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로 더 깊숙이… 이준익이 발견한 가능성, ‘아버지의 집밥’

시사위크|잠실=이영실 기자 14편의 장편영화를 선보인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세웠다. 자극적인 소재와 빠른 전개가 익숙한 숏폼 시장에 그가 꺼내 든 이야기는 ‘집밥’이다.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세로 프레임에 담아 인물의 내면을 더욱 가까이 들여다보고, 모바일을 넘어 극장까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는 이준익의 첫 숏드라마 연출작 ‘아버지의 집밥’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과 배우 정진영·이정은이 참석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의 집밥’은 40년간 삼시세끼 집밥만 찾던 아버지 하응(정진영 분)이 ‘요리 백지증’에 걸린 아내 순애(이정은 분)를 대신해 생애 처음 부엌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리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세로형 시네마다. 오는 9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 뒤 레진스낵을 통해 총 61개 에피소드로 공개된다.
이준익 감독에게도 낯선 도전이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준익 감독은 “엄밀히 말하면 도전이라기보다 후배들에게 떠밀리다시피 하게 됐다”며 조감독 등 주변 후배들의 권유로 숏폼 연출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찍으면서 느낀 게 많았다”고 돌아봤다.
특히 세로형 프레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준익 감독은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림을 봐도 가로는 풍경화다. 풍경 속에 사람이 들어가기도 한다. 반면 세로 그림은 인물화나 초상화”라며 “세로로 보면 한 인간의 내면을 가로보다 훨씬 더 내밀하고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도 차이는 컸다. 좌우가 좁은 세로형 프레임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인물에 집중하게 됐고, 인물과 인물을 잇는 편집을 거치며 관계와 심리 역시 더욱 도드라졌다. 이준익 감독은 “심리극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인물과 인물이 편집으로 이어지다 보니 계속 관계와 심리에 집중하면서 몰입도가 올라간 것 같다”며 “나도 처음 찍어보는 거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감독이 주목한 것은 숏폼이라는 형식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의 다양성이었다. ‘아버지의 집밥’은 회당 2~3분이라는 짧은 호흡을 따르면서도 자극적인 사건 대신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부부와 가족의 일상을 좇는다.
이준익 감독은 “숏폼은 짧은 시간 안에 흥미를 끌어야 해서 자극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내가 찍는 영화는 자극적이거나 폭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걸로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약 2분이라는 구간 안에 짧은 기승전결이 있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며 “평범한 사람들의 가족 이야기지만 숏폼이 가진 장점을 통해 흥미롭게 끌고 갈 수 있다는 경험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배우들도 새로운 형식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인물을 완성했다. 하응을 연기한 정진영은 “배우로서는 딱히 구분하지 않고 연기했다”며 “연기는 인물이 가진 감정을 잘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에 충실하려 했다”고 밝혔다. 다만 카메라와 스태프가 기존 영화 촬영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느꼈다며 “그 열기와 온도를 느끼면서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순애 역의 이정은은 2~3분 단위로 끊어지는 이야기의 호흡에 집중했다. 그는 “에피소드마다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함을 유발하는 장면에서 끝난다”며 “연기를 특별히 다르게 했다기보다 궁금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력했다. 배우 입장에서는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게 표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극장 상영을 계획한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을 본 이준익 감독은 모바일을 넘어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특히 최근 극장가에서 가족의 삶을 담은 드라마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점도 극장 상영을 제안한 이유였다. 이준익 감독은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자기 나이에 맞는 콘텐츠를 보는 것이 줄지 않았나 싶었다”며 “세로가 됐든 가로가 됐든 자신의 이야기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투자사에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끝으로 이준익 감독은 “‘아버지의 집밥’이라는 소재에 맞는 연령대의 관객들이 함께 보는 것을 보고 자기 나이에 맞는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연세 많은 분들뿐 아니라 손녀딸부터 자식, 며느리까지 온 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우리네 삶을 가까이서 엿보듯 즐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