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색하는 인간, 사색 없는 낙원… 연상호가 그린 ‘실낙원’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 분)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 분)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심리 스릴러다.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이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았다. 지난 21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완벽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은 AI 아들과 9년 만에 낯선 모습으로 돌아온 진짜 아들 사이에 류소영을 세워두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긴 단절을 지나 돌아온 아들을 과연 같은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선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질문을 던진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연상호 감독은 “아주 쉽게 아주 어려운 질문들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장르영화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해당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머니가 쓴 글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원안 내용이 궁금한데.
“원안은 한 마을에 어머니와 아들이 사는데, 아들이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는 이야기였다. 닭도 훔치고 사람도 때리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아들을 품에 안고 소멸을 결심하게 된 한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아들에게 주는 게 어떤 마음이었느냐’고 물어보시더라.(웃음) 그 글을 보고 이야기 속 어머니가 굉장히 집착이 있는 인물이라고 봤고 ‘이건 무슨 심리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또 아들로서 내가 어머니를 잘 모르는데도 오랫동안 궁금해하지 않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이 마음에 대해서는 좀 궁금해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궁금증 때문에 작업을 시작했고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동안 그 관점으로 어머니를 보기도 했고 그런 시간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은 찾았나.
“작품으로 내린 결론은 결국 ‘알 수 없다’였다. 이 심리를 100% 아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예술대학교 미대 출신인데, 대학교 1학년 때 술을 마시면서 예술에 관한 토론을 많이 했다. 그때 했던 여러 토론 중 하나가 카뮈의 ‘이방인’ 속 주인공은 무슨 심리였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그런 것이 실존주의, 실존에 대한 토론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지금 AI가 굉장히 중요한 존재가 된 시대에 그게 중요한 질문이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거창하게 실존주의를 토론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류소영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이었을까를 관객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실존에 대한 토론이라고 생각했다.”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부분도 있다고.
“전체적인 틀을 잡을 때 많이 기댔다. ‘실낙원’에서 후에 사탄이 되는 천사는 인간에 대한 질투로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리고 뱀의 몸을 빌려 이브를 시험에 들게 하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질투’라는 것에 집중했다. 예를 들면 오프닝에서 납치범이 류소영을 쓱 돌아보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일종의 질투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너무 걱정하는 엄마에 대한 질투 같은 게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또 류선우를 뱀과 같이 여겼다. 류선우의 몸을 빌리는 거다. 이후 류선우가 집에 돌아와서도 AI 아들에게 계속 질투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그런 것에서부터 조금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류선우를 사이코패스로 설정했나.
“물론 쾌락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건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건 당시 납치범이 ‘너는 내 아들이 돼라’고 하지 않나. 류선우는 납치범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살아온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자기 정체성을 그렇게 규정지어버린 거다. 그건 교육을 받아서라기보다 죄에서 탈출하기 위한 정체성에 가깝다. 자기 손으로 친구를 죽였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악마로 규정하는 거다. 밀턴의 ‘실낙원’에도 ‘천국에서 섬기느니 지옥에서 다스리겠다’는 사탄의 대사가 있다. 결국 굉장히 인간적인 말이다. 그것처럼 류선우도 자신의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에게 정체성을 부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류소영이 ‘넌 내 아들이야’라고 했을 때 자기가 규정지었던 정체성에 균열이 가게 된다.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배현성과도 그런 점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류선우는 감정을 읽기 어려운 인물이다. 의도한 부분인가. 배현성에게는 어떤 디렉팅을 했나.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100% 이해하기는 힘든 인물들이라고 생각했다. 배현성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장팀이나 스태프들과는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정작 배현성과 이야기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웃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라는 작품이 있다. 거기에 마미야라는 굉장히 불쾌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불쾌함의 근원은 마미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알 수 없음’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류선우가 그런 마미야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처음 찍었던 장면이 탄광에서 엄마에게 ‘실물이 낫지 않아요?’라고 하는 신이었다. 그 장면이 좋았다.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 굉장히 비슷해서 그대로 쭉 나갔다.”

-9년이라는 단절은 소영과 선우의 관계에서 어떤 것을 의미하나.
“어린 시절의 연상호와 지금의 연상호는 같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확신은 없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연속성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속적으로 봐왔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거다. 그런데 류소영과 류선우 사이에는 그 연속성이 빠져 있다. 심지어 선우는 극단적인 일을 겪기도 했다. 둘의 연속성을 확인해 주는 건 유전자밖에 없다. 그렇다면 연속성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유전자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같은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런 질문인 것 같다.”
-AI 선우는 소영과 교감하며 실제 인격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과 AI의 차이를 어떻게 설정했나.
“AI 선우는 실제 인격체가 아니다. 일종의 리액션만 존재하는 존재다. 어떻게 보면 인간과 AI의 가장 큰 차이는 사색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라고 하잖나. 마치 사색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결국 리액션이다. AI 선우도 진짜 무언가를 알고 이야기했다기보다 류소영의 반응에 대한 리액션일 뿐이다. 우리가 AI 같은 것을 이용하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 이상하게 거짓말을 잘할 때도 있고. 소영이 그런 것에 반응하는 것일 뿐이지, AI 선우 자체에 어떤 목적이나 의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류소영의 마지막 선택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랐나.
“애초에 주인공의 심리에 동의하기 힘들기 때문에 실존주의가 되는 건데, 심정적으로 이해가 갈 때가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메르소(‘이방인’ 주인공)의 심정이 이해될 때가 있지 않나. 류소영의 마지막 선택도 이성적으로 봤을 때는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이해되길 바랐다. 그 간극이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면 AI가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이상이 있다는 거다.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이해가 간다’는 느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면서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었던 목표는 그것이었던 것 같다. 잘 됐느냐 안 됐느냐와 별개로 목적은 항상 품고 있는 거니까.”
-‘낙원의 아이들’ 속 낙원은 어떤 이미지로 구현하고자 했나.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밀턴의 ‘실낙원’에서 낙원은 작물이 풍성하게 자라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당시에는 농경사회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낙원의 모습이었을 거다. 그런데 예전부터 의문이 있었다. 매일 과실이 그렇게 많이 열리면 일주일만 지나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게 인간이지 않나. 그러면 그게 좋은 게 아니란 말이다.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요즘 들어 생각한 건 ‘아마 사색이 없는 세계인가 보다’라는 거였다. 사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매번 즐거울 수 있는 거다. 인간은 사색이 있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고통도 있고 행복도 있는 것 아닌가. 마지막에 류소영이 도달해 있는 세계는 사색이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공간의 디자인도 그런 사색이 없는 세계를 형상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김현주와 여러 작품에서 계속 호흡을 맞추고 있다. 김현주를 계속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 배우고, 기본적으로 그동안 내가 만들어낸 세계를 잘 표현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저예산영화다 보니 아예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이야기를 꺼내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얼굴’ 때와 마찬가지였다. 김현주에게 먼저 대본을 주고 ‘이런 게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영화를 하기로 하고 준 게 아니었다. 당시 ‘얼굴’도 찍고 그랬으니까 김현주가 바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더라. ‘해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러면 하자’고 발전하게 된 거다.”

-소영의 딜레마를 선우가 대사로 직접 제시하는 방식이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졌다. 이유가 있나.
“쉽게 전달하고 싶었다. 영화가 끝난 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사실 굉장히 복잡하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이후의 사색이 목적인데, 그 사색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내가 늘 장르라는 틀로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이야기도 했지만 이 영화를 굳이 실존주의적인 영화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단순하게 몰입해서 보고 영화에서 주어지는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많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각자 선택해서 취해야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다. 그게 대중예술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쉽게 아주 어려운 질문들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장르영화의 본질이다. 때로 장르영화가 예술영화의 하위 매체처럼 구분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많이 하는 좀비영화나 ‘지옥’ 같은 코스믹 호러도 완전한 재미를 위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장르영화는 굉장히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쉬운 사색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낙원’을 비롯해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자주 그려왔다. 실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관련이 있나.
“제목이 ‘실낙원’이지 않나. 인간은 낙원에서 쫓겨나 영원히 낙원을 그리워하는 존재다. 그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품어온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데아(완전한 원형)와 미메시스(모방·재현)의 관계, 정토(이상세계)와 예토(현실세계)의 관계처럼 거의 모든 문화권에는 이상향이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처참함 같은 것이 있다. 그런 것들이 장르화돼 발전한 것이 디스토피아 영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흥미가 갈 수밖에 없는 주제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디스토피아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행복하다.(웃음)”
-‘얼굴’에 이어 두 번째 저예산 제작이다. 이러한 방식을 계속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얼굴’을 할 때 생각했던 건 지금까지 만들어온 영화와는 영혼이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거였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새로운 영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에게 롱테이크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촬영감독과 ‘어떻게 하면 한 번에 찍을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만 한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학이라는 것이 결핍에서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얼굴’을 할 때 스스로 결핍된 상황을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도 한 명의 직업인이다. 직업의식으로 일을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나도 그 방식을 사랑한다. 다만 많은 사람과 의논하면서 작업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도 작업해 보고 이런 식으로도 작업해 봤으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해 나가는 것이 내겐 엄청난 휴식이자 재충전이다.”
-‘얼굴’의 경험을 이번에는 어떻게 반영했나. 더 수월하기도 했나.
“노하우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 이런 걸 한번 해보자’고 이야기하고 러프하게 시작했다. 예산이 적으니 지분을 갖고 하자는 방식이었다. 막상 ‘얼굴’이 잘되고 다 같이 행복하게 파티도 했는데, 정산을 하다 보니 빈틈이 보이더라. 그래서 그 부분은 일부 보너스를 추가로 마련해서 채웠다. 다음에 하게 되면 조금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합리적으로 정리했다. 막내 스태프까지 모두 지분을 가져갈 수 있도록 다시 정리하다 보니 2억원으로는 모자라더라. ‘얼굴’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상업영화를 만들던 사람이 독립영화 생태계에 들어가 기존 산업을 흐트러뜨리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독립영화 제작지원도 있고, 영화를 완성한 뒤 독립영화로 인정받으면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 ‘얼굴’은 그런 지원이나 인정을 받지 않았고 이번에도 같은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