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우리 곁에 남은 ‘국민 아버지’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때로는 정의로운 형사로, 때로는 묵묵히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로 오랜 시간 안방극장을 지켰다. 67년간 작품 속 인물을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국민 아버지’로 자리한 배우 최불암이 마지막 길에 올랐다.
고(故) 최불암의 발인은 2일 오전 7시4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엄수됐다. 향년 87세. 이날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진행됐으며, 이후 45년간 인연을 이어온 초록우산 본부에서 고별 행사가 예정돼 있다. 장지는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이다.
1959년 연극 ‘햄릿’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배우의 길을 걸었다. 1967년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를 연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고, 1971년 첫 방송된 MBC ‘수사반장’을 통해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수사반장’에서 고인은 강력계 형사 박영한 반장으로 분해 18년간 안방극장을 찾았다. 강직한 정의감과 인간미를 지닌 박 반장을 묵직하게 그려내며 큰 사랑을 받았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범죄와 그 이면의 사회상을 담아낸 ‘수사반장’은 한국 수사물의 대표작으로 자리했고, 최불암 역시 국민배우로 발돋움했다.
1980년부터는 또 다른 인생작 ‘전원일기’로 시청자와 만났다. 농촌 마을 양촌리를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 작품에서 고인은 김혜자와 부부로 호흡을 맞춰 22년간 김 회장으로 살았다.
집안의 가장이자 마을의 어른인 김 회장은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엄격하지만 따뜻한 인물이었다. 고인은 과장하지 않는 연기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청자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수사반장’을 계기로 경찰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고인은 2018년 명예 경무관, 2021년 명예 치안감에 이어 2024년 명예 치안정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전원일기’에서 시작된 인연은 카메라 밖 삶으로 이어졌다. 1981년 극 중 고아 소년 금동이를 양자로 들이는 에피소드를 계기로 당시 한국어린이재단(현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었고, 1985년부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40년 넘게 국내외 아동을 위한 활동에 힘썼다.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이후에도 고인의 연기는 계속됐다.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여명의 눈동자’ ‘그대 그리고 나’ ‘영웅시대’ ‘궁’ ‘식객’ 등 수많은 작품을 거치며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었다. 2014년 ‘기분 좋은 날’을 끝으로 드라마 연기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2018년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를 통해 25년 만에 무대로 돌아가며 연기를 향한 열정을 이어갔다.
2011년부터 KBS 1TV ‘한국인의 밥상’ 진행을 맡아 전국 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화려한 음식보다 한 끼의 밥상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배우로서 오랜 시간 쌓아온 친근하고 푸근한 이미지는 프로그램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14년간 전국의 평범한 이웃들과 밥상을 마주했다.
그리고 2024년, 다시 박영한으로 돌아왔다. ‘수사반장’의 프리퀄인 MBC ‘수사반장 1958’에 노년의 박영한으로 특별출연했다. 이제훈이 연기한 젊은 박영한의 이야기를 여는 첫 회에서 백발이 된 박영한으로 등장해 과거와 현재를 이었다. 이는 고인의 마지막 방송 연기가 됐다. 1971년 ‘수사반장’으로 자신의 대표적인 얼굴을 만든 고인이 53년 뒤 같은 인물로 마지막 연기를 남긴 셈이다.
평생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인정받았다. 2014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정부는 별세 후 고인에게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배우로서 사람들의 삶을 연기했고, 카메라 밖에서도 오랜 시간 이웃과 함께했다. 그렇게 67년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킨 최불암은 한 시대를 함께한 배우이자 우리 곁의 친숙한 ‘어른’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