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산 미리 받아서 가수가 될 수 있었다는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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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히트곡을 내고 한국 가요계에 이름을 남긴 이승환은 1965년 12월 13일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유복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장난감 공장장이었고, 국민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사한 후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강남 명문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가수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강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음반 제작비, 제작사 구하기라는 현실적 장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수많은 음반사를 전전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고,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 속에 우울증을 얻어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 타협을 하며 음악에 도전해보기로 약속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미리 유산이라며 500만 원을 건넸다. 당시 음반 한 장을 제작하는 데 2~3천만 원이 들던 시절, 이승환은 이 돈으로 직접 첫 앨범을 제작했다.

1집 제작은 쉽지 않았다. 음반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모든 과정을 직접 챙겼고, 그의 열정과 노력은 빛을 발해 1집은 대성공을 거뒀다. 방송 출연 없이도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1집의 성공 이후 이승환은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한국 가요계에서 유재하에 이어 자신의 음반을 스스로 제작한 두 번째 가수로 평가받으며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1997년에는 ‘우리기획’을 확장하여 ‘드림팩토리’라는 종합 연예기획사를 설립했다. 음반 제작뿐 아니라 공연 스태프 양성, 녹음 스튜디오 운영 등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지만, 국내 음반 시장의 침체와 과도한 투자로 경영난을 겪으며 사업의 많은 부분을 정리해야 했다.

이승환의 음악 인생에는 굴곡도 많았다. 2003년 그는 5시간 30분 동안 공연을 하며 국내 최장 시간 공연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무대에서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은 경험을 하며 음악을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또한, 후배 양성을 위해 ‘마법의 성’을 부른 더 클래식부터 이소은, 정지찬 등 여러 음악인들의 음반을 제작했으나, 지속적인 적자로 인해 이 일에서 손을 떼야 했다.

그는 채림과 2003년 결혼, 혼인신고 없이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나 2006년에 결별했다. 이혼 이후 여러 언론 매체의 여러 억측과 싸우며 몇몇 기자와 친분이 생기게 되었고, 이는 그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촛불 집회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 탄핵 집회 등에서 자신의 노래로 목소리를 낸 그는, 최근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로 광장의 무대에 다시 한 번 오르기도 했다.

아버지가 유산을 미리 건네 준 덕분에 데뷔 후 35년 이상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 표현한 이승환은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있다. 그의 독립성과 도전 정신은 후배 음악인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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