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마크 러팔로 “독재자로 누군가 떠오른다면? 해석의 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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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외치는 영화 ‘미키 17의 주역들. 20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과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 최두호 프로듀서(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사회적인 현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디테일과 발칙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봉준호 감독의 세계가 이번에는 우주로 향했다.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과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휩쓴 ‘기생충’ 이후 감독이 6년 만에 새로운 영화 ‘미키 17’으로 돌아왔다.

20일 오전 11시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미키 17’의 기자 간담회에는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이끈 배우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 나오미 애키가 참여해 작품의 촬영 과정과 개봉을 앞둔 각오를 밝혔다. 주인공 미키 역의 로버트 패틴슨은 지난달 20일 먼저 내한해 간담회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 만큼 이번에는 함께 하지 않았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어떤 작품이 스크린에 걸리고 개봉하길 기다리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카운트다운을 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개봉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또한 “‘미키 17’에는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크리처들이 선사하는 스펙터클이 있지만, 배우들의 풍부하고 섬세한 뉘앙스가 담긴 연기를 대형 스크린으로 볼 때 그 얼굴 자체가 스펙터클이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미키 17’를 봐 주길 바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이번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마크 러팔로와 스티븐 연은 한국 관객과 몇 차례 만난 인연이 깊은 배우이다. 반면 나오미 애키는 첫 내한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다”고 인사하며 “이번 영화는 사랑으로 만들어졌고,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2015년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이후 10년 만에 내한한 마크 러팔로는 “당시 제가 많은 환대를 받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저를 많이 질투했다”며 “그가 누구를 질투한 건 처음이었다”고 추억을 돌이키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어 봉 감독을 향한 굳은 믿음도 보이면서 “지금 활동하는 가장 훌륭한 연출가 중 한명”이라고 꼽았다.

‘미키 17’의 주역들은 현재 전 세계를 돌며 영화를 알리고 있다. 지난 14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첫선을 보였고, 16일에는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부문을 통해 작품을 공개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를 거쳐 서울로 왔다. 배우들은 봉준호 감독과 투어를 함께 하면서 작품을 알리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미키 17’의 봉준호 감독.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오는 28일 개봉하는 ‘미키 17’은 부푼 꿈을 안고 친구 티모(스티븐 연)와 마카롱 가게를 차린 미키(로버트 패티슨)가 거액의 빚을 지고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미키는 정치인 마셜(마크 러팔로)이 지도하는 얼음행성 니플하임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아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소모품 익스펜더블에 지원한다.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미키 앞에, 그가 죽은 줄 알고 프린트된 미키 18이 나타나면서 사건이 펼쳐진다. 익스펜더블이 두 명이 되면서, 그중 한 명은 죽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2022년 출간된 미국의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를 봉준호의 시각을 담아 각색한 작품이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는 ‘미키 17’의 작업 과정부터 영화가 담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에 대한 여러 질문과 답이 오갔다.

Q. ‘기생충’으로 사회 계층의 문제를 꼬집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부분에 집중했나.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자본주의를 풍자하고 있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만들 때에 그런 깃발을 꽂아두고 만들지는 않는다. 지하에서 사는 기우(최우식)가 부잣집에 처음 가서 잔디밭에 나오는 물을 볼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런 사소한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온 결과물이다. ‘미키 17’의 경우도 미키의 유일한 친구인 티모가 자기 앞에서 깐족거릴 때의 마음은 어떨까? 이런 부분에서 시작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메시지보다, 영화는 그런 틈바구니에서 숨쉬는 인물들과 감정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동료 감독으로부터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다.”

Q. 원작 소설인 ‘미키 7’은 복제된 인간,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SF 장르에서 비슷한 형태의 영화들이 많았는데, 어떤 차이를 두고 만들었나. 

봉준호 감독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작 소설의 핵심은 인간 프린팅 즉 사람을 출력하는 행위다. 사실 인간을 그렇게 프린팅 하는 게 안되는 일이지 않나.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다. 원작의 콘셉트 자체에 이미 희비극이 담겨있다. 기존의 복제인간물과는 다르다고 보면 되겠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미키는 너무 착한 청년이고, 맨날 손해를 입는다. 슈퍼 히어로나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을 출력하는 설정이 아니라, 주변에 있을 법한 가여운 청년의 이야기이기에 기존의 SF 영화와는 다르게 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손을 맞대 하트 포즈를 취하는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왼쪽부터).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마크 러팔로와 스티븐 연, 나오미 애키는 입을 모아 봉준호 감독에 대해 “친절하고 섬세한 감독”이라고 칭했다. 봉준호와 디테일을 합친 ‘봉테일’이라는 별칭에도 “정말 맞는 말”이라며 “배우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열어줬다”고 이야기했다.  

Q. 배우들의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을 진행했나. 

봉준호 감독  “아무래도 내 성격이 이상하다 보니, 사람을 볼 때도 자꾸 이상한 면만 보게 되나 보다. 그 사람의 흔히 알려진 모습과 다른 모습이 보이면 집착이 생긴다. 마크 러팔로가 그동안 한 번도 악당을 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고, 첫 번째 기회가 나한테 왔다는 것이 영광스러웠다. 처음 캐스팅 제의를 했을 때 마크 러팔로가 낯설어했다. ‘내가 뭘 잘못했어요?’라고 묻더라. 독재자 역할인데 이상한 매력이 있다. 마셜도 영화 속에서 소리만 지르는 악당이 아니다.”

“나오미 애키도 아시다시피 휘트니 휴스턴의 전기 영화(‘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에서 직접 노래를 하면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익숙할 것이다. 이번에도 총과 칼이 아니라 목소리 하나로, 독재자인 마셜을 제압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모습을 나오미에게서 발견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

“스티븐 연의 경우에는 ‘옥자’ 때에 함께 작업을 하지 않았나. 사실 ‘미키 17’를 땀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하이웨스트 팬츠를 입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면서서 실감나게 연기해 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어서 제안을 했다. 다들 내가 예상한 것보다 그 이상을 보여줬기에 내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다.” 

Q. ‘봉테일’이라고도 불리는 봉준호 감독과 같이 작업한 과정은 어땠나. 어떤 부분에서 감독의 섬세함을 느꼈는지도 궁금하다.  

나오미 애키 “나는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 통제나 경계선을 설정해 주길 바라는 어린아이 같다. 감독님을 부모라고 생각하는데, 봉준호 감독님은 내가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해주었다. 늘 ‘괜찮다’ ‘익숙해질 거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님과 함께 한 자유로운 방식에 익숙해졌다.”

마크 러팔로  “정말로 섬세하고 꼼꼼하다. 저희가 스스로 창의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분이다.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보드를 봤는데, 직접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연기 지도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스토리보드에 힌트가 있었다. 보지 말라고 했지만 스토리보드를 보면서 전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했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 받고 인정 받는데도 겸손하다. 계속 친구로 남고 싶다.”

스티븐 연 “시간이 지나면서 감독님과 함께 하는 경험의 양상도 달라지는 것 같다. 나도 스스로 성장을 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감독님은 캐릭터와 배우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 다시 작업을 하게 된다면 계속해 함께 진화하면 좋을 것 같다. 눈빛이 정말 아름답다. 그의 시각이 아름답다는 말이 맞겠다. 봉 감독님만의 시각으로 찾아낸 매력들이 정말 특별하다.”

얼음행성 개척단의 독재자 케네스 마셜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 독재자 마셜에게서 보이는 ‘그들’의 존재  

런던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독재자 마셜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이 집중됐다. 우주 행성 개발에 돌진하는 독재자의 모습은 물론 말의 억양이나 행동 등이 묘하게 트럼피 대통령을 연상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서는 마셜에 탄핵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을 떠오르게 한다는 반응이다. ‘미키 17’은 그렇게 현실과 뗄 수 없는 영화로 또 한번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누군가를 특정해 만든 캐릭터가 아닌 “역사를 돌아봤을 때의 존재했던 다양한 정치적 악몽과 독재자들의 모습을 녹였다”고 설명했다. 2021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2022년 모든 촬영을 마쳤기에 특정 인물들과의 연관성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마크 러팔로도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도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싶다”고 강조했다. 

Q. 미국의 특정 정치인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마셜을 연기한 배우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마크 러팔로 “촬영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 이 인물이 과거에 어떤 인물이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특정인을 연상시키기 않기를 바란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쩨쩨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원하다가 결국에는 실패하는 독재자들을 많이 봐오지 않았나.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싶다. 2년 전에는 몰랐지만, 소름 끼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과 닮아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봉준호 감독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나이가 많은 한 이탈리아 여기자님께서 마셜 캐릭터가 무솔리니를 반영한 것 아니냐고 묻더라.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다양한 정치적 악몽들과 독재자의 모습들이 녹아있기에 나라마다 자신의 역사나 상황을 투사해서 보는 것 같다. ‘미키 17’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에 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마셜은 그런 것들을 융합시켜서 하나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마크 러팔로가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Q. 폭력적인 지도자를 연기하면서 폭력과 위협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고민하지는 않았나.  

마크 러팔로  “마셜은 행성 전체를 밀어버리려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여러 사회적인 운동을 보면 마틴 루터 킹이나 간디와 같은 비폭력 운동들이 더 큰 변화를 이뤄냈다. 어떤 때는 국가의 압도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을 경험하게 될 때도 있다. 나샤가 가진 미키에 대한 사랑은 국가나 제도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그 힘이 승리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한다.”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를 연기한 나오미 애키(왼쪽),미키의 유일한 친구 티모를 맡은 스티븐 연.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마셜과 반대로 미키의 곁에서 인간적인 향기를 풍기며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들도 있다. 어쩌면 죽어야 하는 임무에 놓인 미키를 열렬하게 지지하고 변화시키고 지켜주는 나샤, 본인의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친구 티모다.  

Q. 나샤는 변화의 중심에 서있다. 독재자에 맞서고, 사랑하는 미키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나오미 애키 “최고의 영웅, 지도자는 영광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기는 경우가 많다. 미키와 나샤가 어떤 큰 그림을 보고 행동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행하는 것,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게 ‘미키 17’의 놀라운 힘이자, 우리가 많이 들여다봐야 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Q. 반면 티모는 악착같이 혼자서만 살아나려는 인물이다. 

스티븐 연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이나 트라우마가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고 시니컬한 성격의 소유자고 초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런 사고방식과 삶에 대한 부분은 어려운 성장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티모와 마셜은 비슷하지만 대비되는 것도 흥미롭다. 유사한 점이 많을 것 같지만 의도나 동기가 다르다. 티모는 옳다, 그르다 보다는 상황을 판단해서 어떤 것이 안전한 방법일지 고민하고, 시스템을 파악해서 생존 방식이 높은 것을 선택하는 것 같다.”  

영화 ‘미키 17’에서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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