는 피리 명인인 심팔로이며, 조부는 판소리 중고제 대가인 심정순. 그리고 그의 부친인 심재덕은 민요 수집가였고, 큰아버지 심상건은 가야금 명인, 작은아버지 심사건은 판소리 인간문화재 소리꾼이었다.

나는 100일도 되기 전 발가락으로
리듬을 탄 음악 신동이었다.

덕분에 ‘민속악의 바흐 집안’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던 심수봉.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녀의 조카 손주(언니의 손자) 역시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크로스오버 그룹 ‘포르테 디 콰트로’의 베이스이자 트로트 가수로 활동 중인 손태진이다.

남다른 예술가 집안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지만 일찌감치 아버지를 여의고 삼촌의 손에 자라야 했던 그녀. 사랑은커녕 학대를 받으며 자랐는데 중학생 때는 50만 명 당 1명 꼴로 발생한다는 희귀병인 ‘뇌신경 인플레’를 얻었다고 한다.

해당 질환은 라디오나 사람 목소리와 같은 미세한 소리에도 뇌에 치명적 자극을 미칠 수 있는 질환으로, 심수봉은 소리를 듣지 말라는 진단을 받고 인천에 위치한 대무의도, 소무의도로 요양을 떠나야 했었다고 한다.

2년여의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한 그녀. 타고난 음악적 재능으로 피아노 연주 아르바이트와 밴드 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 대학가요제까지 출전했으며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가수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봐도 대학가요제 시절 심수봉의 모습은 아마추어라는 사실이 들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인데, 당시 그녀가 대상-금상은 커녕 입상도 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 프로다워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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