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게”…아내와 사별한 뒤 절대 재혼하지 않겠다던 배우의 소름돋는 근황
평생을 약속한 반려자를 죽음으로 잃게 된다면 그 고통은 극심할 것입니다. 이에 배필과의 사별을 경험한 이들은 평생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작정을 한 배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재혼하지 않겠다던 해당 배우의 근황이 알려져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는데, 오늘은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만능, 임채무… “1980년대 최고 스타”
1949년생 올해 나이 75세인 배우 임채무는 해병대 228기로 제대한 후,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로 발탁되어 연예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에서 선 굵은 배역들을 자주 맡으며 이름과 얼굴을 크게 알렸습니다.
특히 임채무는 드라마계의 남자배우 투톱이던 노주현, 한진희의 미남 역할 주인공 독점을 이어받아 198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중후하고 우수에 찬 이미지로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은 바 있었습니다.
일례로 임채무는 MBC ‘사랑과 진실’에서 주연을 맡아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는데, 해당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 72%를 기록하며 어마어마한 인지도를 구사했고, 이를 통해 임채무는 ‘MBC 연기대상’에서 1984년 남자 우수상과 1985년 남자 최우수상까지 수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강남 스캔들’, ‘해피 시스터즈’, ‘빛나라 은수’, ‘당신은 선물’, 맛있는 인생’, ‘천일의 약속’, ‘위험한 여자’, ‘웃어라 동해야’, ‘맨땅에 헤딩’, ‘황금신부’, ‘스마일 어게인 등’, ‘복면달호’ 등 무수한 드라마, 영화 등에서 활동한 임채무는 CF에서도 활발히 활약해 인상 깊은 장면들을 연출했습니다.
각별히 2006년 ‘돼지바’ 광고를 진행할 때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의 모레노 심판을 탁월하게 코스프레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오랫동안 회자된 끝에 그 해 중순부터 MBC ‘황금어장’의 원년 멤버로 출연하기도 했었습니다.
한편 임채무는 가수로서도 명랑하게 움직여 13장의 음반을 발매한 이력이 있었고, 분야를 막론하고 넘나드는 그의 행동 범위 속에 사람들은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난 지 15분만에 고백… “인생의 배우자”
1980년대 최고의 스타 임채무. 하지만 이러한 임채무도 성공하기 전까지 무려 11년의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임채무는 한 인터뷰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11년의 무명생활 끝에 1984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진실’의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고 밝힌 바 있었습니다.
한편 임채무는 이 시기 인생의 배우자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1978년 임채무는 서울 마포구의 한 다방에서 소개팅을 통해 MBC 공채 7기 출신 성우 박인숙과 조우했는데, 접한 지 15분만에 프로포즈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처음에 박인숙의 집안에서는 임채무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임채무는 포기하지 않고 장인을 3시간에 걸쳐 설득한 끝에 2달 뒤 약혼, 3달 뒤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교제한 지 불과 3개월만에 결혼을 했던 것인데, 그만큼 임채무는 박인숙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고해졌습니다.
그러나 결혼 당시 임채무는 단역 배우로 활동했기 때문에, 경제적 사정이 넉넉치 못했습니다. 임채무는 이 때를 회상하며 한 방송에서 “제가 결혼할 때 통장에 달랑 3만원이 들어 있었다. 회사 다니던 동생한테 200만원 빌려서 4평짜리 전세방을 구해 신혼집을 치렀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허나 작은 집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오히려 부부관계가 좋아졌고, 이렇게 얻은 긍정적인 분위기로 성실히 배우 생활을 하여 임채무는 점차 비중 있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84년 MBC ‘사랑과 진실’에 모습을 드러내며 상당한 성공을 이루어냈는데, 출연료는 물론 행사, 콘서트 등을 통해 수많은 돈을 벌어들이며 자산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가정적인 남편… 그리고 “찾아온 시련”
임채무는 박인숙과 백년가약을 맺은 후 슬하에 두 자녀를 두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아내 한 명밖에 몰랐던 임채무는 상당히 가정적인 남편으로 제 역할을 다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론 중간에 배우 활동이 너무 바빴던 나머지 가족에 약간은 소홀했던 적도 있었지만, 임채무가 이후 아내와 고충을 알게 되자 그 동안 모은 재산을 모두 아내의 명의로 하는 등 관계의 회복을 위해 굉장한 노력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임채무에게도 하나의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아내 박인숙이 췌장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평소 금슬 좋기로 유명했던 임채무는 크게 낙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더더욱 지극정성으로 간병한 것으로 고해졌습니다.
임채무의 극진한 간호 덕분인지, 3개월을 선고받았던 박인숙은 5년을 더 살다가 201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임채무는 한 방송에서 “제가 해외 4개국을 돌아다니며 좋다는 약을 다 구해다 주고, 철저하게 식이요법을 했다. 의사들이 기적이라며 놀랐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의 사별을 피할 수 없었던 임채무는 크게 슬퍼하기도 했는데, 한 인터뷰에서 “아내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 커서 통곡을 몇 차례나 했다. 절대 재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부부관계가 좋았던 사람일수록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더 힘들어 한다”고 고백한 바 있었습니다.
사별 후… “새로운 출발”?
박인숙에게 안녕을 고하고 시간이 흐른 뒤, 임채무는 MBN ‘동치미’에서 사별 후 홀로 사는 삶에 대한 근황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해당 방송에서 임채무는 “결혼 37년차가 되었을 때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라며 “혼자 생활을 시작하고 하루는 급하게 외출을 하려는데 하얗게 된 뒷머리가 보이더라. 그래서 혼자 염색에 도전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임채무는 “늘 아내가 염색을 해주었다. 옆머리는 혼자서도 가능했는데 뒷머리는 잘 보이지가 않더라.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는데 등이 전부 염색약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 ‘혼자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라고 고백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또한 임채무는 “의사가 ‘부부 관계가 좋았다면 재혼을 하세요’라고 하더라. 그 때는 단호하게 싫다고 거절했지만 3개월 후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세상도 건강하다’라는 걸 깨달았다”라고 이야기해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임채무는 2016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김소연과 재혼 소식을 밝혔습니다. 일반인으로 알려진 김소연은 따로 공개된 프로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임채무는 방송 활동과 함께 ‘두리랜드’ 운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놀이공원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어릴 적 꿈으로 인해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수년간 적자를 통해 빚이 수백억원이나 됨에도 경영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전념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해당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가족들한테 그렇게 잘 했었다는데 화이팅하세요”, “만능 엔터테이너에게 이러한 아픔이 있었군요”, “사별 참 힘들죠”, “새로운 출발도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임채무 잘 되었으면”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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