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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중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드라마와 예능을 오가며 활약한 배우였습니다. 코믹한 연기로 큰 사랑을 받으며, ‘순풍산부인과’, ‘LA 아리랑’ 같은 작품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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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인생의 또 다른 무대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1996년 6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한 그는 이듬해인 1997년 아들 혁준 군을 품에 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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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엿한 집안의 가장이 된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중 2006년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주인공 장철수 역할의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합니다. (최종적으론 오지호가 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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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니라 아들의 발달장애 진단과 희귀병 소식을 접한 뒤, 자신의 커리어보다는 가족과 아들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죠. 당시 ‘환상의 커플’은 남해에서 올 로케에서 촬영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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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촬영으로 아들과 떨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를 계기로 활동을 대폭 줄이며 가정에 헌신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안이 들어오는 여러 작품을 거절했으며, 라디오의 DJ 자리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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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중의 아들은 전 세계 15명, 국내에선 단 한 명만 진단받은 희귀병을 앓고 있습니다. 치료법조차 불확실한 병명을 접하고도, 그는 좌절 대신 가족과 함께 병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다지며 아들을 위한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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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헌신을 넘어 권오중은 희귀 난치성질환연합회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자선음악회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에 노개런티로 참여하고 있기도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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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아내의 노력과 헌신 덕분에 아들 혁준 군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하며 성장할 수 있었으며, 권오중은 이를 바탕으로 여러 공식 행사와 개인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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