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교수와 현대회화 거장의 만남, 성북동갤러리 ‘칼과 붓’ 2인전 개막
![왼쪽부터 이성영 작가, 정유석 교수 [사진제공=아트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6/CP-2024-0128/image-996cc800-0f7d-42d9-917b-37b42da50954.jpeg)
생명을 다루는 손과 예술을 빚는 손이 한 공간에서 마주한다. 의료와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칼과 붓’이라는 공통의 도구를 매개로 만나는 이색 전시가 서울 성북동에서 열린다. 글로벌 아트 커뮤니티 플랫폼 아트앤(ARTN)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의료계와 미술계 양쪽의 시선이 교차하는 무대로 주목받는다.
성북동갤러리(서울 성북구 동소문로29길 55, 1층)는 4월 25일부터 6월 25일까지 약 두 달간 특별 2인 초대기획전 ‘두 사람의 손에 들려있는 칼과 붓’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국립암센터 정유석 교수와 이성영 작가가 함께 참여한다. 전시 부제 ‘생명을 마주하는 도구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행위로’는 의사의 메스(칼)와 화가의 붓이 결국 생명을 다루는 같은 행위로 수렴된다는 점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성영 작가는 충남 서산 출신으로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단국대에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중견 화가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뉴욕(New York)·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산타모니카(Santa Monica), 일본 도쿄(東京), 중국 베이징(北京), 프랑스 파리(Paris) 등에서 40여 회의 개인전을 열며 국제 무대에서 활동해왔다. 그의 작업은 이 시대의 감각에 맞는 새로운 회화 언어를 모색하는 데서 출발한다.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관람객의 감각을 다시 일깨우려는 시도로, 칼날과 소반, 알약 캡슐처럼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오브제들을 선택해 그것들이 품은 시간과 흔적을 화면 위에 다시 불러낸다. 한때 폐기된 사물은 작가의 손을 거치며 새로운 의미를 얻고 회화의 경계를 조용히 확장한다.
이성영 작가의 작품에는 유한한 것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 흐른다. 사라져가는 것, 소멸을 향해 가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칠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다. 최근 이어가고 있는 ‘칼날’ 시리즈는 날카로운 물성 속에서 역설적으로 고요함을 끌어낸다. 반복되는 작업 과정은 하나의 수행이자 명상에 가깝고, 그 안에서 작가는 폭력이 아닌 평화를 이야기한다. 작품에 담긴 ‘no war’ 메시지는 단순한 구호를 넘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정유석 교수의 작품 세계 또한 이 시대의 아픔을 조용히 품어낸다. 정유석 교수는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학과에 재직 중인 의료인이자 연구자로, 두경부암 분야 연구로 대한암학회 학술대회에서 노바티스 메리트 어워드(Merit Award)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코로나라는 낯선 시간 속에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스승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며 잠시 작업을 멈추고 곁을 지켰다. 다시 이어진 작품들에는 그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정유석 교수의 화면은 개인주의가 짙어진 시대 속에서 잊혀가는 ‘함께함’의 가치를 되묻는다. 누군가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끌어안았던 시간, 그로부터 비롯된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서로를 얼마나 바라보고 있는가. 의료인의 시선이 캔버스 위에서 어떤 언어로 번역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 운영 일정은 공식 오픈 기준 매주 금·토·일요일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주중 관람을 원하는 관람객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주차는 인근 돈암감리교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일요일은 제외된다. 성북동 일대는 한용운, 김광섭 등 근현대 문인과 김환기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은 지역으로, 2013년 서울시 최초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된 문화 밀집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글로벌 아트 커뮤니티 플랫폼 아트앤이 자산 가치 중심의 큐레이션을 넘어 직업과 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작가 매칭 기획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의료인과 전문 작가의 협업 전시는 국내에서 흔치 않은 시도로, 작품을 자산으로 보는 관점뿐 아니라 창작자의 서사와 직업적 정체성을 함께 조망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 미술시장이 전시 기획 다변화와 컬렉터 저변 확대를 동시에 모색하는 가운데, ‘도구의 의미를 되묻는’ 이번 전시의 접근법이 관람객과 컬렉터에게 어떤 반응을 끌어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