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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암살자(들)’ 박해일, 여전히 호기심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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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해일이 영화 ‘암살자(들)’로 돌아왔다. / 하이브미디어코프
배우 박해일이 영화 ‘암살자(들)’로 돌아왔다. / 하이브미디어코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해일이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가 선택한 인물은 1974년 한복판에서 사건의 진실을 좇는 기자 재환이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허진호 감독의 반가운 제안에 그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자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품고 시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영화 ‘암살자(들)’는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을 소재로, 그날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유해진·박해일·이민호 등이 출연했다. 박해일은 사건의 이면을 파고드는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 역을 맡아 후배 기자 영일(이민호 분), 형사 철구(유해진 분)와 함께 진실을 좇는다.

박해일은 특유의 절제된 연기로 재환을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게 한다. 사건을 좇을 때는 집요하게, 동료들과 함께할 때는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인물의 여러 얼굴을 유연하게 오간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장면에서는 힘을 더하기보다 오히려 덜어내는 선택으로 재환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박해일은 영화 ‘덕혜옹주’ 이후 허진호 감독과의 재회, 1974년이라는 시대에 다가간 과정과 ‘진실’을 좇는 영화가 지금 관객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해당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과 ‘덕혜옹주’ 이후 10년 만의 재회다. 다시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어땠나. 

“만나서 ‘작품 한번 같이하자’고 했고 책(시나리오)을 주셨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길면 길 수 있고 정말 빨리 가는 시간이기도 한데, 한 번 함께했던 감독님이 다시 나라는 배우를 찾아준다는 게 되게 고마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한테 맡길 역할과 작품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받아서 읽어보니 4년 만에 다시 영화를 하게 될 때 이 작품을 하려고 했던 건가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굉장히 호기심이 가는 시나리오였다. 거기에 허진호 감독님이 제안해 주셨다는 반가움까지 더해졌다.”

-그 시대와 사건을 이해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우선 이 영화가 1974년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을 화두로 시작하지 않나. 영화적으로 재해석하긴 했지만 그때 자연인으로서 나의 나이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기 전의 사건이지만 그 여파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을 테고, 사실 내가 태어난 전후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시절을 보냈다. 80년대에도 그래봤자 국민학교 학생이었으니까. 성인이 된 뒤 작품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이렇게 큰 사건이 있었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허진호 감독님의 영화적 제안을 통해 다시 시간을 돌이켜보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사건을 인지하게 됐다.

그 시대에 뛰어 들어가는 기자 역할을 맡게 됐으니 시대의 공기를 어느 정도까지 느껴야 할까 고민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걸 온몸으로 느끼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이 찾아보라고 한 자료들도 보고, 시나리오를 내려놓고 둘이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이 당시 살면서 직접 경험하고 바라봤던 시대의 이야기나 여러 사건, 그 시대 속 관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다가갔다. 결국 작품 안으로 들어갈 때는 시나리오가 내비게이션이었다. 가장 그럴싸한 기자의 모습을 만들어 관객에게 믿게 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그 시대 속에서 기자라는 인물이 어떤 역할을 하며 헤쳐 나가는지도 중요했다. 기자팀 안에서의 관계와 완급 조절, 유해진 선배가 연기한 철구와 사건의 의문이나 증거를 수집하며 공조하는 관계,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감정적인 동요까지 감독님이 옆에서 계속 터치해 주면서 함께 만들어갔다.” 

기자 재환을 연기한 박해일. / 하이브미디어코프
기자 재환을 연기한 박해일. / 하이브미디어코프

-당시 기자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그 시대의 기자와 현재의 기자를 굳이 구별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다. 그러려면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나머지는 감독님의 영역에서 최대한 받아들이고 따라가려고 했다. 물리적으로는 미술팀이 구현해 준 70년대 신문사 공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신문사 안에 정말 다양한 부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편집부까지 넘어가는 과정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공간을 직접 움직여보고 배우들과 실제 한 부서의 팀이 돼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타이핑도 쳐보고 메모도 하고 대사도 맞춰봤다. 어떻게 보면 재환은 그 공간에서 폭발하는 역할이지 않나. 자신이 지키려는 것에 대한 태도일 수도 있고. 그래서 신문사라는 공간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존재하느냐, 관객에게 기자라는 직업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믿게 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였다. 내가 수직적인 관계의 사회생활을 거의 해보지 않아서 그런 디테일은 솔직히 걱정했다. 그런데 아까 한 기자분이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는 게 지금도 그렇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렇구나’ 싶었다.”

-데뷔 후 기자들과 가까이 만나 온 직업이기도 한데 직접 기자를 연기해 본 소감도 궁금하다.

“영화로만 이야기하자면 2000년부터 2026년 지금까지 작품을 할 때마다 꼭 한 번씩 거치게 되는 게 기자분들과의 만남이다. ‘어떻게 연기했냐’ ‘이번에는 어땠냐’ 이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지 않나. 이 작품을 만나면서 ‘언젠가 한 번 제대로 긴 호흡으로, 자연인으로서든 배우로서든 이 직종을 계속 겪어왔는데 왜 기자 역할은 생각을 못 해봤지?’ 싶더라. 형사 역할은 해봤지만 기자가 내가 물리적으로 더 잘 체화하고 기억하고 있는 캐릭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허진호 감독님을 통해 이 역할을 만났고 ‘이건 무조건 잘해보고 싶다’는 게 출발점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은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발끝만큼도 따라가 보지 못한 채 영화로나마 간접 경험을 해봤는데 정말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도 동시에 느꼈다. ‘매력적이지만 어려운 직업’이라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그래도 매력적인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한 나라의 중요한 일들과 국민들 사이에서 객관적인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이지 않나. 그런 점에서 기자라는 직업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조금은 동종 의식도 느꼈다. 배우 역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과 관객 사이에서 어떤 감정의 동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기자와 배우가 그런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해일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하이브미디어코프
박해일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하이브미디어코프

-신문사 장면에서는 여러 배우가 한 팀처럼 맞물려 움직이는 호흡이 중요했을 것 같다. 어떻게 만들어갔나.

“신문사 공간에서의 작은 테이크 하나, 모든 신을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그 공간이 왜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다. 류혜영·김대명, 배성우 선배를 비롯해 사건이 터졌을 때 등장하는 김기천 선배, 박훈까지 다양한 배우들이 그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았고 잘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우리는 오래된 관계고 각자 맡은 역할이 정해져 있으며, 하나의 기사가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촬영 중간 밥차에서 밥을 먹을 때도 배우들 사이에 그런 연대감이 굉장히 좋았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치고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항상 함께해야 하는 배우들이었다. 큰 사건이 하나 터지면 ‘특종이다’ ‘큰 기삿거리다’ 하면서 모두가 갑자기 집중해 달려들지 않나. 감독님도 그런 기분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터진 뒤부터 영화가 쭉 달려가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속도감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장으로서 익숙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팀원들과 맞물려 움직이면서, 그 장면만큼은 타격감 있게 탁탁탁 속도감 있게 찍어가고 싶었다.”

-자유언론실천선언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촬영할 때는 어땠나.

“신문사 공간에서 거의 절정에 달하는 장면이다. 책을 받았을 때부터 그 장면까지의 전사를 잘 겪고 차곡차곡 쌓아놓은 뒤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못하면 부담을 줄 수도 있는 장면이라 감독님이 톤 조절을 잘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촬영을 준비할 때 수십 명의 언론인이 연대하지 않나. 나는 선언문을 외쳐야 하고 정면 유리문 쪽에서는 사람들이 치고 들어오는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함께한 배우들부터 보조출연자, 단역 배우들까지 모두 똑같은 온도로 준비하고 있더라.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진짜 부담스럽다’였다.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현장의 온도였고 단결된 힘이 느껴졌다. 반대로 정말 많은 도움도 받았다. ‘재환이라는 한 인물이 실천선언문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지켜주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대로 느껴보자. 그대로 느끼면서 한번 읽어보자’고 생각했다. 테이크도 많이 가지 않았다. 한두 번 정도였던 것 같다. 잘 보면 말을 조금 씹기도 하고 한두 단어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런데 상황 자체가 정신없는데 또박또박 읽는 것도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았다. 그냥 그 흐름에 나를 맡겨봤다. 감독님도 그게 더 날 것이고 좋다고 해주셨다.”

-재환은 직접적인 대사가 많은 인물이다. 자칫 교조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어떤 톤을 고민했나.

“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책임감이 큰 인물이지만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모습에서는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회부에 하나의 책상을 두고 팀원들이 수평적으로 같이 앉아 있지 않나. 각자 취재한 공간과 사람을 통해 얻은 자료와 증거를 털어놓고 툭툭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합하고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런 모습에서부터 교조적인 태도는 깨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유언론실천선언까지 갔을 때도 과연 교조적으로 가야 할 문제인가 싶었다. 오히려 그 시대의 공기가 실천선언문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방점을 찍기 직전까지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에 대한 고민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의견을 드린 적이 있다. 영화 후반부에 문태광이 있는 재판장이 나오지 않나. 철구가 가서 진실을 말하라고 하는 그 재판장에 재환도 향하지 않았을까, 마지막까지 그 상황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었다. 감독님은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재환이 신문사에서 빠져나가면 분산될 것 같다. 신문사 안에서 무언가를 캐릭터화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실제 당시 서른여 개 언론사가 자유언론수호운동을 펼쳤던 것처럼, 대규모로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방향으로 영화의 결을 맞춘 것 같다.”

박해일이 많은 관객에게 닿길 바랐다. / 하이브미디어코프
박해일이 많은 관객에게 닿길 바랐다. / 하이브미디어코프

-1974년의 사건을 지금 다시 영화로 꺼내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관객에게는 어떤 작품으로 다가갔으면 하나.

“‘진실’이라는 건 과거나 현재나 알기 참 어려운 것 같다. 감독님도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그 단어에 집중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 시대의 공기와 자유언론실천선언까지 결국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신 것 같다. 70년대의 역사라고 하지만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과거든 현재든 진실을 알아내는 일은 늘 어려웠다. 그 질문을 관객분들께 느낌표 또는 물음표로 던지는 게 이 영화에 맞는 톤이 아닐까 싶다. 그게 허진호 감독님답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의 결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이나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한 영화는 아니다. 크고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 주변에서 형사와 기자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펼쳐가면서 관객분들에게 이 사건을 알려드리는 거다. 세대별로 받아들이는 것도 다를 것 같다. 당시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분들에게는 시간을 거슬러 그때를 떠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사건을 몰랐던 세대라면 추적극이자 스릴러 장르로 즐기면서 새롭게 사건을 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떤 목적성을 두고 보여드리려는 영화는 아니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하나의 창작된 장르영화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 방식으로 관객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우리가 만든 영화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추석 극장가에 여러 한국 영화가 함께 개봉한다. 그중 ‘암살자(들)’만이 가진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기억하는 과거 추석 극장가는 한국 영화가 최소 서너 편씩 함께 존재하는 풍성한 시즌이었다. 이것도 잘되고 저것도 잘되면서 극장가 자체가 굉장히 큰 시장이었고 관객분들도 영화를 많이 보러 오셨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영화 한 편이 홀로 개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개봉 기간도 길어지고 외로워졌다. 그런데 올해는 어떤 계기에서인지 다시 한국 영화가 풍성해졌고 심지어 더 많은 작품이 개봉하게 됐다. 얼추 작품들을 알고 있는데 영화의 성격도 서로 겹치지 않는다. 관객분들에게 한국 영화를 선보이기에 좋은 상차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는 정말 다양한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매력이고 추적극과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 빠른 호흡과 리듬을 갖고 있다. 재환이라는 기자를 따라 신문사 안으로 함께 들어가 그 시대를 쭉 따라가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다. 또 철구의 입장에서 영화를 따라가도 된다. 두 인물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도 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엔딩 타이틀과 마지막 자막까지 모두 감상하고 나왔을 때 느끼게 되는 부분은 함께 개봉하는 다른 영화들과 분명 다른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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