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1년 만의 선택… 전지현, 기꺼이 ‘군체’ 뛰어든 이유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전지현은 영화 ‘군체’를 두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기존 좀비물의 공식에서 벗어난 설정과 연상호 감독 특유의 메시지, 그리고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권세정이라는 인물까지. 극장에서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었기에 전지현은 기꺼이 ‘군체’에 뛰어들었다.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돼 일찌감치 주목받았고, 지난 21일 국내 개봉 후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전지현이 영화 ‘암살’(2015) 이후 선택한 스크린 복귀작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그는 극 중 감염 사태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생존자들을 이끄는 권세정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이끌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전지현은 작품을 선택한 이유와 인물에 대한 해석,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 과정 등 ‘군체’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개봉 후 반응이 좋다. 소감은.
“장르물이긴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달랐다. 그런 부분들을 관객들이 좋아해 주시고 말씀을 많이 해주시니까 뿌듯하기도 하다. 권세정이라는 역할이 아무래도 극 중에서 중심을 잡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이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좋게 말씀해 주실 때 기분이 너무 좋다.”
-11년 만에 택한 영화였다. ‘군체’만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느꼈나.
“기존의 좀비와 다른 지점이 재미있었다. 예전의 좀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통제 불능의 상태였다면, ‘군체’ 속 존재들은 어떤 네트워크로 인해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응집된 상태로 움직인다. 그런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현대인들이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AI에게 자신의 생각을 통째로 양도해 나가는 모습들을 비판하는 감독님의 재치 있는 경고 메시지도 담겨있어 좋았다.”

-권세정을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권세정은 어떤 특별한 것이 보여지는 인물이길 바라지는 않았다. 가장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권세정은 중심을 잃지 않고 본인이 생각한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그 부분에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했고, 관객들이 그 감정을 따라와 주는 것만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관객들의 선택, 관객들의 감정과 함께 가는 인물이었으면 했다. 권세정이 고민할 때 관객들도 함께 고민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부분들이 잘 전달된 것 같아서 만족한다. 내가 정확히 알아야 이런 상황들 속 감정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설명적인 대사에 대해서도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감독님이 전문가잖나. K-좀비의 아버지, ‘좀버지’니까. 감독님과의 대화를 통해 정확히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좀비들과의 연기는 어땠나.
“체력은 늘 준비돼 있는 상태다. 좀비 장르는 ‘아신전’을 하면서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당시에도 ‘킹덤’을 모두가 재미있게 봤을 때였잖나. 그래서 내가 그 세계관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흥분된 상태였다. 그때는 좀비 배우들을 만나면 사진도 찍고 그랬다. ‘군체’에서 만난 좀비들은 또 달랐다. 감독님 말씀으로는 현대무용을 하는 친구들, 조금 더 체계적인 연기를 하는 분들과 함께 작업했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보는 좀비들의 연기가 굉장히 경이로웠다. 신체를 그렇게 활용하고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배울 점도 많았고 현장에서 실제로 태도도 달랐고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도 달랐다.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신선했다.”
-액션 장면 촬영은 어땠나. 카 체이싱 신도 인상적이었다.
“빌딩에서 나올 때 굉장한 쾌감이 있다고 하더라. 그 장면 이후 빠른 전개로 마무리까지 이어지는데 마지막 하이라이트 신에서 떡밥 회수가 순조롭게 이뤄지는 부분들의 통쾌함이 있다고 했다. 나도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정말 좋았다. 옆에 실제로 운전해 주는 스턴트 분이 계셨고 나는 하는 척만 했는데도 진짜 재미있더라. 범퍼카 타는 느낌 같았다. 평생 살면서 범퍼카 수준의 운전만 해보다가 실제 자동차에 타서 사람들을 칠 듯 말 듯한 스릴까지 느끼면서 촬영했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때 스트레스도 해소가 됐다.”

-연상호 감독과 직접 작업해 본 느낌은 어땠나.
“감독님이 가진 작품의 색깔이 있잖나. 그래서 감독님 성격도 예민하지 않을까, 어두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실제로는 너무 밝고 말씀도 재미있게 하신다. 영화 촬영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 같은 부분들도 그렇고 최고의 작업 환경이었다. 배우 입장에서는 감독님의 세계관이 워낙 뚜렷하고 색깔도 확실하기 때문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다른 고민을 하기보다 감독님에게 얹혀 가는 느낌이기 때문에 현장도 좋았고 연기할 때도 좋았다. 항상 감독님의 결과물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것 같다. ‘군체’도 너무 좋고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감독님과의 작업을 반복해서 하는 것 같다.”
-연상호 감독과 다시 작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나.
“감독님이 다작을 하시는 분이다 보니까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지만 감독님 작품이라면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함께하고 싶다. 다양한 장르와 포맷의 작품들을 하시잖나. 배우들 입장에서는 그런 기회가 많은 거니까 당연히 감독님 같은 분들이 많으면 좋다. 본인의 색깔도 확고하시고 감독님과 작업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해서 꼭 다시 함께하고 싶다.”
-100억대 대작, 대형 프로젝트에서 원톱 여성 배우로 중심에 설 수 있는 유일한 배우기도 하다. 이에 대한 자부심이나 책임감도 느낄 것 같은데.
“이런 대작에 어울리는 배우라고 이야기해 주시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활동하면서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다른 점이 있을 때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배우로서의 마켓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만의 차별점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해외에서 러브콜이나 기회가 왔을 때도 주저 없이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액션 영화라든지 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한 것들을 소화해야 했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스펙트럼도 자연스럽게 넓어진 것 같다. 그래서 좀비라는 장르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배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체력적 부담은 없었나. 배우로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몸도 노력하면 발전하고 모든 사람이 분명 노화는 있지만 그 시간은 분명히 천천히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누군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당시 그분은 60대였는데, 한 80대 어르신이 그분에게 ‘나는 60만 돼도 뛰어다니겠다’라고 하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당시에는 ‘60대인데 어떻게 뛰어다닌다고 말씀하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20년이나 젊은 거잖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위로가 됐다. 지금부터 뭘 하나 시작해도 60대에는 완성할 수 있는 게 있는 거다. 그래서 절대 본인이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안 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배우로서도 마찬가지다. 예전만큼 물론 많은 기회가 있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지금 할 수 있는 감정들을 표현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피 칠갑해도 화보 같다’는 반응도 많더라. 이러한 반응이 부담되기도 하나.
“억울한 부분도 있다. 그냥 상황에 충실했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굉장히, 또 과하게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더라. 청바지에 흰 티를 입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정말 말 그대로 그렇게만 입은 거잖나.(웃음)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그런데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다. 사실 ‘북극성’ 때도 좋았거든. 그런데 ‘군체’에서 유난히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는 게 신기하다. 부담은 없다. 그런 반응이 많을수록 사실 더 좋다. 못생겼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나.(웃음) 중요한 건 의도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칸 국제영화제에 다녀온 경험은 어땠나. 새로운 동력이 되기도 했겠다.
“칸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고 영화인들의 꿈의 성지 같은 곳이잖나. 그래서 배우들과 감독님 모두 굉장히 흥분된 상태였다. 날씨도 좋았고 칸이 가진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좋았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었더라도 그 공간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있었다. 그동안 앰배서더나 해외 영화 관련 일정으로 초대돼 갔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까 그동안 갔던 칸은 칸이 아니었더라. 제대로 칸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던 거다. 레드카펫을 밟아보니까 오롯이 우리만을 위한 자리였고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물론 긴장한 순간도 있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굉장히 길었기 때문에 긴장도 점점 풀리면서 그 순간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더 빠져들게 되더라. 정말 좋았다. 감독님이 ‘칸에 길들여지면 안 되는데’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너무 좋고 욕심도 끝이 없어지는 것 같다. 참석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경쟁부문에도 가고 상도 받으면 얼마나 영광스럽겠나 싶었다.”
-오랜만에 무대인사를 다니면서 느낀 감정도 궁금하다. 달라진 관람 문화를 체감했나.
“대체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되게 좋더라. 관객들과 만날 일도, 소통할 일도 거의 없는데 이런 식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것들이 좋았다. 놀랐던 지점은 우리나라 관객들의 매너와 예의범절이었다. 생각보다 극장 앞에 있으면 관객들 얼굴이 잘 보인다. 관객들이 들고 있는 메시지 카드를 읽는 것도 되게 재미있었다. 나는 몇 개 없다. 지창욱, 구교환이 읽느라 힘들었을 거다.(웃음)”
-관객들이 ‘군체’를 어떻게 봐줬으면 하나.
“영화라는 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체’는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좀비물의 공식을 깨고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담아낸 작품인 것 같다. 감독님이 하고자 한 메시지는 작품 안에 충분히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관객들이 좀비 장르가 주는 재미를 오롯이 느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영화 안에서 ‘군체’라는 영화는 계속 회자될 것 같다.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군체’가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야기될 것 같지만 지금은 우선 좀비 장르로서 충분히 즐기고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