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 폐지 주장 50% 넘었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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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이애나비의 사망 때

이혼 후에도 끊임없이 파파라치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그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로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하게됨.

백작가문의 딸로 태어났으나 그다지 성적이 좋지못해 고등학교 중퇴를 한 이후에 남을 돌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기에 유치원 보모나 지인의 애들을 돌봐주는등 소일거리를 하던중 찰스 왕세자와 만나 결혼을 하게됨

허나 이때부터 찰스왕세자는 이미 카밀라와 간통관계였고 다이애나와의 결혼은 왕세자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위장에 불과함.
이후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이 사실을 알고 엘리자베스 2세에까지 호소했으나 모두 묵살당하고 오랫동안 정신적 고통을 겪음.
이혼조차 용납치 않는 왕실의 조치에 결국 그녀는 보란듯이 외도를 하기도 함.

영국왕실은 이때부터 언론플레이로 모든 잘못을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몰아감.
이에 그녀도 책을 내고 인터뷰를 통해 결국 이혼에 성공함.

다이애나는 영국민들의 전국적인 인기를 누린 스타였고 세계적으로 구호활동에 힘쓰면서 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음.
영국왕실은 인기를 끄는 그녀에 대해 굉장히 못마땅해하고 항상 부정적인 스탠스를 유지하였음

영국 왕실에서는 다이애나가 이혼 후에 왕실에서 나갔고 고리타분한 왕실 관례상 여왕이 직접 조문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의전을 마련할만한 근거가 없어 아무런 발표가 없었지만 이로 인해 영국 국민의 분노를 사게됨

당시 왕실 폐지 지지율이 50%를 넘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이에 영국 왕실은 급히 왕실장으로 그녀의 장례를 치르게됨

여론의 악화로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의 권유에 의해 결국 다이애나의 장례식에 참석한 로열 패밀리들
이때가 아마 엘리자베스 여왕 왕좌가 위협되는 일생일대 최대 위기였을거야

그런 과정이 영화 더 퀸에서 나옴

다이애나가 살았던 켄싱턴 궁전 앞에 놓였던 수많은 추모 꽃다발들

https://www.dmitory.com/issue/17694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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