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종복연구소에서 방사된 아기 반달가슴곰 두 마리. 이들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자 연구소 소장 ‘나복천'(오달수)은 직접 그들을 찾아 나서고, 어느 동굴 근처에서 흔적을 찾아낸다. 하지만 동굴 안에는 먹고 남은 마늘과 쑥, 그리고 사람이 되어버린 반달곰 ‘나웅남'(박성웅)만 있을 뿐. 이에 복천은 아내 ‘장경숙'(염혜란)’과 함께 웅남이를 아들로 키우기로 결정한다.
시간이 흘러 경찰이 되는 등 인간을 초월하는 곰의 능력을 활용해 이웃을 돕는 웅남. 그는 소꿉친구 ‘조말봉'(이이경), ‘윤나라'(백지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웅남은 제약 회사 사장이자 조폭 두목인 ‘이정식'(최민수)를 잡기 위한 경찰의 극비 수사 작전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정식의 심복이자 웅남과 똑 닮은 조폭 ‘이정학'(박성웅)을 연기해 달라는 것. 이에 웅남은 경찰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정학을 연구하며 범죄 조직과의 결전을 준비한다.
코미디언과 영화감독
코미디 영화 <웅남이>는 감독의 유명세 덕분에 주목을 받았다. KBS <개그콘서트>를 봤던 이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코미디언 박성광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박성웅과 최민수라는 스타 배우가 출연했고, 정우성마저 카메오로 등장하니 눈길이 안 갈 수 없기도 하다. 오히려 그렇기에 <웅남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왜곡되기 쉽다.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라는 한 줄 평을 남긴 이용철 평론가처럼, ‘코미디언이 만드는 영화가 좋아봐야 얼마나 할까’라는 삐딱한 시선이 어렵지 않게 스며드는 것이다. 특히 <디 워>와 <라스트 갓파더>를 만든 심형래 감독처럼 안 좋은 선례가 있다 보니 이러한 선입견을 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코미디언 출신 감독에게 쓰인 선입견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본연의 능력을 잘 살려내기만 하면, 코미디언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선한 작품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하나, 시점이다. 한 사건을 주관적으로 느껴버리면 비극이고, 이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면 희극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건에 종속된 채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희극인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분석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다. 그 간극은 넓을수록 큰 웃음으로 이어진다(물론 너무 간극이 넓으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SNL 작가 출신인 애덤 맥케이 감독이다. 그는 <빅쇼트> <바이스> <돈 룩 업>으로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평단과 관객 모두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면 무엇 하나 일반적인 작법을 따르는 경우가 없다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제4의 벽을 깨는 연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과장된 연극적 대사를 뜬금없이 삽입해 웃음을 자아내는 식이다. <겟 아웃>과 <어스>, <놉> 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조던 필 감독도 마찬가지다. 코미디언 출신인 그 역시 미국인의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흑인 차별을 끄집어내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따라서 <웅남이> 역시 코미디언 출신 감독이라는 이유로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진짜 문제는 조악한 만듦새
안타깝게도, <웅남이>의 경우 감독의 과거 이력은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완성도가 전반적으로 미흡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이정식의 차량을 쫓는 웅남이와 경찰의 추격전만 봐도 알 수 있다. 도주하는 범죄자를 검거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지만, 일련의 시퀀스에서는 아무런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웅남이와 윤나라가 투닥거리는 개그씬, 조말봉의 유튜브 라이브 장면 등이 추격전 도중에 뛰어들면서 흐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개그 장면이 꽤 길다 보니 몰입도 역시 자연히 떨어진다. 드론 촬영을 포함해 다양한 앵글이 활용된 추격전의 퀄리티는 전반적으로 낮아진다. 다른 격투 장면도 다르지 않다. 칼에 찔리고 베이는 와중에도 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합을 맞추고 끊어가는 장면이 명확하게 노출되는 등 결과물은 조악하다.
한 시퀀스만의 문제도 아니다. 시퀀스와 시퀀스, 씬과 씬 간의 연결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에 이야기를 끊거나 이어갈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듯 보인다. 영화가 끝나는데도 미련이 남은 듯 이어지는 여러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곰의 발정기를 활용한 코미디를 추가하고, 반전을 선사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름대로 뭉클하게 마무리한 결말을 뒤집으면서 의문점만 늘리기 때문이다. 그저 카메오로 출연한 정우성의 존재감만이 쿠키 영상의 엉성함을 가릴 따름이다.
이러한 난국의 근본적 원인은 개그에 대한 욕심이라 할 수 있다.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전부 보여주려다 보니 과유불급에 그친다. 심지어 코미디의 타율도 높지 않다. 웃음을 자아내는 몇몇 순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단순한 몸개그나 말장난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 대부분의 캐릭터는 코미디를 위한 소모품에 그치고 만다. 웅남이와 나복천 부자의 연결고리를 제외하면 일관된 서사나 감정선을 부여받는 캐릭터가 없는 셈이다. 형사들은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거의 없고, 웅남이의 친구들도 그의 어수룩함을 강조하는 반사판에 불과하다.
산발적인 아이디어는 좋았다
이에 더해 <웅남이>의 미흡한 완성도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특유의 개성이 느껴지는 대목이 군데군데 엿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웅남이라는 캐릭터의 시작점은 의외로 인상적이다. 단군 신화 속 여자 사람이 된 곰, 웅녀가 있듯이 남자 사람이 된 반달가슴곰, 웅남이가 있다는 발상은 나쁘지 않은 코미디의 출발점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인이라면 일단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일만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웅남이가 사람이 된 ‘곰’이라는 특성을 활용해 마을 주민들을 도와주는 몇몇 대목은 꽤 웃기기도 하다. 농경지에 멧돼지가 출몰해서 피해를 입자, 웅남이가 멧돼지를 집합시키고 혼내는 장면처럼. 조연 캐릭터의 등장을 줄이고, 웅남이의 특성에 집중했다면 코미디의 타율이 더 높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방향으로 곰이라는 소재를 살리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작중 웅남이의 능력은 놀랍다. 곰만큼 힘도 세고, 맷집도 좋다. 빨리 달리는 건 기본이고, 시력이나 청력은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으며, 들짐승과 소통할 줄도 안다. 그래서 액션씬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능력들이 적재적소에 발휘되면서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한 예상외의 쾌감을 순간적으로 선사하기 때문이다. ‘웅남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반전 매력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장르를 잘못 선택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애초에 ‘곰’이다. 힘은 강하지만, 말도 별로 없고 온순하며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따라서 판타지나 범죄물에 기반한 액션 영화를 주 장르로 삼고, 코미디를 부수적으로 첨가하면 결과물이 어땠을까 싶다. <어벤져스> 1편이나 <범죄도시 2>처럼. 그러나 <웅남이>를 둘러싼 이 모든 미련은 결국 영화감독 박성광의 개성이나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첫 숟갈에 배부르랴
영화를 향한 감독 박성광의 열정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애초에 그는 코미디언 이전에 영화인이었다. 개그맨으로 데뷔하기 전에는 영화 연출 전공자였고, 세 편의 단편 영화 제작 경험도 있고, 영화제 수상 경력도 있다. <웅남이>에서도 나름대로 야심이 느껴지며, 재치나 아이디어만큼은 인상적인 순간도 있다. 달리 보면, 짧은 영상을 만드는 능력은 있지만 아직 한 편의 장편 영화를 끌고 갈 내공은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첫 도전이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현재 한국 축구의 상징인 손흥민 선수만 하더라도 잉글랜드에 진출한 첫 시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으니. 영화감독 박성광도 절치부심한다면 더 훌륭한 장편 영화의 꿈을 이룰지도 모른다. 물론 제2의 <웅남이>는 가급적 피해야겠지만.
D(Dreadful, 끔찍한)
죄 없는 사람만 돌을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단, 겨냥은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