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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남길의 연기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자식이 화려한 것에 취해 막연한 꿈을 꾼다”며 부모님은 배우의 길을 강하게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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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인정을 받고자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합격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다 제적당했다. 이어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에 입학했지만, 자신만의 연기를 찾아 나서고자 자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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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극단 ‘그리고’에서 무대 정리와 공연장 관리부터 시작해 작은 배역을 하나씩 맡으며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이 시기 그는 철판요리 전문점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라 그릇이 끊임없이 쌓였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힘든 업무 강도로 인해 2-3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하지만 그는 6개월간 성실하게 일했고, 이를 눈여겨본 사장이 “요리를 배워보지 않겠냐”며 주방장 제안을 했다. 이후 주방 일을 배우며 요리 실력을 쌓았고, 강변 테크노마트 내 음식점에서 보조 셰프로도 일했다.
“연극으로는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아 일을 꾸준히 병행했다”며 “내 꿈을 향해 가는 게 사치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집안의 장남으로서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고 심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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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은 극단 선배의 강제 권유였다. 처음에는 연극 무대만을 고집했지만,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선배가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방송 3사 공채 시험에 지원했고, 2003년 MBC 공채 탤런트 31기 수석 합격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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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배우가 된 후, 김남길은 2012년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현장 방문을 계기로 ‘길 스토리’라는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했다. 시골 마을 버스 안내 방송 캠페인, 필리핀 태풍 피해 모금 운동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왔다. 단순한 홍보대사가 아닌, 문화예술 NGO의 수장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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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는 SBS 드라마 ‘열혈사제2’에 출연 중이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채 시원한 액션으로 사회 부조리를 응징하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분방한 배우와 신중한 사회활동가라는 두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며, 그만의 독특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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