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 마크 러팔로에게서 ‘그들’의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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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17'에서 독재자 마샬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미키17’에서 독재자 마샬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가운데).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봉준호 감독은 특수성을 가진 이야기로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화법이 탁월한 감독이다. 서울의 한 주택에서 세 가족 사이에 일어난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기생충’이 전 세계인을 홀린 이유다. 새 영화 ‘미키17’에서도 그는 여지없이 자신의 장기를 뽐낸다.

‘미키17’는 우주 행성 개척 과정에서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복제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이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봉준호 감독이 2020년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거머쥔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미키17’이 지난 14일(한국시간) 개막한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국내외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가운데,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독재자 케네스 마셜에 높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셜은 선거에서 두 차례 낙선한 실패한 정치인으로, 자신을 추종하는 극단적인 세력의 지원을 받아서 인류를 위하는 일이라는 명분 아래 얼음 행성 개척을 위한 4년간의 우주 비행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마셜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개척단의 질서를 세우고 독재자처럼 행세한다.

마셜에 대해 미국과 유럽의 평단과 언론에서는 지난 1월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린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매체 벌처는 16일 “미국에 대한 씁쓸하면서도 재미있는 견해를 제시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마셜을 가리켜 트럼프 대통령을 빗댄 인물로 봤으며, 또 다른 매체 인디펜던트는 “트럼프를 조롱하는 걸작”이라고 ‘미키17’을 평했다.

봉준호 감독은 13일 영국 런던에서 영국 영화 연구소(BFI) 주최로 진행한 대담에서도 관련 질문을 받았다. 진행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살짝 오렌지 빛이 도는 얼굴’로 표현하며 마셜이 누군가를 연상시킨다고 물었다. 이에 봉 감독은 “우리가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머릿속에 공유된 것 같다”며 “이 영화는 2022년에 촬영했지만 분명 2024년에 일어난 어떤 사건과 비슷한 장면이 있다. 영화를 본 마크 러팔로도 ‘우리가 예언적인 일을 한 거냐’고 신기해했다”고 의도하지 않은 일임을 밝혔다.

'미키17'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지난 14일 개막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미키17’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지난 14일 개막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과 유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된다면, 국내에서는 마셜에 대해서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셜의 곁에서 마셜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내 일파 마셜(토니 콜렛)도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이다. 일파 마셜은 원작에 없던 캐릭터로, 봉 감독이 각색하는 과정에서 창초해낸 인물이다.

더 흥미로운 건, 봉준호 감독이 ‘미키17의 시나리오 작업을 현 정권이 출범하기 전인 2021년에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방송인 손석희가 18일 방송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봉 감독에게 “(감독이)’예지자적 성격을 가졌나’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한 배경이다. 봉 감독은 “미국에서도 그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면서 “내가 예언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고 너스레를 놨다. 이날 봉 감독은 게스트로 출연해 새 작품과 영화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러팔로가 연기하는 마샬이 미국과 한국의 현직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은 “우주로 확장한 현실 풍자”인 ‘미키17’에 대한 예비 관객에게 흥미로운 호기심을 자극한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미키17’는 오는 2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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