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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이후 4대째 의사 집안 하영, 친일파 후손이라 오해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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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사진: 하영 인스타그램)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공개한 ‘4대째 의사 집안’ 가정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온라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증조부가 고종 황제를 진료한 의사였다는 발언이 알려진 직후, 일부 네티즌들이 해당 인물을 근대 의료계 인물 안상호로 추정하면서 그의 생애와 친일 논란까지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 방송 캡처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홍보를 위해 출연한 하영은 “증조할아버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한양에서 서양의학 전문 의원을 가장 먼저 연 분 중 한 분”이라며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소개했다. 그는 증조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이어지는 4대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중증외상센터」

하영은 방송에서 의사 집안에서 자랐지만 “의사가 너무 어려운 직업이라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고, 대신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에서 간호사 역할을 맡았을 때는 실제 의사인 가족들의 자문을 받아 현실감을 높였다고 밝혔다.

방송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하영이 언급한 이력이 한국 근대 의료사에 기록된 의사 안상호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추측이 잇따랐다. 안상호는 일본 도쿄 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귀국 후 종로에 개인 의원을 개업하고 궁중 전의를 지내며 고종과 의친왕 등을 진료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한국 근대 서양의학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 동시에, 생전 여러 논란에도 휘말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고종 독살설이다. 1919년 고종이 위독했을 당시 궁중 전의로 진료에 참여했던 안상호는 고종의 서거 이후 일각에서 제기된 독살 의혹과 함께 이름이 거론됐다. 그러나 이후 연구에서는 당시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고종이 오히려 살아 있어야 했던 시기였다는 점 등을 근거로 독살설 자체의 신빙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실제 의친왕 역시 훗날 안상호가 독약을 사용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의 증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보다 더욱 온라인에서 주목받은 것은 그의 가정사였다.

1918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왕세자 이은과 일본 황족의 결혼을 앞두고 ‘일선동체의 가정 방문’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이 시리즈에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살고 있던 안상호의 가정도 소개됐다.

기사에서 안상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지요.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습니다.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어요”라고 말하며 일본식 생활을 소개했고, 일본인 아내와 함께 다섯 자녀를 일본식으로 키우는 생활을 자랑했다.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에서 이러한 발언은 강한 반감을 불러왔고, 그를 친일 성향 인물로 바라보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런 엿같은 사랑」

이 같은 기록이 최근 다시 온라인에 확산되면서 일부에서는 하영을 ‘친일파 후손’으로 단정하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하영 본인이 증조부의 실명을 직접 밝힌 적은 없다. 또한 안상호에 대해서도 친일적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기록은 존재하지만, 역사적 평가와 법적 의미의 친일파 규정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그가 연루됐던 고종 독살설 역시 여러 연구에서 신빙성이 낮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으며, 당시 시대적 상황과 언론 보도 방식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이번 논란은 방송에서 공개된 가족사가 온라인 추정을 거치며 역사적 논쟁으로까지 확대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영 (사진: 하영 인스타그램)

한편 하영은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을 통해 정해인과 호흡을 맞추며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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